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여행 기획자 특강을 할 때 꼭 들려주는 이야기인데 한 번 정리해 보았습니다.
여행업의 본질은 솔루션이다. 우리가 패키지여행을 구매하는 이유는 비자, 항공권, 숙박, 교통을 해결해 주기 때문이다. 언어와 정보의 문제까지. 그런데 국내여행은 포털 사이트와 애플리케이션이 솔루션을 제공해준다. 여행지 정보는 블로거들이 내용을 잘 정리해 두었다. 여행사가 해결해 줄 숙제가 없다.
국내여행에서는 여행사의 솔루션이 별 의미가 없다. 있다면 할인 혜택 정도인데 이것 역시 카드사와 애플리케이션에 차고 넘친다. 대안을 찾는다면 큐레이션일 수 있다. 누구나 자신의 돈과 시간을 값지게 의미 있게 재밌게 사용하고 싶어 한다. 그렇다면 값지게 의미 있게 재밌게 이끌어주는 서비스라면 의미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여행 콘텐츠만 잘 기획하면 문제가 해결될까? 안 된다. 여행 기획자의 숙명은 자신이 기획한 콘텐츠로 인해 여행자들로부터 소외당한다는 것이다. 왜? 그들은 당신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당신의 콘텐츠가 필요한 것이니까. 당신이 필요한 이유까지 별도로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여행 콘텐츠로부터 소외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행콘텐츠는 독점할 수 없기 때문이다. 누구도 자연경관을, 인문 자원을, 숙소를, 교통을, 식당을 독점할 수 없다. ‘관광 개발’이라고 하지만 당신이 발견한 것이지 개발한 것이 아니다. 당신에게 좋은 여행 콘텐츠가 있다면 그것은 곧 모두의 것이 된다. 대형 여행사는 당신에게 고맙다는 말도 없이 차용할 것이다.
그렇다면 여행 콘텐츠와 함께 당신 자신을 팔아야 한다. 여기를 여행하려면 이 사람과 함께 여행해야 한다, 이 사람과 여행해야 이런 여행을 할 수 있다, 라는 것을 인식시켜야 한다. 당신의 여행은 다르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단순히 무엇이 다른지만 보여줘서는 안 되고 그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도 설명해내야 한다.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될까? 안 된다. 아는 사람들이라면 그럴 수 있다. 그런데 모르는 사람은 당신이 노력하는 모습을 보러 오는 것이 아니라 잘하는 것을 누리려고 온다. 사람들은 잘하는 사람을 좋아한다. 당신의 여행 실험을 위해 기꺼이 시간을 내어줄 사람은 거의 없다. 그 노력의 결과물만을 원할 뿐이다.
그럼 어떻게 답을 찾아낼 수 있을까. 여행은 같은 곳을 어떻게 다르게 보여주느냐의 게임이다. 큐레이션은 뽑아내기다. 공간과 시간 그리고 인간, 이 3간을 연출해야 한다. 여행에 적합한 장소에 가야 하고, 적절한 시간에 가야 하고, 가서 사람들에게 들려줄만한 이야기를 가지고 가야 한다. 코스만 연결하는 여행 기획은 하수다. 어떤 시간대에 갈 것인가, 그 사람들에게 무슨 이야기를 해줄 것인가가 머릿속에 있어야 한다.
물론 이것으로도 충분하지 않다. 당신의 이런 행위에 지불 의사가 있는 사람을 찾아야 한다. 당신을 브랜딩하고 당신만의 콘텐츠를 개발한 것이 일리아드였다면 이제 모객이라는 오디세이아가 남아있다. 이 숙제를 풀지 못하면 여행을 업으로 하지 말고 취미로 해야 한다.
안타깝게도 당신의 여행 콘텐츠에 공감할 사람들은 당신의 세대지만 당신에게 돈을 지불할 수 있는 사람들은 당신의 세대가 아닐 가능성이 크다. 당신의 콘텐츠에 동년배들은 박수를 보내겠지만 그들은 뒤돌아서서 ‘그 정도는 나도 생각할 수 있다. 인터넷에 찾아보면 다 나온다’며 구매하지 않고 자신만의 답을 찾으러 갈 것이다.
자신의 세대에서 공유하는 인식만이 진리는 아니다. 세대가 다르면 생각하는 것도 다르다. 그들에게 맞춰야 한다. 내 세대가 좋아하는 것을 다른 세대에게 의미 있게 내놓는 튜닝이 필요하다. 거기서 비즈니스가 발생한다. 당신 세대의 에너지는 간직하되 그걸 필요로 하는 세대에게 원숙하게 내놓아야 한다.
지불 의사가 있는 사람을 못 찾으면 지원 의사가 있는 기관이라도 찾아야 한다. 마이리얼트립 프립 에어비앤비 등에 올라와 있는 여행 상품을 보라. 야경투어나 스토리투어 혹은 사진 촬영 상품 등 대부분 단품 위주다. 그들이라고 장편 블록버스터 여행을 만들고 싶지 않겠는가. 숙제를 풀다 보니 이런 단편 여행만 남는 것이다.
지불 의사가 있는 기관을 찾아야 한다. 지불 의사가 있는 사람을 찾기 전까지 이것으로 버텨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관광공사나 지역관광재단 등 기관의 여행 콘텐츠 공모전에 응모하라. 비록 그 사업도 지원금이 끊기면 절벽을 만나겠지만 그때까지 버티면서 지불의사가 있는 사람을 찾아내야 한다. 그동안 당신의 여행을 엣지있게 다듬어야 한다. 당신을 브랜딩 하면서.
지불 의사가 있는 그룹(회사 워크숍이나 학생들 체험)을 계속 비즈니스 모델로 삼는 방법도 있다. 여행다움을 간직하기는 쉽지 않겠지만 그룹의 속성에 맞게 튜닝해 준다면 상당히 안정적인 비즈니스모델을 유지할 수 있다. 어느 정도 구력이 있는 곳들은 이 모형을 잘 유지하고 있다. 요즘은 젊은 직원들의 발언권이 쎈 편이니 그들의 취향을 잘 견인하면 도모해볼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