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정권 시절 이야기다. 문화체육관광부는 2015년 1월2일 한00 상명대 산학협력단 특임교수를 국립오페라단 예술감독 및 단장으로 임명했다. 그러자 클래식 음악계가 격렬하게 반발했다. 자격이 없다는 것이다. 성악가와 평론가들이 주축이 되어 한국오페라비상대책위원회(이하 비대위)를 꾸린 후 적극적인 반대 활동을 펼쳤다. 뚜렷한 예술적 성취가 없었던 대학교 객원교수가 갑자기 국립오페라단 단장이 되면서 큰 논란이 일었다.
신임 예술감독의 석연치 않은 경력이 주요 논란거리였다. 추천 과정도 투명하지 않았다. 비대위의 이야기를 요약하면 이렇다. ‘국립오페라단 예술감독 자리는 경험을 쌓는 자리가 아니라 능력을 증명하는 자리인데 경력이 일천한 성악가가 임명되었다, 원로나 중견 음악가가 맡아야 할 자리를 강사급 성악가가 맡은 격이다, 박근혜 정부의 잘못된 낙하산 인사다….’
한 감독은 정말 국립오페라단 예술감독 자격이 없는 사람이었을까? 문화체육관광부는 보도자료에서 “한예진 신임 국립오페라단 예술감독은 밀라노 베르디 국립음악원에서 성악을 공부했고, 유럽과 일본에서 오페라 주역 가수로 활동하며 국제무대에서 큰 호평을 받는 등 현장 경험이 많아 세계 오페라 흐름 파악에 안목과 기량을 갖추고 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라고 소개했다.
다소 과장된 보도자료였다. 문체부의 발표 내용을 부정한 사람은 한 감독 자신이다. 그녀는 국립오페라단 사업 발표회 자리에서 자신이 세계 무대가 아니라 국내 무대에서 활동하는 성악가라며 세계적인 소프라노는 아니라고 해명했다. 그리고 이전에 오페라를 제작해본 경험도 없다고 밝혔다.
한 감독의 음악 이력은 제법 화려하다. 산타체칠리아 국립음악원과 함께 대표적인 음악 명문으로 꼽히는 이탈리아 밀라노 베르디 국립음악원을 졸업했다. 메라노 국제콩쿠르에서 심사위원장 특별상(2007)을 수상했고 코모 국제콩쿠르에서 우승했다. 마샬라 국제콩쿠르와 벨칸토 국제콩쿠르에서도 1위를 한 것으로 나온다.
이런 한 감독의 공식 이력을 되짚어보았다. 대전의 유명한 한식집 딸인 그녀는 1991년 충남대학교 성악학과에 입학했지만 한 학기 만에 그만두고 이탈리아로 유학을 갔다. 그리고 9년 뒤인 2000년 여름에 밀라노 베르디 국립음악원을 졸업한다. 베르디 국립음악원 전에 여러 아카데미를 수료했는데 피아첸차 국립 콘서바토리(음악학교)를 마치고 베르디 국립음악원으로 편입한 것으로 추정된다(이 부분에 대해 한 감독에게 확인을 요청했으나 답이 오지 않았다).
정규 코스가 5년제인 베르디 국립음악원은 한국의 많은 성악가가 유학을 가는 곳이다. 이곳을 졸업한 한국 성악가 여럿이 유럽 무대를 누비고 있다. 한 감독은 이 대학에서 ‘최우수 졸업’을 했다고 홍보했는데 이 말은 반만 맞다. 주임교수(Margaret Hayward)가 준 실기 점수는 높았다. 하지만 필수 과목 성적은 평균이 10점 만점에 7점을 약간 넘는 수준이었다.
베르디 국립음악원 졸업을 전후로 한 감독은 몇몇 콩쿠르에 입상한다. 그러나 베르디 국립음악원 출신의 성악가에게 문의한 결과 한 감독이 입상한 콩쿠르 중에 ‘세계적’이라는 수식어를 붙일 만한 콩쿠르는 없었다. 새정치민주연합 박홍근 의원이 확인한 문체부 자료에 따르면 한 감독이 제출한 국제콩쿠르는 병무청에서 병역 면제 대상을 판단할 때 기준이 되는 국제콩쿠르에 들어가지 않는 대회였다.
콩쿠르의 나라인 이탈리아에서는 콩쿠르를 단순히 수익사업으로 여기는 경우도 많아 콩쿠르의 위상이 중요하다. 한 감독은 졸업 후 잠시 이탈리아 지방 무대에 섰다. 그런데 그녀가 섰던 무대 중에 눈에 띄는 무대는 없었다. 한씨 스스로도 베르디 국립음악원의 졸업발표회를 가장 기억에 남는 무대로 꼽았다.
세계적인 소프라노가 아니라고 해서 국립오페라단 예술감독 자격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이전의 국립오페라단 단장이나 예술감독들이 세계적인 소프라노였던 것도 아니다. 이것 때문에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한 감독은 전임 오페라단 단장들이 자신보다 특별히 자격이 있었던 것은 아니라는 취지의 말을 했다가 급히 주워담기도 했다.
한 감독은 자신을 ‘국내 활동을 열심히 한 성악가’로 소개했다. 실제로 2004년 귀국 음악회 이후 활발하게 활동했다. 국립오페라단의 오페라에도 출연했고 지상파 방송사의 클래식 음악회에도 나갔다. 일본 등에서 열리는 해외 음악회에 함께 다녀오기도 했다. 활발히 활동한 성악가로 해석해줄 여지는 충분하다.
그러나 이런 이력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있었다. 한씨의 두 번째 남편이다(첫 번째 남편은 성악가였다). 사업가인 그는 한씨의 이력에 대해 자신이 해당 음악회를 후원해서 출연시킨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런 이력을 쌓게 한 뒤 교수로 만들려고 했다는 것이다. 그는 그것이 클래식계의 관행이어서 어쩔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현재 그는 한씨와 이혼한 상태고 이혼과 관련해 소송을 진행하기도 했다.
후원자였던 남편과 헤어진 뒤에도 한 감독은 왕성하게 활동했다. 기획사에 매니지먼트를 맡겼는데 ‘나비엑터스’라는 아역 배우 전문 매니지먼트 회사였다. 그리고 2012년 상명대 평생교육원에 객원교수로 임용되어 일반인 대상 노래교실에서 강의했다. 2014년에는 산학협력단 소속의 특임교수로 변경되었다.
언론에 보도되었듯이 상명대 객원교수로 임명될 당시 로비가 있었다. 당시 로비를 진행한 교수는 성악가인 한씨를 작곡과 교수에게 청탁했다(상명대에는 성악과가 따로 있다). 나중에 이 교수는 평생교육원 강사 자리를 부탁한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작곡과 교수에게 청탁했다는 점에서 앞뒤가 맞지 않는다. 한씨의 상명대 이력은 문화체육관광부가 특임교수로 임용된 해를 2014년이 아니라 2003년이라고 표기해 큰 문제가 되기도 했다. 비대위에서는 이와 관련해 ‘사문서 위조와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 방해 혐의’로 한 감독을 고발했다.
이런 논란이 일자 한 감독은 고립무원 상태에 빠졌다. 그녀를 방어하는 우호 세력은 없었다. 음악인에 대한 논쟁이 일 경우 보통은 음악적 성과를 인정하는 우호 그룹이 나타나는데 그런 그룹이 보이지 않았다. 누가 왜 추천했는지가 밝혀지지 않았다. 당연히 낙하산 논란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누가 내려보냈을까? 오리무중이었다. 한씨는 정치인들과 두루 친분을 유지했다. 염홍철 전 대전시장을 비롯해 지역의 유력 정치인들과도 친했다. 그들 중 박근혜정권과 가장 거리가 가까운 것으로 꼽히는 이는 강창희 전 국회의장이었다. 강 전 의장이 참석하는 행사에서 한씨가 공연하기도 해서 이런 의혹이 제기되었다. 그러나 강 전 의장 측은 비대위의 문의에 대해 한씨의 추천 과정에 개입한 바가 없다고 답했다.
김건희 경력 부풀리기 의혹을 보면서, 박근혜정부 시절 한 교수의 국립오페라단 단장 임명 때 논쟁과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정아 예일대 학력 위조 논쟁과 비슷한 측면도 있고. 인간의 욕망이 지속되는 한 이런 비극적인 역사는 계속 반복될 수밖에 없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