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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재열 여행감독 Sep 02. 2021

방시혁과 이우정의 탁월한 점은 바로 이 능력

"창조는 곧 편집이다"라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예


"창조는 곧 편집이다" 


교수 그만두고 일본 전문대학에 그림 공부하러 갔다가 국내에 돌아와서는 여수의 섬 금오도에 은거하는 김정운 교수가 내내 주장하는 바이다. '창조는 곧 편집'이라며 그는 <에디톨로지>라는 책을 쓰기도 했다. 그가 책을 쥐어주었을 때는 이 말을 건성으로 들었는데 여행감독이 되어서 절감하고 있다. 맞다. 창조는 편집이었다. 


더 이상 하나의 아이디어가 꼭 최신이거나 전대미문일 필요가 없어졌다. 과거의 권위를 부정하는 것인데 이것은 큐레이터가 근대 미술의 가치를 부정하고 컸던 방식과도 일맥상통한다. 창조적 재배치야말로 이 시대에 가장 각광받는 가치 창출 행위다. 의미의 어긋남을 통해 새로운 가치가 창조되곤 한다. 


뭔가를 제창하고 권위를 '경전화'하고 하나의 어떤 브랜드를 만들어내는 그런 기존의 박물관 학예사들이 하는 것들에 문제제기를 하면서 큐레이터들은 커왔다. 그런 인습과 관례적 행동을 깨면서 현대미술의 세계를 영도하는 일종의 샤먼과 같은 역할을 했던 게 바로 현대의 큐레이터들이다. 미술 영역 밖에서 그런 역할을 하는 사람도 그런 편집을 통해서 새로운 창조자로 인정받고 있다. 




"편집하면 가치가 높아진다"


비즈니스 영역에서는 콘텐츠의 가치 증대가 관건인데 그것을 해내는 가장 확실한 방법 중의 하나가 큐레이팅이 되고 있다.  점점 디지털 사회로 바뀌고 빅데이터 시대가 되어서 정보는 누구든지 얻으려면 쉽게 얻을 수 있게 되었다. 중요한 것은 그렇게 널려 있는 정보를 어떻게 엮어서 더 가치 있게 만드느냐 하는 것이다. 


정보와 정보 사이를 연결해서 해석해내는 능력이 중요해졌다. 이를테면 다들 검색도 하고 인터넷 쇼핑도 하지만 그 정보를 읽어내는 '데이터 마이닝(대규모 데이터에서 체계적이고 통계적인 규칙이나 패턴을 찾아내 분석하는 기술)' 기술이 가치를 발견해낸다. 우리가 빅데이터 분석을 한다는 말을 할 때 가장 핵심 기술이 이런 데이터마이닝이다. 떠돌아다니는 정보를 어떻게 유의미하게 해석할 것인가가 중요해졌다. 


예술가 그룹 중에 부부로 구성된 '뮌(최문선, 김민선)'이 있다. 이들은 아트 솔라리스 프로젝트를 통해 '한국 미술계에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은 누구일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구했다.  미술계 네트워크를 ‘데이터 마이닝’으로 분석했다. 주요 전시 정보들을 데이터로 만들어 미술계의 네트워크와 영향력을 나타내는 3차원 지도를 그려낸 것이다. 네트워크가 강한 사람일수록 미술계에서 영향력이 큰 인물인 셈이다.



"창조는 창조적이지 못하다.'


창조는 관습적인 것이 돼 버렸다. 이제 진짜 창조는 편집이다. 편집이야말로 새로운 것이다. 큐레이셔니즘이 크리에이셔니즘, 즉 창조주의를 대치하는 말로 쓰이고 있다. 비슷한 휴대전화를 쓰고, 비슷한 포털 사이트를 이용하고, 비슷한 프로그램을 보면서 사람들은 남들과 똑같아질까 걱정한다. 


사람들은 늘 특별해지고 싶은 속성이 있다. 그래서 내 노래 재생목록은 당신들과 다르다, 내 페이스북 타임라인은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 이런 차이를 통해 같아진다는 불안으로부터 도망가려고 한다. 남들과 다르지 못하면 내 존재가 사라져 버릴 것 같아서 자기 자신을 큐레이팅 하는 시대가 되었다. 


자기 자신을 큐레이팅 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간단히 얘기하면 오프라인에서 원래 있는 자신의 모습과 다른 모습을 온라인에서 보여주는 것이다. 자신의 오프라인 모습을 그대로 내 온라인에서 보여줄 필요가 없다. 내가 오프라인에서는 좀 외모가 떨어지지만 온라인에서는 나는 미남, 미녀로 살고 싶다. 온라인에서는 똑똑한 사람으로 살고 싶다, 그러면 그렇게 살면 된다. 자아를 재구성해서 보여주는 그런 습성을 자기 자신을 큐레이팅 한다고 해석할 수 있다. 


아주 성공적이었던 자기 큐레이션 사례가 있다. '미네르바'다. 대단한 경제 전문가나 혹은 대학 교수나 아니면 경제학 학위를 소지한 전공자인가 했는데 그것과 전혀 무관한 무직자였다. 그런데 그가 인터넷 정보를 재구성해서 내는 주장은 상당히 인정을 받고 그리고 앞서 얘기했던 경제전문가, 대학교수 그리고 경제학 전공자들이 인정을 해줬다. 그가 했던 방식은 기존에 나와 있는 뉴스 혹은 통계, 여러 가지 자료들을 재해석한 것일 뿐이었다. 큐레이터로서 가치의 공여자 역할을 한 셈이다. 



"창조하는 방식을 창조하다"


요즘 할리우드 영화계에서 가장 창조적인 것은 창조하는 방식을 창조한 것이다(일종의 메타 창조).  마블은 <어벤저스>를 중심으로 주연과 조연, 프로타고니스트와 안타고니스트를 재편집하면서 시리즈를 이어갔다. 이편과 저편이 이 인연과 저 인연을 연결 짓는 상호텍스트성을 바탕으로 중심과 주변이라는 이분법을 완벽히 극복한다. 


'프리퀄, 스핀오프, 리부트'가 바로 할리우드가 창조해낸 창조의 방식이다.  프리퀄은 시간상으로 본편보다 더 앞선, 즉 과거의 이야기를 다룬 속편이다. 이는 본편의 이야기가 왜 그렇게 흘러가는지 설명하거나, 전편이 흥행해서 후편을 만들고자 할 때 활용한다. 보통은 전작보다 과거 시점을 다루는 후속작을 칭할 때 사용한다. 스핀오프는 조연 격의 캐릭터를 주연으로 격상시켜 만드는 '관계작'이고 리부트는 영화의 세계관 자체를 수정해서 만드는 작품이다. 


드라마라는 방식을 예능에 차용하다 아예 새로운 드라마를 만들어버린 <응답하라> 시리즈는 창조의 방식을 창조해낸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예능 프로그램 작가들은 원래부터 큐레이션에 재능이 있었다. 프로그램에서 어떤 자막을 달 때, 평범한 행위에 다양한 의미 부여와 가치 부여를 하면서 재미를 읽어내라고 힌트를 주는 큐레이팅을 하곤 했다.


<응답하라> 시리즈를 쓴 이우정 작가는 시대의 큐레이터다. 예능 프로그램에서 간단한 재연 프로그램 정도를 만들던 것을, 캐릭터를 확실하게 부여하고, 그 캐릭터를 바탕으로 에피소드를 완결성 있게 만들고, 스토리텔링을 구성하면서 <응답하라>라는 미니시리즈를 완성해냈다. 본인이 잘할 수 있는 것에서 하나 더 엮어서 새로운 드라마를 만들어냈다는 면에서 하나의 발전된 형태의 큐레이팅이라고 할 수도 있다. 시리즈가 진행될수록 진화된 모습도 보여주었다.



"방시혁은 기획자가 아니라 큐레이터다"


'한 아세안 정상회의'에서 기조 발제를 할 때 방시혁은 "콘텐츠는 발언이다"라고 말했다. 콘텐츠는 재미가 있어야 한다. 재미있는 것 중 의미 있는 것이 오래간다. 의미 있는 것 중 발언이 있는 것이 힘을 가진다. 보편적인 발언과 특수한 취향공동체의 절묘한 결합에서 세계적인 콘텐츠가 나온다.  이런 생각으로 그는 BTS가 팬과 세상에 어떤 발언을 할지 고민했다. 마치 전시기획자처럼. 


BTS를 완성품으로 자신의 기획대로 제작해서 음악 시장에 내놓은 것이 아니라 그들이 SNS를 통해 커 나가는 모습을 스스로 중계하면서 꼴을 갖춰가도록 한 것도 그를 큐레이터로 해석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는 음악 생태계에 멤버들을 날 것으로 내놓은 다음 그들이 어떤 발언을 할지 스스로 찾게 이끌었다. 방시혁은 음악 산업에서 창조의 방식을 새로 만들어낸 기획자다. 


그렇게 해서 나온 BTS의 발언에 대해 신형철 교수는 "우드스톡 록페스티벌은 서구 자본주의에 전복적인 태도로 시대정신을 포착했다. 에미넴은 신자유주의 무한경쟁 시대의 자기혐오를 반영하는 것으로 시대정신을 구현했다. 이들과 비교해보면 방탄소년단도 ‘져도 된다’는 메시지로 지금 시대에 필요한 목소리를 내주고 있다"라고 해석했다. 


여행감독으로서 여행에 접근할 때 늘 큐레이터의 자세로 접근한다. 편집은 기본적으로 섞는 것이지만 아무 원칙 없이 섞으면 개밥이 된다. 편집은 섞는다기보다는 뽑아내는 것에 가깝다. 각각의 본질과 속성 그리고 지향성을 파악하고 절묘하게 뽑아내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여행을 계속 고민해 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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