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인해 많은 지역축제가 취소되었다. 일부 축제는 '랜선 축제'로 열리기는 했지만 수만 혹은 수십 만을 모으던 오프라인 축제는 지난해와 올해 볼 수 없었다. 우후죽순으로 생겼던 축제가 이제 태풍을 맞은 듯 쑥대밭이 되었다.
"그런데 말입니다, 여기서 한번 생각해 보시죠. 안 열려서 아쉬운 축제가 있으신가요?"
안 열려도 아쉬운 것이 없다면, 축제를 기획하는 사람들이 한 번쯤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다. 축제의 본질이 생산 활동의 잉여 행위로 비생산적이기는 하지만 아쉬운 것이 없다는 것은 다른 문제다. 우리의 지역축제가 축제의 본질에 충실하지 못했다는 것을 방증하기 때문이다.
농사꾼 철학자 천규석 님이 쓴 <잃어버린 민중의 축제를 찾아서>(실천문학사)는 우리 시대의 축제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추천하는 책이다. 우리나라 지역축제에 없는 것 세 가지를 잘 꼬집고 있다.
‘이것은 축제가 아니다.’
사시사철 축제가 넘쳐나는 대한민국에서 그는 축제를 볼 수 없다고 말한다. 서울대 미학과를 졸업하고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민예총) 의장을 역임한 그는 농촌 재건을 위해 평생 ‘소농두레’ 운동을 했다. 한살림운동 대구공동체를 만들고 도시와 농촌의 공존을 도모하는 ‘공생농두레농장’을 운영하고 있다. 마을공동체 활동을 꾸준히 해온 그가 보기에 요즘 지방자치단체들이 벌이는 축제는 축제가 아니다. 왜?
우리 전통 마을굿에서 천씨는 그 해답을 찾는다. 마을굿에는 기원하는 바가 있었고, 신명이 있었고, 전복이 있었다. 상당(산신당)·중당(성황당)·하당(솟대나 장승)을 두어 체계적으로 마을신을 모시던 시절, 마을굿은 마을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진정한 축제였다. 그런데 요즘의 지자체 축제에는 그런 것이 없다는 것이다.
“기초 공동체의 자발적 축제와 중앙과 지방정부의 관제 축제는 전통사회에서도 대립했다. 문제는 오늘날 공동체 축제는 없고 전부 관제 축제만 있다는 것이다.”
축제는 기원하는 바가 있어야 한다. 기원의 강도가 축제의 열기로 치환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 축제에는 이런 기원이 없다. 기원하는 바가 있다면 오직 단체장의 이름이 높아지는 것 뿐이다. 천씨는 이렇게 비판했다.
“요즘 축제에서 사람들이 기대하는 바는 단순하다. 장사꾼은 많이 팔기만을 원하고 참가자들은 재미만을 원하고 국가와 지자체는 이데올로기 선전에 여념이 없다. 이것은 기원이 아니다. 공동체를 위한 기원이 있어야 축제가 성립된다.”
그 다음은 신명이다. 욕망을 드러낼 때 신명이 난다. 욕망 중에서는 성적 욕망이 강하다. 그래서 원시사회의 축제는 성적 행위와 관련된 것이 많았다. 우리의 전통 마을굿에서는 성적인 것을 행위가 아닌 말로 풀었다. 그래서 남녀의 성기나 성행위를 묘사하는 것이 많았다. 이런 신명을 돋우기 위해서는 금기를 풀어야 한다. 그런데 요즘 지역 축제는 통제가 먼저다. 천씨는 이를 이렇게 해석했다.
“통제는 사고의 위험과 책임에 대한 우려 때문에 발생한다. 공동체에 대한 자신감이 없다는 것이다. 축제 기간 어느 정도의 탈법과 위법을 용인해주는 것이 공동체의 힘이다.”
마지막으로 전복이다. 천씨는 전복이 없으면 축제가 아니라고 말한다. 전복한 것을 기억하거나, 전복하지 못한 것을 전복한 것처럼 가장한다. 조선 시대에 탈을 쓰고 양반과 승려를 비꼬았듯이 일탈과 전복이 있어야 축제가 성립한다는 것이다.
“겉으로는 정상적인 것을 비정상적인 것으로 바꾸는 듯 보인다. 사실은 정상적으로 보이지만 비정상적인 것을, 비정상적인 것으로 보이지만 정상적인 것으로 대체하는 것이다. 잠시나마.”
기원이 있고 신명이 나고 전복을 도모했던 우리의 축제를 누가 망쳤나? 천씨는 세 가지를 꼽는다. 일제의 통제와 기독교의 복음과 새마을운동이 그 주인공이다. 사람들의 마음이 하나가 되는 걸 막기 위해 일제는 대동굿을 없앴다. 교조적인 형태로 들어온 기독교는 무당이 행하던 초보적인 기복신앙만 수용하고 마을굿을 배척했다. 새마을운동도 이를 ‘헌마을의 관습’으로 치부하고 타파했다.
축제가 사라지는 과정은 무당이 몰락하는 과정과 궤를 같이한다. 전통사회에서 공동체를 위한 기원을 주관하며 권력자로 군림했던 무당은 불교에 밀려 권력을 내주고 유교에 치여 천민으로 전락해 개인의 기복을 빌어주는 일 정도만 수행한다. “공동체가 사라지면서 그들의 역할도 사라졌다. 군부독재 시절 무당들이 우파 앞잡이 노릇을 하던 때가 있었다. 신의 뜻을 받들던 사람들이 신을 팔아 연명한 것이다. 공동체를 복원하려면 그들이 했던 역할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잃어버린 민중의 축제를 찾아서>는 재미와 놀이에 관한 온고지신의 교훈을 얻을 수 있는 책이다. 내년 지방선거에 나가는 후보 가운데 진정한 축제를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꼭 읽어보길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