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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재열 여행감독 Sep 01. 2021

큐레이션의 시대, "편집을 통한 창작"

여행감독으로서 내 여행 기획의 키워드는 '큐레이션'이다

'편집은 창작이다'는 얘기를 설파하시는 김정운 교수님 작업실


모두가 남들과 똑같아질까 봐 걱정하는 사회다. 남들과 다르지 못하면 자신의 존재도 그만 사라져 버릴 것 같은 불안감에 휩싸여 산다. 특히 예술가는. 그래서 다름을 향한 잔머리가 소셜미디어에는 득실 하다. 자세히 보면 라캉 푸코 바르트처럼 절묘한 결합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구축하는 이들이 많다.


"이런 '인지의 시대'에 '가치 공여자'인 큐레이터의 역할은 단순히 선정/분류/전시의 역할에 국한되지 않고 창조의 한 방식으로 각광받는다. 큐레이셔니즘(편집주의)이 크리에이셔니즘(창조주의)이 된 셈이다. 이제 하나의 아이디어가 꼭 '최신'이거나 '전대미문'일 필요는 사라졌다. 편집이 창조고 창조가 편집인 세상이 되었다."

- <큐레이셔니즘>과 <에디톨로지>에서 편집 발췌


'창조적 편집'은 우리 주변에서 두루 볼 수 있다. <뉴스공장> 공장장 김어준은 뉴스 큐레이터다. 공장장이라지만 기사를 생산하지 않고 작성된 기사를 자기식으로 편집해 세상을 해설한다. 얼마 전 거액의 투자금을 유치한 무신사는 편집된 패션이다. 디자인이 아니라 편집 능력을 인정받은 것이다.


창조는 편집이고 편집은 선택이고 선택은 안목이다. 취향을 재구성하는 능력이 인정받는 시대다. 문재인 대통령이 큐레이터가 되고 박원순 서울시장이 소셜 코디네이터가 되는 세상이다. 여행 또한 절묘한 큐레이션이는 관점에서, 이런 편집의 시대를 읽는 독법을 정리해 보았다.    



문재인 대통령은 임옥상 화백의 대형 작품 '광장의, 서'를 청와대 본관에 전시하고 이를 설명하며 큐레이터로 변신했다. 단순히 작품이 보기 좋아서 전시하는 것이 아니라 이 작품을 전시하는 것을 통해서 정치적 의도를 드러내고 심지어 직접 설명하는 시간을 할애해 이를 구현한다. 확장된 의미의 큐레이터라 할 수 있다.


고 박원순 서울시장은 '소셜 코디네이터'를 자처했다. 이때의 '소셜 코디네이터'는 '리더십'을 극복하는 표현이라 할 수 있다. 긍정적 가치와 긍정적 가치가 만나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수 있도록 이끈다는 것이다. 시장이 된 뒤 그는 이를 '거버넌스'의 영역으로 끌고 왔다. 문 대통령과 박 시장의 예는 큐레이션이 리더십을 변주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런 큐레이션의 시대에 큐레이터의 정의를 먼저 짚고 가보자. '큐레이팅'이란 전시회 주제를 정하고 그에 맞는 작품을 선정하고 또 주제가 잘 드러날 수 있게 배치하는 일을 말한다. 그런데 현대에 그 의미가 많이 확대되고 있다. 큐레이팅, 큐레이션, 큐레이셔니즘, 큐레이토리얼 이런 단어들이 예술가 외에 다양한 영역에서 '편집을 통한 창조'를 나타내는 말로 사용되고 있다.


‘큐레이터’의 어원을 살펴보면 로마제국에서 공공사업과 관련된 부서의 책임 관료를 뜻하는 ‘쿠라토레스’라는 말에서 왔다고 알려져 있다. ‘쿠라’라는 말이 돌봄 관심 책임 이런 의미인데, 그런 책임 관료의 의미에서 중세로 넘어가면 관료와 사제가 조합된 말이 되어 큐레이터는 영혼의 치유를 책임지는 역할의 사제로 의미가 확대된다.


르네상스 시대에 가면 학문적이고 예술적인 차원에서 그림을 선별하고 전시하는 큐레이터의 역할이 자리를 잡는다. 하지만 그 역할이 왕실이나 귀족이 컬렉션 한 작품을 선별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그래서 이 시절의 큐레이터를 ‘캐비닛 큐레이터’라 부른다. 캐비닛 안에 든 것을 보여주는 정도라는 것이다. 왕과 귀족을 위해 봉사했던 큐레이터들은 산업혁명 이후 국가의 도구가 된다.



현대의 큐레이터는 역할이 확장된다.

@ 해체 후 재구성 : 현대의 큐레이션은 단순히 작품을 선별하고 전시하는 단계를 좀 벗어나서 이제 가치를 새롭게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역할로 확장된다. 특히 이념가치와 상품가치를 동시에 추구하는 의미로 활용되고 있다.

@ 작품의 변호사 : 작품의 맥락을 설명해 주는 일종의 변호사 역할도 맡는다.

@ 시대의 질문자 : 좋은 큐레이터는 지나온 시간과 지금의 시간 그리고 미래의 시간에 질문을 던지는 사람.


큐레이션은 점점 영역이 확장되었는데 새로운 미디어가 두루 나타났던 저널리즘에서 다양하게 변주되었다. 새롭게 취재를 해서 보도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보도를 재가공해서 보여주는 것, 이를테면 카드 뉴스나 영상 클립으로 재가공해서 배포하는 뉴스 큐레이팅이 언론사의 중요한 영역으로 자리 잡았다.


"뉴스 큐레이션은 많은 뉴스 중에서 독자의 관심과 취향에 맞춰 뉴스를 선택, 재배치하고 가치를 부여하는 일을 말한다. 특히 선택의 고민을 덜어주고 이해를 돕는 큐레이션이 간단한 것을 좋아하는 젊은 세대에게 인기다. ‘똑똑한 간결함’(Smart Brevity)의 시대다."


저널리즘 영역에서의 큐레이팅과 관련해 재미있는 케이스가 있다. 주요 IT 저술가 중의 한 명인 말콤 글래드웰이, 큐레이팅과 관련해 스티브 잡스를 예로 들며, “스티브 잡스의 천재성은 디자인이나 비전이 아닌 기존의 제품을 개량해 새로운 제품을 만들어내는 편집 능력에 있다”라고 평했다. 그런데 스티브 잡스는 언론의 편집 기능에 대해 이런 말을 했다. “민주주의에는 자유롭고 건강한 언론이 중요하다. 뉴스를 모으고 편집하는 조직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나는 미국이 블로그들의 세상이 되기를 원하지 않고 그 어느 때보다 지금 편집자가 중요한 세상이 돼야 한다.”



대중음악에서 큐레이션은 확실한 창조의 영역으로 자리 잡았다. 음악 창작방식으로서의 큐레이션은 서태지와 아이들의 <하여가>에서부터 볼 수 있다. 서태지의 주된 창작 방식 중 하나가 바로 '재구성'이었다. 이런 재구성이 보편 언어인 음악 장르가 있다. 바로 EDM이다.


EDM : 일렉트로닉 댄스 뮤직(EDM, Electronic Dance Music)의 줄임말이다. 전자음악인 일렉트로니카(Electronica) 음악에 속한다. 주로 클럽 등에서 디제이(DJ, Disk Jockey)가 춤추기 좋게 믹싱한 음악을 일컫는다. 디제이는 턴테이블(Turntable)과 믹서(Mixer)를 사용해 두 개 이상의 음악을 섞어 새로운 느낌을 만든다. 특히 이디엠을 만드는 디제이들은 기교보다는 클럽을 찾은 사람들이 춤을 출 수 있도록 흥겨운 분위기를 연출한다.


요즘 사람들의 관심을 많이 모으는 요리의 영역에서도 큐레이션의 역할이 주목받고 있다. '푸드 큐레이터'란 고급 수제치즈나 전채요리를 골라 디스플레이하는 사람을 일컫는다. 셰프가 푸드큐레이터로 진화한 것이다. 단순히 맛있는 음식을 예쁘게 테이블 세팅하는 것이 아니라 음식을 자기표현의 도구로 삼는다. 이밖에도 와인의 마리아주 등 페어링과 같은 '결합의 기술'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시인들도 큐레이팅을 한다. 시의 재쓰임새를 찾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컴필레이션 앨범은 주제별로 음악을 모아 놓은 것인데, 요즘 주제별로 시를 모아놓은 컴필리에이션 시집이 많아졌다. 시인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시를 선별하는데, 특히 신현림 시인이 이런 작업을 가장 활발하게 하고 있다. 한 테마로 시를 고르는 수준이 아니라, 사진과 시를 혹은 그림과 시를 엮어서 재배치한다. 최영미 시인과 같은 중견 시인은 물론 신경림과 같은 원로시인도 하고 있다.


# 의외의 큐레이터, 마돈나

샐러브리티가 큐레이터 역할을 맡아서 전시 기획을 주도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마돈나를 큐레이터로 활용해 이슈가 된 적이 있다. 마돈나를 큐레이터로 활용한 논리가 재미있다. “큐레이터는 흡혈귀다, 마돈나 역시 흡혈귀다. 뽑아먹을 줄을 한다. 큐레이터로서 어떻게 조합을 할 줄을 안다”라고 해서 마돈나에게 큐레이터를 맡겼다. <바이스>라는 잡지가 주최한 ‘자유를 위한, 예술’ 온라인 전시였다.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지드래곤에게 그런 큐레이터 역할을 맡겼던 적이 있는데 배우 유아인도 <1111> 프로젝트를 직접 진행했다.


# 의외의 큐레이터, 엄홍식

"안녕하십니까. 저는 배우 유아인으로 활동 중인 스튜디오 콘크리트의 창립자 엄홍식입니다. 신진 작가 발굴과 창작자 간의 네트워크 확대, 예술 활동의 공익적 선순환 구조 수립, 예술의 대중화를 목표로 창립된 스튜디오 콘크리트는 창립 5주년이 되는 당년, 새로운 형태의 예술작품 거래방식을 기획하고 이를 통해 공공성과 지속 가능성을 가진 획기적 예술 작업 <1111>의 발표에 이르렀습니다."



유명 작가보다 유명 큐레이터가 더 힘을 발휘하는 시대다. 천리마와 백락의 관계랄까. 큐레이터가 작가를 소환하기 때문에, 작가와 큐레이터가 묶이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 큐레이터들은 미술품 콜렉팅을 직접 하지는 않지만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해서 콜렉팅의 가치를 부여해준다.


작가보다도 큐레이터가 더 유명하기도. 큐레이터계에서 대표적인 문화권력으로 꼽힌 큐레이터,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는 <아트리뷰지>라는 세계적인 가장 유명한 미술잡지에서 미술계 권력자리스트 1위로 늘 꼽히며 슈퍼 딜러들보다 더 권력이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는 “나는 예술을 큐레이팅 한다. 나는 과학을, 건축을, 도시학을 큐레이팅 한다”라며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2편은 창조적 큐레이팅 사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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