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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재열 여행감독 Sep 05. 2021

제주 게스트하우스 문화의 시조새들, 제2편

홍대 앞 문화를 그대로 제주에 옮겨놓은 듯한 분위기였다



홍대 앞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분위기였다. 제주올레가 제주의 자연을 재발견하게 해 주었다면 게스트하우스문화는 제주의 문화를 재창조했다고 할 수 있다. 몇몇 선도적인 게스트하우스와 카페가 단숨에 제주를 '홍대 앞'으로 바꿔 놓았다. 10년 전에 그들을 한 명 한 명 찾아다니며 제주를 어떻게 수놓는지를 들여보았다. 





제주올레가 놓인 후 사람들이 바람처럼 제주도를 드나들었다. 관광객이 아니라 순례자처럼 제주도 곳곳을 누비며 꼼꼼히 살폈다. 걸어서, 혹은 자전거를 타고, 때로는 스쿠터를 타고, 아니면 자동차를 타고…. 그렇게 바람처럼 제주도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던 사람들이 돌하르방처럼 눌러앉았다. 제주도에 정주하기 시작한 것이다.


지난봄 ‘놀쉬돌(잘 놀고 잘 쉬는 아이돌)’의 대표 주자 중 하나로 제주도 쫄깃쎈타 게스트하우스를 만들던 만화가 메가쑈킹(37·가명)을 취재하면서 그런 조짐을 읽었다. 뭔가 심상치 않았다. 제주도에 마음을 내려놓은 사람들이 몸까지 내려놓기 시작했다. ‘연세’ 200만 원 내외의 빈집을 골라 마을 곳곳을 파고들고 있었다(제주도는 전세나 월세 대신 1년 주거비를 선불로 내는 연세가 일반적이다).


가을걷이를 하듯 제주도에 정착하는 사람들을 찾아 나섰다. 찾는 것은 전혀 어렵지 않았다. 그물을 드리우는 대로 꽉 채울 수 있었다. 여러 형태의 이주자 중 주로 ‘문화 이주자’를 찾았다. 삶의 시계를 늦추고 제주도에 가서 문화적인 일을 도모하며 반은 재미로, 반은 업으로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는 사람들. 이들이 정주하기 시작하면서 제주의 문화 지형이 바뀌고, 제주가 더 매력적인 섬, 더 머물고 싶은 섬으로 바뀌었다는 판단에서다.



이들이 둥지를 튼 가장 흔한 형태는 게스트하우스와 카페였다. 제주올레라는 혈관을 통해 사람들의 발걸음이 제주 구석구석에 닿으면서 굳이 유명 관광지나 풍광 좋은 곳이 아니더라도 게스트하우스를 열 수 있게 되었다. 우후죽순으로 제주도에 들어서던 펜션의 유행이 끝나고 이제 게스트하우스가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 잡았는데, 그 흐름을 ‘문화 이주자’들이 주도하고 있었다.


흥미로운 점은 이들이 처음 제주에 내려올 때는 이런 목적을 갖고 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시사IN〉에서 사진기자를 하다가 좀 더 나은 삶을 찾겠다며 사표를 내고 간 한향란씨(38)처럼 대부분 “한 1년 동안은 아무것도 안 하고 놀기만 할 계획이다”라고 말하고 내려간다. 그런데 재밌는 것은 정말 1년 동안 아무것도 안 하는 데 성공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한씨도 ‘와랑와랑농장’에서 친환경 귤 농사를 지어 직거래를 시작했다.


아무것도 안 하겠다던 사람들을 슬금슬금 움직이게 만든 제주의 힘은 무엇일까? 일단 지난여름 개장한 쫄깃쎈타부터 찾아가 보았다. 쫄깃쎈타는 홍대 문화가 익숙한 도시 젊은이들에게 제주도로 통하는 관문 구실을 하는 곳이 되었다. 많은 도시 젊은이들은 올레길을 비롯해 젊은 사람들 코드에 맞는 제주 관련 정보를 이곳에서 얻곤 한다. 20대 중·후반에서 30대 초·중반이 주로 쫄깃센타를 찾는다. 모여드는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분위기가 영락없이 ‘홍대 옆 제주’다.


이미 선망의 공간이 된 쫄깃쎈타는 무급 자원봉사자 모집에도 경쟁률이 치열하다. 최근 합류한 ‘쫄패(쫄깃 패밀리의 약칭)’ 오은선씨(30)는 의대를 나와 전문의가 되기 위한 모든 과정을 마치고도 돈벌이를 시작하지 않고 쫄깃쎈타를 찾았다. 그녀는 “쫄깃쎈타에 두 달 동안 무료로 봉사하려고 왔다니까 택시 기사분이 ‘뭔가 이용당하는 것 같은데 나중에 도망치고 싶을 때 연락하면 도와주겠다’고 했다”라며 웃었다.


쫄깃쎈타를 성공적으로 안착시키고 제주도 상륙작전을 마친 만화가 메가쑈킹은 내년엔 다양한 문화 프로젝트를 시도할 계획이다. 강정마을과 홍대 앞을 연결해 콘서트를 열었던 부스뮤직 부세현 대표와 함께 내년에 록 페스티벌을 열기로 했다. 이 행사를 기점으로 많은 인디 밴드가 제주도를 다녀가면서 ‘홍대 앞’과의 거리도 더욱 좁혀질 것으로 보인다.



문화 이주자들이 즐겨 찾는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간 또 다른 게스트하우스 ‘티벳풍경’은 아주 한가했다. 원조 배낭여행족 박승철씨(53)가 이영화씨(49)와 올봄에 개장했다. 여행 경력 25년으로 〈론리 플래닛〉 여행서 제작에도 참여했을 만큼 베테랑 여행자인 박씨는 원래 티베트 라싸에 게스트하우스를 만들고 싶었다. 그러나 티베트 사태 때문에 만들지 못하고 그 꿈을 제주에 풀었다. 가구 하나하나 주인이 직접 만든 티벳풍경은 인테리어 회사가 깔끔하게 만든 일반 게스트하우스에 비해 세련미는 떨어지지만 정감이 갔다.


스스로 표방하지는 않았지만 티벳풍경은 일종의 ‘치유형 게스트하우스’라 할 만했다. 영혼의 상처를 입은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몰려들어 서로를 보듬고 있었다. 11월8일, 티벳풍경을 방문했을 때 30대 초·중반 남녀 4명이 한가롭고 평화롭게 쉬고 있었다.


조심스럽게 말을 섞어보았다. 그들은 대부분 손님이 아니었다. 이곳에 장기 투숙하다가 근처에 연세를 얻어 살고 있다고 했다. 그들 대부분은 치유를 위해 제주도를 찾았다고 한다. 마루에 누워 있던 조성진씨(34)는 “8년 동안 한 번도 휴가라는 것 없이 바쁘게 살았다. 그러다 제주도에 여행을 왔다가 문득 고향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을 줄 수 있는 나만의 고향을 만들기 위해 여기 있다”라고 말했다.


건너편 그네에 앉아 있던 이승철씨(35)는 “가만히 있어도 통증이 느껴질 정도로 아팠다. 우울증에 시달렸다. 이곳에 여행을 와서 4일 만에 통증이 사라졌다. 사는 것이 먼저고 일은 나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1년 동안 바보처럼 멍하니 살고 싶었는데 어쩌다 보니 카페를 맡게 되었다”라고 말했다. 그는 도시에서 수해방지 사업체에서 일했다고 했다.


이들 옆에서 부지런히 손뜨개질을 하던 여성(트위터 아이디 @lupinchoi35)은 좀 더 적극적인 제주 이주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영화투자사에서 일하던 그녀는 지난 8월 서울 살림을 모두 정리하고 제주도에 내려왔다. 베이커리 카페를 열 계획이다. 하지만 급할 것은 없다. 일단 충분히 쉴 생각이다. 그녀가 뜬 털모자를 2만 원에 구입했다.


조금 있으니 남성 두 명이 국수 다발 하나를 들고 왔다. 수연씨와 성흠씨였다. 그들 역시 티벳풍경에 장기 투숙하다가 근처에 연세를 얻어 나가서 사는 제주 이민자였다. 무도 뽑고 귤도 따면서 소소한 돈벌이를 한다고 했다. 이날은 단란주점 페인트칠을 하고 오는 길이었다. 이들이 끓여준 국수와 옆집 아주머니가 가져온 묵은 김치로 저녁을 함께 먹었다.


티벳풍경이 있는 서귀포 대평포구 일대에는 이런 게스트하우스가 4곳이나 들어서 있었다. 장선우 감독의 ‘물고기 카페’ 등 카페도 두 곳이 들어섰다. 도심 번화가도 아니고 시골 마을에 이렇게 많은 문화 시설이 들어선다는 것이 이제 제주도에서는 이례적인 일이 아니다. 그리고 이 거점들을 중심으로 수많은 문화 이주자가 제주도에 닻을 내리기 위해 두리번거리고 있다. 



게스트하우스와 함께 제주 문화 이주자들이 많이 시작하는 일 중 하나가 바로 카페를 여는 것이다. 이들의 감각과 제주도의 자연경관이 결합하면서 독특한 카페들이 생겨나고 있다. 출판사에서 일하다 남편과 제주도에 내려온 하민주씨는 서귀포시 안덕면 산방산 아래에 ‘레이지박스’ 카페와 게스트하우스를 함께 열었다. 영국 런던에서 디자이너로 일하는 후배가 디자인하고 서울에 있는 친구가 제작해주었다는 소품들은 이 카페에 들어서는 순간 홍대 카페에 온 게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게 한다. 창밖으로는 서귀포 특유의 환상적인 해안 절경이 펼쳐지는데 말이다.


젊은 여성들이 카페를 한다니까 다방을 여는 것으로 오해받아 처음에는 지역 주민들에게 배척당하기도 했다. 소통의 끈을 이어준 것은 마을 아이들이었다. 디야나 씨는 “카페에 찾아오는 아이들에게 아이스초코를 나눠주었다. 그런데 어느 날 아이들이 선물을 주고 갔다. 공짜는 싫었는지 쑥부쟁이로 만든 꽃다발을 주고 가더라. 그 뒤로 아이들과 마음이 통했다”라고 말했다.


태풍이나 폭우 등 자연재해가 많이 일어나는 제주도는 금기가 많은 곳이다. 그런 금기에서 빚어진 오해 때문에 외지인이 배척당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 때문에 같은 문화 이민자라고 해도 부부가 함께 내려오는 경우 주민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다. 마을에 복덩이가 굴러 들어왔다는 생각에서다. 서울에서 PD 생활을 하다 제주도에 ‘함피디네 돌집’이라는 게스트하우스를 연 함주현(35)·최정은(31)씨 부부는 “관광지가 아니라서 젊은 사람을 보기 힘들다. 젊은 부부가 제주까지 왔는데 잘되어야 한다며 많이들 도와주신다”라고 말했다.


제주도를 문화적인 섬으로 바꾸고 싶어하던 제주도 문화인들도 이들을 돕는 든든한 우군이다. 이중섭거리에서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라는 여행자 카페를 운영하는 임유경씨는 “초기에 카페가 안착할 때 제주도 문화·예술인들이 큰 도움을 주었다. LP판을 들을 수 있는 카페가 그리웠다며 꼭 성공해야 한다고 인맥을 동원해 손님들을 데리고 와주었다”라고 말했다. 



제주MBC에서 문화 프로그램을 20년 넘게 제작한 안현미 작가는 이런 문화 이주자들의 등장이 제주 토박이 문화인에게도 자극이 되었다고 말한다. 양자가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조금만 긴장의 고삐를 늦추면 변화의 흐름을 따라잡지 못할 만큼’ 제주 문화가 역동적으로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문화 이주자들은 제주에서 벌어지는 현안에도 적극 결합한다.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 반대운동을 주도하고 있는 김세리씨는 이들이 반대운동의 한 축을 이룬다고 설명했다. 그는 “화가 이승민·현경 부부와 이혜진씨, 가수 조약골, 배우 방은미씨 등이 다양한 예술적 재능을 보태면서 투쟁이 더욱 재밌어졌다”라고 말했다. 강정마을을 자주 찾는 여균동 감독은 “마을 주민들이 이런 문화·예술가들을 접하면서 최고의 문 화 생활을 하고 있다. 60~70대 노인들이 인디 밴드 공연을 들으며 즐거워하시기도 한다”라고 말했다.


제주올레 역시 이들의 역량을 ‘올레축제’(11월9~12일)에 끌어들였다. 지난해 제주에 정착해 카페를 운영 중인 시인 손세실리아 씨가 올레축제에서 시 낭송 공연을 하는가 하면, 화가인 남편과 더불어 제주에 온 김예중씨는 제주올레 마스코트인 ‘간세 인형’을 디자인해주기도 했다.



문화 이주자가 늘면서 제주도에 나타난 두드러진 변화 또 한 가지는 외국인 방문자가 많아졌다는 점이다. 지난달 타이 방콕을 여행하던 중에 기자가 카오산로드에서 만난 말레이시아인 아일링 씨도 제주도에서 ‘아일랜드’라는 게스트하우스를 열고 있었다. 추사 김정희의 유배지인 대정마을에 그가 연 게스트하우스는 특히 여성들이 좋아한다.


이처럼 제주에는 최근 외국인이 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게스트하우스가 많아졌다. 외국인 장기 거주자도 꽤 있다. 러시아인 니카 차이코프스카야 씨는 협재해수욕장 근처에 숙소를 정하고 장기 투숙을 하며 제주 안내서를 쓰고 있었다. 그녀는 “동네마다 한 달씩 지내보고 제주를 안내하는 책을 일러스트를 중심으로 쓸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이렇게 국내외 문화 이주자들이 하나둘 둥지를 틀면서 제주는 하루가 다르게 바뀌고 있다. 10년째 제주에 이주해 살면서 사설 여행안내 센터도 운영할 만큼 제주 문화 이주자들의 소식통 구실을 하는 바람 카페 이담씨는 “최근에는 고수들이 많이 들어온다. 이미 내공을 충분히 갖춘 사람들이다”라고 말했다. 이씨는 또 “여행을 많이 해본 사람들이 그런 이야기를 한다. 여행을 하다 보면 결국 다시 제주도에 오게 된다는 것이다. 제주도는 지겹지 않기 때문이란다. 이제는 외지 사람들이 많이 내려오면서 외로울 일도 없다. 커뮤니티가 더 확장되고 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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