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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재열 여행감독 Sep 17. 2021

세운상가는 어떻게 힙한 예술가들의 성지가 되었나

2006년과 2016년 찾았던 세운상가의 변화 현장 모습

 

공간도 자란다. 세운상가가 그렇다. 근대의 공간에서 현대의 공간으로 바뀌기 위해 몸부림을 치고 있다. 마치 변태 하는 곤충들이 껍데기를 벗듯이. 2006년과 2016년에 세운상가의 변화를 취재한 적이 있다. 나름 맥락이 형성되는 부분이 있었다. 세운상가를 처음 건축할 때 '하와이 알라모어를 능가하는 세계 제1의 쇼핑센터'를 만들겠다고 했는데 이곳에서 사람들이 빠져나가면서 들어온 예술가들이 '을지로 하와이'를 구축했다. 아무튼 세운상가는 깊이 들여다볼 구석이 많다. 2006년과 2016년의 기록이다. 


1> 2006년의 기록, 재개발 기지개를 켜다 

한국 최초로 주상 복합 고층 아파트 단지를 세운 곳, 한국 최초 슈퍼마켓이 생긴 곳, 한국 최초의 도심 재개발 사업이 이루어진 곳. 이곳은 어디일까? 바로 세운상가다. 지금이야 믿거나 말거나 한 이야기지만, 세운상가의 시작은 거창했다. ‘하와이 알라모어를 능가하는 세계 제1의 쇼핑센터’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보다 많은 10만의 수용 인구’와 같은 찬사가 건축 당시 세운상가에 쏟아졌었다.


세운상가를 포함한 4개의 건물, 8개의 상가군을 세운 것은 당시로서는 기적에 가까웠다. 국민소득 1백14달러, 전국의 자동차 수가 2만 대 남짓이었던 시절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개발 독재’의 위력을 확인할 수 있는 시설물이었다. 세운상가 재개발을 위해 박정희 정부는 ‘종삼’이라 불리던 사창가를 비롯해 판자촌을 일거에 철거하고 그곳에 근대 도시의 성채를 구축했다.


평범한 주거 지역이던 이곳이 사창가와 판자촌 지역이 된 연원은 태평양전쟁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싸우는 도시, 완성의 진군보’라는 구호를 내걸고 조선을 병참기지화하던 일본은 이곳을 도심 폭격에 대비한 ‘소개 공지대’로 조성했다. 폭격에 의한 화재를 막기 위해 공터로 조성한 것이다. 안창모 교수(경기대 건축전문대학원)는 이곳 역사에 대해 “세운상가의 역사에는 굴곡진 우리 현대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태평양전쟁의 사생아로 세운상가는 출발했다”라고 말했다.


해방과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이곳은 사창가와 판자촌이 우거진 도심의 슬럼이 되었고 그런 이곳에 관심을 기울인 이가 박정희 전 대통령이었다. ‘종이 울리네 꽃이 피네 새들의 노래 웃는 그 얼굴’로 시작하는 패티김의 ‘서울의 찬가’가 처음 불리기 시작한 1966년, 세운상가는 원조 불도저 시장 격인 김현옥 시장에 의해 개발되었다. 박정희 정부의 조국 근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이 사업의 의미를 기리기 위해 김시장은 ‘세계의 기운이 이곳으로 모이라’는 의미로 세운상가로 명명했다. 


조국 근대화의 성지를 조성하려는 김현옥 시장의 구상을 나름대로 순화시켰던 인물은 설계를 맡았던 건축가 김수근씨였다. 완벽한 주상 복합 단지를 구상했던 그는 초등학교와 동사무소까지 유치하려 했다. 근대 건축의 주요 개념을 설계에 도입한 김수근씨가 크게 역점을 둔 것 중 하나는 생태적인 고려였다. 그는 3층에 보행자 데크를 만들어 연결된 4개 상가를 보행자가 차량의 방해를 받지 않고 다닐 수 있도록 배려했다. 그리고 5층에 옥상정원을 만들어 친환경적인 생활 조건을 만들었다. 그러나 그의 이런 앞선 구상은 개발 업자들의 현실 논리에 밀려 대부분 실행되지 못했다.


건축된 뒤 한동안 세운상가는 영화를 누렸다. 특히 주상 복합 아파트가 인기였다. 기업가와 연예인을 비롯해 당시 상류층이 대거 입주했다. 일부 시설물은 1975년 여의도 국회의사당이 완공되기 전까지 의원회관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그러나 명동에 백화점이 속속 들어서고 용산전자상가가 생기면서 밀려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세운상가는 1990년대까지 나름대로 한국의 실리콘밸리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전 네띠앙 사장 전하진씨를 비롯해 많은 벤처 기업가들이 사업을 시작한 곳이 바로 세운상가였다. 전 한글과컴퓨터 사장 이찬진씨가 ‘아래아 한글’ 프로그램을 처음 팔던 곳 역시 이곳이었다. 연세대 사회학과 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이세영씨는 세운상가에 대해 “도시의 콘크리트 유적으로 사회적 무의식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라고 평했다. 


이제 녹지화 사업을 통해 세운상가는 또 한 번 변신을 준비하고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없지 않다. 안창모 교수는 “도심 녹지 축 조성이라는 명분을 앞세우지만 결국 고밀도 개발이 궁극적인 목적이다. 녹지 축 조성은 신개발주의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이명박 시장은 세운상가의 역사에서 전혀 교훈을 얻지 못하고 있다”라고 비난했다. 


2> 2016년의 기록, 젊은 예술가들이 둥지를 틀다

청년들이 서울 곳곳에서 희망을 짓는다. 이 ‘농사’가 흉년 일지 풍년 일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헬조선’에서 버티기 위해 청년과 청년이, 청년과 지자체가 손을 잡았다. 활동도 성과도 아직까지는 모호하고 막연하다. 그럼에도 누군가는 지금도 묵묵히 판을 깔고 있다. 이들이 만들어낸 ‘청년 성지’ 네 곳을 둘러봤다. 청년들이 일궈내는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세운상가는 서울시 애물단지 가운데 하나였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은 거창한 재개발 계획을 발표했다. 세운상가를 헐고 주변부를 고층건물 지역으로 개발해서 보상해준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금융위기가 닥치고 이 지역이 고도제한구역이라 기업이 투자를 꺼리면서 개발이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박원순 현 서울시장은 개발 대신 존치를 결정했다.


흔히들 세운상가를 두고 낡은 이미지를 떠올린다. 젊은 예술가들 얘기는 다르다. 일반인들은 그곳이 복잡하고 어수선하다고 하지만, 그들은 미로를 탐험하는 재미가 있고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젊은 예술가들이 세운상가에 둥지를 틀었다. 포르노 테이프를 팔던 곳에 이제 젊은 예술가들의 작업실이 있다.


세운상가는 젊은 예술가들에게 예술의 근원을 묻게 만드는 공간이다. 예술은 원래 생활과 분리되지 않았다. 기술과도 분리되지 않았다. 세운상가에서는 생활 속에 예술이 자리 잡아 기능을 수행하는 모습을 볼 수 있고, 기술과 분리되지 않고 협업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단순히 도시 재생을 위한 전위대로 쓰이는 것이 아니라 예술의 새로운 미래를 보여준다.



세운상가 가열 324호, 요즘 잘 나가는 대표적인 젊은 작가 빠키의 ‘빠빠빠탐구소’가 있다. 빠키의 옵아트(광학적 미술) 스타일 작업은 화려해서 대기업과 협업을 하거나 화려한 전시장에 전시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의 작업은 주로 세운상가에서 이뤄진다. 주변에서 재료를 구하기 쉽고 기술적인 부분을 해결하기 용이해서다. 몰래카메라 상점들이 즐비한 곳이지만 그는 이곳을 꿈의 작업 공간이라고 말한다.


다른 예술가들이 주로 밤에 작업하는 것과 달리 빠키는 오랫동안 직장생활을 해서인지 낮에 작업한다. 그는 “세운상가의 점포 쪽은 저녁 8시면 전력이 차단된다. 얼리버드 스타일로 작업하기 때문에 나와는 잘 맞는다. 다른 사람들이 뭔가를 고치고 만드는 시간에 나도 작업을 하는 것이 왠지 기분 좋다. 여기서 영감의 원천은 재료 자체다. 신기한 재료를 보면 다음 작업 아이디어가 떠오른다”라고 말했다.


빠키 작가는 세운상가 돌아다니기를 좋아한다. 그냥 구경만 하는 것이 아니라 상인이나 장인들과 농담도 주고받는다. 그렇게 보고 주워듣는 것들로 영감을 얻고 다음 작업도 해결하곤 한다. 그는 “세운상가에 작업실을 얻고 여기 아저씨들과 친해진 것이 가장 큰 보람이다. 농담을 하면서 한 수 배운다. 수다를 떨다 보면 수가 나온다”라고 말했다.


‘빠빠빠탐구소’ 옆 327호에는 ‘개방회로’라는 작가팀의 작업실 겸 전시실이 있다. 둘 다 3평(9.9㎡) 남짓한 좁은 공간이다. 세운상가에는 조명기기 상점이 많은데 이 팀은 조명기기를 활용한 작품을 주로 선보인다. 건물 안쪽 421호에는 ‘스페이스-바421’이라는 전시실이 있다. 이곳에는 현재 하석준 작가의 작품이 전시 중이다.


대림상가와 청계상가 빌딩에도 작업실 겸 전시실이 여러 곳 있다. 공간 이름을 보증금과 월세 금액으로 표시한 ‘800/40’(보증금 800만 원에 월세 40만 원), ‘300/20’(보증금 300만 원에 월세 20만 원), ‘200/20’(보증금 200만 원에 월세 20만 원) 등이 있는데, 전시장이나 쇼룸으로 활용하거나 기획 공간으로 쓰거나 예술서점으로 운영한다.


신진 작가뿐 아니라 중견 작가들도 세운상가 인근에 작업공간을 두고 있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문화창조관의 예술감독을 지낸 목진요 작가의 작업실 ‘전파상’이 얼마 전 대림상가에 들어섰다. 국내 대표 현대미술 작가로 꼽히는 양아치 작가의 작업실 ‘슬로우 슬로우 퀵퀵’도 세운상가 인근에 있다. 안상수 전 서울디자인재단 이사장은 파주타이포그라피학교의 디지털디자인랩을 세운상가에 있던 고 이종호 건축가의 아틀리에에서 운영하기도 했다(현재는 파주로 이전).


세운상가 인근에 입주하거나 이곳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작가들이 많아지면서 홍대 주변과 비슷한 예술가 상권도 서서히 조성되고 있다. ‘AREA’는 미대 출신 3명이 운영하는 카페로 이곳의 대표적인 약속 장소다. 주점 ‘신도시’는 대학가 호프집처럼 이곳 예술가들의 사랑방이 되었다.



세운상가에 작가들이 많아지자 구수현 작가는 지난해 예술가들을 모아서 ‘청계 추계 체육대회’를 열었다. 이름은 체육대회지만 체육대회 형식을 빌린 전시회였다. 작가 9명이 운동경기를 응용한 작품을 선보였고 다른 작가들과 세운상가의 상인과 장인들이 선수로 참여했다. 경기장 장비는 전부 세운상가에서 구했다. 세운상가의 기술을 활용해 만든 것들이었다.


‘세운상가는 예술가들의 하와이다’라고 말하는 구수현 작가의 작업실 이름은 ‘을지로 하와이’다. 그는 이 체육대회를 열면서 이 공간이 예술가들을 거쳐 어떻게 재해석되는지 보여주고 싶었다. 구 작가는 “상인들의 움직임은 생산적이다. 부가가치를 낳는다. 하지만 작가들의 움직임은 비생산적이라 부가가치가 없다. ‘경제적 생산력’을 보여주지 못하는 예술가들의 움직임에 대해 화두를 던지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구 작가가 세운상가 일대를 ‘예술가들의 하와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세 가지다. 작품을 만들 재료가 널려 있고 공간이 무한한 상상력을 자극하며 사람들의 스토리가 다양하다는 것이다. 그는 “세운상가는 캐낼 것이 많은 공간이다. 입주해 있는 단체들의 폭이 넓다. 주류에서 밀려난 사람들이 이곳에 진을 치고 있다. 작업실과 갤러리만 왔다 갔다 하면서 미술계 주변 인물들만 만나는 작가들이 여기서는 정말 다양한 사람을 만날 수 있다. 예술가들에게 최고의 인간 학습장이다”라고 말했다.


구수현 작가와 함께 ‘청계 추계 체육대회’를 기획한 손원영 작가는 세운상가-을지로의 터줏대감이다. 이곳에 작업실을 연 지 벌써 8년째다. 손 작가는 세운상가 일대가 예술가들에게 좋은 이유로 “소리가 큰 공구를 사용해서 작업해도 전혀 항의가 들어오지 않는다. 노래를 크게 틀어놓고 작업할 수도 있다. 재료를 바로바로 살 수 있다. 기술적인 문제가 생겨도 주변 장인들의 도움을 받아 쉽게 해결할 수 있다”라는 점을 꼽았다. 퍼즐 문양으로 점을 찍듯 그림을 그리는 회화 작가였던 그는 이곳에 작업실을 연 이후 퍼즐을 만들어서 설치하는 설치 작가로 거듭났다.


손 작가는 세운상가에 입주한 실험실의 도움도 많이 받았다. 한국인 최초 우주인 후보였던 고산씨가 만든 FAB-LAB에서 ‘아두이노(Arduino)’ 과정을 수료했다. 전기·저항 이론을 공부하고 LED와 센서를 사용할 때 필요한 변수·함수도 공부해서 자신의 작업에 응용했다. FAB-LAB은 세운상가의 예술 부활과 관련해 매우 중요한 곳 가운데 하나다. 기술과 예술을 접목하는 매개자 구실을 하기 때문이다.


FAB-LAB은 다양한 목적을 수행하는 공간이다. 미국 매사추세츠 공과대학(MIT)의 원격 강의를 들을 수 있는 곳이며, 국내 대학의 ‘아이디어 팩토리(Idea Factory)’를 컨설팅하는 곳이기도 하다. ‘메이커 스페이스(Maker Space)’로 3D 프린터를 직접 출력해보고 드론도 만들어볼 수 있다. FAB-LAB을 구축한 고산씨는 “세운상가는 거대한 3D 프린터다. 못 만들어내는 것이 없다. 하드웨어 제작 역량은 최고다. 우리는 이곳과 첨단기술의 만남을 매개하고 다양한 교육을 통해서 기술이 예술과 아이디어와 결합하도록 만든다”라고 말했다.



세운상가는 그 자체로 예술이 되기도 한다. ‘코끼리들이 웃는다’ 팀을 이끌고 ‘요상한 축제입정동 봄바람’이라는 행사를 연 이진엽 작가는, 세운상가 옆 입정동을 예술적으로 재해석하고 있다. 입정동은 세운상가 바로 옆 동네로 주물 작업이나 스테인리스 가공, 윤내기 작업 등을 하는 공업사들이 몰려 있는 곳이다. 이 작가는 이곳에서 공업사 기능공들과 함께 2009·2011· 2013·2016년 네 번의 ‘스트리트 씨어터’를 열었다.


거리 공연을 하게 된 계기에 대해 이 작가는 “입정동 공업사 주인들이 연극을 본 적이 없다는 말을 듣고 이 골목에서 연극을 해봐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들의 이야기로 작품을 만들었다. 매일 단순 반복적인 노동을 하는데 그것을 예술로 재해석해 의미를 부여하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입정동 봄바람’은 용달차를 무대로 사용했다. ‘골목 시인’을 발굴해 시를 발표하게 하고, 공연에 참가하고 싶어 하는 사람을 초대해서 배우로 무대에 서게 했다. 공연에 쓰일 타악기를 비롯해 무대·조명·소품 모두 입정동에서 제작했다. ‘우리는 탱크도 만들 수 있다’고 골목 장인들이 자랑하던 것을 상기시키며 ‘리어카’로 탱크를 만들어 활용하기도 했다. 직접 작품에 참여하지 않은 장인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작품을 설명해주었다. 그들은 단순한 감상자 이상으로 공연에 적극 참여했다. 이 작가는 “함께 작업했던 예술가가 자기 아버지도 이런 일을 하시는데 아버지가 일하는 곳에 한 번도 가보지 않았다고 하더라. 여기 공업사 사장들도 가족들이 여기 와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런데 공연 때 가족을 데려왔다. 그때 보람을 느꼈다”라고 말했다.


이렇게 세운상가 일대가 예술가들을 통해서 재생되고 있는데, 다른 지역의 도심재생과 차별화되는 지점이 몇 가지 있다. 하나는 관이 기획한 것이 아니라 예술가들이 자발적으로 들어와 부흥을 일으키고 있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몇몇 기획자나 특정 대안공간이 중심이 되어 일어나는 현상이 아니라 예술가 자신이 주체적으로 일으킨 바람이라는 점이다. ‘○○은 대학(공공은 대학)’이라는 사회적 기업이 지난해 세운상가에 만든 ‘세운공공연구소’(이하 세운공공)는 이런 예술가들의 자발적인 움직임을 꿰어내는 구실을 맡았다.


세운공공은 일종의 거버넌스 그룹으로 세운상가 일대의 정보 교류와 협력의 거점이다. 예술가와 활동가들을 장인과 연결해주는 코디네이터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세운상가는 대학이다’라는 구호를 내건 세운공공의 접근법은 이곳의 장인들을 스승과 예술가로 재해석하는 것이다. 그래서 속도전을 지양하고 주민들과의 소통을 꾀했다. 재생이란 같이 부대끼면서 오랜 시간을 두고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먼저 장인과 상인들 270여 명을 인터뷰하고 이들의 초상화를 만들어 선물했다. 그렇게 해서 인물 정보를 먼저 수집했다.


세운상가에는 수리 장인이 많다. 이런 점도 활용했다. 강원재 세운공공 소장은 “이곳 장인들은 ‘우리는 무엇이든 고칠 수 있다’라고 말한다. 그래서 진짜 고칠 수 있나 없나 이벤트를 해보았다. 온라인으로 고칠 물건을 접수했다. 그것을 장인들에게 가져다주니 진짜 고쳤다. 그래서 이를 바탕으로 ‘수리수리협동조합’을 만드는 중이다”라고 말했다. 세운상가의 수리 장인들은 어릴 때 이곳에 와서 도제식으로 수리 기술을 익힌 사람들이다. 이들은 어려운 청소년들에게 기술을 나누고 싶어 했다. 세운공공에서는 이들의 뜻을 모아 ‘자립을 위한 생활수리학교’라는 이름의 청소년 대안학교를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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