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재열 여행감독 Feb 04. 2022

개기고 싶을 때 읽으면 더 개기고 싶어지는 책


일본 사회는 순응의 사회다. 우리 사회에 비하면 그렇다. 한국 사회가 현대사의 큰 굴곡마다 엄청난 반항 정신으로 역사를 갱신하는 동안 일본 사회는 끝없이 순응했다. 그런 순응 사회라서 그런지 '개기는' 일본인(혹은 재일동포)'이 귀하게 느껴진다. 순응사회 일본의 반항아들이 쓴 책 세 권을 소개한다. 오늘같이 개기고 싶어지는 날 읽으면 더 개기고 싶어지는 책! 




<모두들 하고 있습니까>

기타노 다케시 지음, 권남희 옮김, 중앙북스 펴냄


일본에서 가장 ‘할 말 다 하고 사는 남자’로 꼽히는 저자가 연애와 결혼과 섹스에 대해서 솔직하게 생각을 밝혔다. 모든 이야기가 본능에서 시작하는데, 제목부터 볼 수 있듯이 요즘 유행하는 ‘19금 토크’와는 독성이 다르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남자가 여자에게 사랑을 고백하며 “당신을 위해 난 죽을 수도 있어”라는 말을 많이 하는데 이 말을 남자가 여자에게 들으면 무서운 말이 된다고. 그리고 남자가 여자에게 “내 아이를 낳아줘”라는 말도 여자에게서 “당신의 아이를 낳아줄게”라는 말로 들으면 섬뜩하다고.


가정에 대해서도 생각이 다르다. 그는 좋은 가정에 대해서 이렇게 정의한다. “우리 집처럼 아침에 내가 나가는 것도 모르는 것이 가장 좋다. 집에 돌아온 줄도 모르고 나간 줄도 모르는 그런 따뜻한 가정. 고양이도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완벽하게 자유로운 가정이 좋다.”


그는 사랑은 자기 자신을 향한 것이고 남을 향한 것은 욕망이라고 단정한다. 자기 자신을 열심히 사랑한 뒤에 쪼르륵 흘러넘치는 사랑을 비로소 남에게 줄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길들지 않는다>

마루야마 겐지, 김난주 옮김, 바다출판사 펴냄
 

<인생 따위 엿이나 먹어라>라며 힐링과 위로를 조소하고 ‘독고다이’ 인생론을 펼쳤던 마루야마 겐지가 이번에는 ‘젊음’에 대해서 화두를 던진다. 그가 생각하는 젊음은 바로 ‘자립’이다. 온전히 자기 자신에만 의존해서 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야생의 본성을 죽이고 생기 넘치는 삶을 방해하는, 자립을 막는 것을 적으로 규정한다. 그 첫 번째 적은 어머니의 사랑이다. 어머니가 하나에서 열까지 시시콜콜 뒤를 봐줄 때마다, 고민을 털어놓고 의논할 상대도 도움을 줄 수 있는 상대도 어머니밖에 없다고 세뇌할 때마다, 아들의 젊음은 점점 더 죽어간다고 말한다.


어머니만큼 치명적인 적은 직장이다. 그는 한 번 직장인의 세계에 몸담고 나면 젊음이 말살당해 그저 얼간이로 추락하는 도리밖에 없다고 꼬집는다. 자유롭게 살 권리의 90%를 포기한 셈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젊음을 막는 가장 근원적이고 거대한 적을 국가로 규정한다. 분노를 술과 복권으로 잠재우고 기득권을 유지시키며 젊음을 소진시킨다며 비난한다. 그리고 미디어가 정의를 왜곡하며 이를 부추긴다고 고발한다.  



<가부키초>

권철 지음, 안해룡 옮김, 눈빛 펴냄


“당신의 사진이 만족스럽지 않다면, 당신은 충분히 다가가지 않은 것이다.” 사진가 로버트 카파의 말이다. 충분히 다가갔다면? 그다음은 시간이 문제일 것이다. “당신의 사진이 만족스럽지 않다면, 당신은 충분한 시간 동안 찍지 않은 것이다”라고 바꿔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충분히 다가가서 충분한 시간을 들여 찍었다면 기대해볼 만한 사진이 나올 가능성이 크다.


사진가 권철의 사진집 〈가부키초〉는 이 가설을 만족시켜주는 르포르타주 사진집이다. 일본에서 가장 화려한 곳이지만 또한 가장 범죄가 많이 일어나는 곳이 바로 도쿄 가부키초다. 욕망과 욕망이라는 신기루를 채워주는 유행, 그 유행에 기댄 가짜, 그 가짜를 형식적으로 단속하는 공권력 등 일본 사회의 모순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가부키초를 무려 16년 동안 카메라에 담았다. 일본인은 아니지만 ‘가부키초 공식 사진가’를 자처하며 당당하게 담았다.


처음 그가 가부키초를 카메라에 담기 시작한 것은 야쿠자와 경찰 50여 명이 서로 뒤엉켜 난투극을 벌이는 모습을 보고 난 후다. ‘인간의 욕망이 있는 그대로 드러나는 인간극장’이라는 생각이 들자 그때부터 줄곧 가부키초를 카메라에 담았다. 그리고 경찰도, 야쿠자도, 호객꾼도, 노숙자도, 가출 여학생도 그가 가부키초를 기록하는 공식 사진가라고 착각할 만큼 당당하게 기록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 우리나라 지역축제에 없는 것 세 가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