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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재열 여행감독 Sep 14. 2021

여행 사진 찍을 때 참고할만한 미국 현대 사진가들

배우 류준열의 사진이 미국 현대사진가 작품과 닮아 있었다

비비안 마이어 사진


사람들의 가장 행복한 순간을 담은 사진이 모여 있는 곳이 있다. 납골당이다. 지상의 시간은 가장 행복한 순간에서 정지한다. 사람들이 가장 행복한 순간을 담은 사진을 모아두는 곳이 있다. 인스타그램이다. 어떤 의미에서 인스타그램은 계정 주인의 행복한 모습을 남겨주는 미래의 ‘사이버 납골당’일 수도 있다.


인스타그램의 본인 사진은 대부분 ‘셀카(셀프 카메라)’다. 셀카를 찍으며 사람들은 행복을 연출한다. 그리고 그 행복의 증거물을 찍어 인스타그램에 차곡차곡 쌓아둔다. 팔로어들이 눌러주는 ‘좋아요’는 행복을 가늠하는 수치가 된다. 현대인들의 흔한 행복 쌓기 게임이다. 


〈비비안 마이어 셀프 포트레이트〉의 사진은 얼핏 보면 요즘 사람들이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사진과 닮았다. 하지만 이 사진은 60여 년 전의 것이다. 당시에는 셀카봉이 없었다. 그런데도 비비안 마이어는 롤레이플렉스 카메라로 자신의 모습을 담았다. 어떻게?


방법은 세 가지다. 하나, 거울을 이용했다. 풍경 속에 거울을 놓고 거기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담았다. 둘, 유리를 활용했다. 거울만큼은 아니지만 유리에 반사된 자신의 모습을 찍었다. 액자 유리도 자주 활용했다. 셋, 자신의 그림자를 찍었다. 자기 실루엣을 프레임에 넣었다.


인스타그램의 행복 인증 사진들과 달리 비비안 마이어의 사진은 행복을 담지 않았다. 그녀는 풍경과 어울리지 못하고 주변을 배회하는 유령처럼 사진에 담겼다. 정면 사진을 찍을 때도 무표정하다. 시선은 카메라를 외면하고 허공을 향한다. 그녀의 사진에서 행복을 찾기는 쉽지 않다. 행복하지 않았기 때문일까? 평생 보모로 일했던 그녀는 말년에 노숙자와 다름없는 생활을 했다. 필름을 보관하는 창고가 경매에 넘어가면서 그녀가 평생 찍은 사진 15만 장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그 덕분에 우리는 그녀의 사진을 통해 행복한 표정이 말하지 못하는 다양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게 되었다.


로버트 프랭크 사진



아메리칸드림의 이면을 찍은 미국 현대 사진가들


<미국 현대 사진 1970~2000전>에 간 적이 있다. 현실을 부정하는 비판적 성찰을 카메라에 담아낸 작품들을 볼 수 있었다. 1960년대까지 미국의 사진예술계는 그다지 주목되지 못했다. 로버트 프랭크나 윌리엄 클라인 같은 걸출한 작가가 나오기도 했지만 전반적으로 유럽세에 밀렸다. 그러나 1970년대를 기점으로 미국은 사진 예술의 변방에서 중심으로 떠올랐다.


미국의 현대 사진 예술이 어떻게 급성장할 수 있었는지 그 비결을 삼성미술관이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과 공동 기획한 <미국 현대 사진 1970~ 2000전>(호암미술관)에사 볼 수 있었다. 이 사진전에는 신디 셔먼·셰리 르빈·리처드 프린스·로버트 메이플소프·낸 골딘 등 미국 현대 사진계를 이끌었던 사진가들의 작품이 전시되었다. 


이런 미국 현대 사진 전시의 이미지를 고스란히 이어받은 전시를 본 적이 있다. 몇 해 전 열린 배유 류준열의 전시였다. 정적이고 회화적이면서도 왠지 모를 불안감을 내포한 그의 사진에서 미국 현대 사진작가들이 포착했던 중산층의 균열이 조금씩 보였다. 연예인이라는 위치 때문에 조금 조심스러웠을 텐데, 전시하지 않은 다른 사진이 궁금했다. 


낸 골딘 사진


역설적이게도 미국의 사진 예술은 미국의 힘을 등에 업고서가 아니라 그 힘을 성찰하고 반성하는 과정에서 성장했다. 사진을 찍는다는 것, 사진작가로서 예술을 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스스로에게 끝없이 되물으며 이들은 미국의 사진 예술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


1970년대 미국 사진예술계의 부흥은 철저한 자조와 함께 찾아왔다. 이미지 과잉 시대에 더 이상 새로운 이미지가 없다는 것이 이 시기 사진작가들의 판단이었다. 이들은 정교한 이미지 전략으로 인간의 욕망을 자극하는 광고 사진과 자신들의 사진은 애초부터 경쟁이 되지 않는다며 투항을 선언했다. 이미 만들어진 것을 콜라주해서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냈던 팝아트처럼 이들도 이미 존재하는 이미지를 차용해 작품 활동을 했다.


리처드 프린스 사진


리처드 프린스는 이미지를 빌려와 이용한 대표적인 작가이다. 그는 마치 ‘미적 도둑질’을 예술의 주제로 삼았던 마르셸 뒤샹처럼 잡지 사진을 오리고 확대하고 연결하는 것으로 작품 활동을 했다. ‘머리를 숙인 세 여인’이라는 부제를 가진 그의 대표 작품은 모두 잡지에서 오려낸 여자 사진을 확대한 것이다. 


셰리 르빈 사진


셰리 르빈과 빅 무니즈는 이와 달리 선배 사진작가의 유명 작품을 모사하는 작업에 집중했다. 이런 시도를 통해 이들이 노린 것은 사진 예술의 고전적인 가치를 부정하는 것이었다. 특히 셰리 르빈은 모사한 자신의 작품과 선배 사진작가의 원작이 주는 감동이 다르지 않다며, 사진을 통해서 예술적인 새로움을 보여주었다고 믿었던 선배들을 조롱했다.


현실을 재현한다는 사진의 고전적인 문법에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한 이들은 이전의 사진예술론에서는 치기로밖에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이미지 변조와 조작을 적극 활용하기 시작했다. 현실의 권위를 부정하고 비틀면서 미국 현대 사진작가들은 자연스럽게 포스트모더니즘 이론과도 손을 잡았다. 


로리 시몬즈 사진


이 시기의 작가들은 사진에 찍힌 이미지가 조작된 것임을 드러내는 데 주목했다. 로리 시몬즈는 극단적으로 현실을 재구성한 작가였는데, 인형과 프라모델로 중산층 여성의 삶을 재구성해놓고 이를 카메라에 담았다. 여성들을 미디어의 소비자로 전락한 의식 없는 주체(인형)로 본 것이다.


이들은 정체성 찾기에도 주목하면서 카메라 렌즈를 자신에게 돌리기 시작했다. 특히 ‘인종의 용광로’라는 미국의 신화에 의문을 제기했다. 중국계 미국인 쳉퀑치는 인민복을 입고 할리우드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 자신이 영원한 이방인일 수밖에 없음을 시위했다. 60대인 존 코플란즈는 상품성이 전혀 없는 자신의 추레한 몸을 찍는 것으로 소비 사회의 그늘을 드러냈다.


신디 셔먼 사진


신디 셔면·낸 골딘과 같은 여성 작가들도 정체성 찾기에 주목했다. 전략적인 여성주의 작가로 꼽혔던 신디 셔먼은 미디어가 보여주는 여성의 단순한 이미지를 드러내기 위해서 직접 분장하고 미디어에 등장하는 여성처럼 사진을 찍었다. 낸 골딘은 이와 달리 실제 상황을 까발리는 데 주목해, 남자 친구에게 얻어맞은 자신의 얼굴을 그대로 보여주기도 했다.


미국의 현대 사진작가들이 깨부순 또 한 가지 신화는 ‘중산층 신화’였다. 리처드 반즈는 MIT 공대 박사 출신 연쇄 폭파범의 오두막집을 사진의 주제로 삼았다. 폭파범의 오두막집을 통해 그는 ‘자기만의 방’에 처박힌 미국인의 오늘을 보여주었다. 평범한 주부이던 샐리 만은 미국의 중산층이 얼마나 많은 불안에 노출되어 있는가를 사진에 담았다. 그녀는 자신의 세 아이를 주로 찍었는데, 사진에 담긴 유괴와 성폭행의 이미지 때문에 어린이 학대 시비에 휘말리기도 했다.


샐리 만 사진


새 천년에 들어서면서 미국 현대 사진작가들의 실험은 다소 시들해졌다. 작품이 너무나 난해해서 대중적인 접근을 차단한 것이다.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 사진담당 큐레이터인 더글라스 니켈은 “관념적이고 교훈적이었기 때문에 미국 현대 사진작가들의 작품은 대중에게 쉽게 다가설 수 없었다. 일부는 예술적 표현 수단으로써의 사진을 버리기도 했다. 그러나 그들의 작업은 계속되고 있다. 앞으로 팍스 아메리카나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담은 작품도 나올 것으로 기대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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