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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재열 여행감독 Apr 24. 2023

나미비아의 붉은 사막, 총천연색 브라운관 속으로

2023년 11월 초에 다시 나미비아 사막에 갈 예정입니다


유채색의 사막 나미비아의 모래꽃 ‘DUNE 45’


사막은 두 종류가 있다. 나미비아사막과 디 아더스. 유일한 유채색의 사막, 머릿속으로 그린 그대로였다. 아니 그 이상이었다.


마치 아무도 안 지나간 눈밭을 걷는 기분으로 Dune45 모래언덕을 걸어 올랐다. 바람이 어제의 발자국을 완벽히 지워 놓았다. 새벽에 오르는 자의 특권이었다.


모래언덕의 선은 가까이서 보면 날카롭고 멀리서 보면 유려하다. 그 위태로운 선을 조금씩 무너뜨리며 모래언덕을 올랐다. 바람이 깎아 놓은 쪽은 모래가 조금 거칠었고 옮겨 놓은 쪽은 부드러웠다.



캄차카 화산을 오를 때와 비슷했다. 한발 한발 너무 힘을 주면 오른 만큼 미끄러져 내려왔다. 모래를 어르고 달래며 경쾌하게 올라야 했다. 에너지 소모가 많았다. 12명의 일행 중 불과 4명만 정상에 올랐다.


조금씩 모래언덕 오르내리는 법을 터득했다. 거친 모래를 딛고 올라가 부드러운 모래를 누르며 내려오기. 바람에 날려온 모래가 쌓인 쪽의 경사가 더 위태로웠지만 천연 쿠션이었다. 마치 구름 위를 걷는 기분으로 사뿐싸뿐 내려왔다. 겁을 내던 일행도 미끄럼도 타고 구르기도 하면서 모래언덕을 즐겼다.


몽골의 언덕처럼, 언덕을 넘어야 언덕이 보였다. 아래에서 보면 만만했는데, 언덕을 오르면 새로운 언덕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게 좌절과 용기를 거듭하자 드디어 정상부 능선이 나타났다.



오르고 나니 피안의 세계였다. 밑에서 보면 위태로운 사면에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오르는 동안 모래에 익숙해진 우리에게는 소파나 다름없었다.


바람의 속삭임을 들으며 해가 나타나길 기다렸다. 나미비아 동쪽 사바나 지역과 서쪽 사막을 가르는, 남북으로 길쭉한 산맥을 천천히 적셔가며 해가 솟아올랐다.


그늘이 선명해지니 유채색의 사막 또한 더욱 선명해졌다. 계속 뒤돌아보며 그 풍경을 눈에 담았다. 석양에 한 번 더 오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을 품고 롯지로 돌아왔다.



죽을 때까지 죽은 게 아니다, 데드블레이 고사목들


그냥 찍으면 화보가 되는 곳. 누가 모델이 되어도, 어떤 포즈를 취해도, 혼자 찍어도, 같이 찍어도 작품이 되는 곳. 데드블레이가 그랬다.


수명을 다한 오아시스는 고사목을 남겼다. 그 고사목들은 죽어서도 죽지 아니하고 오아시스의 기억을 전했다.


DUNE45를 갈 때와 마찬가지로 데드블레이도 일찍 나섰다. 커다란 망원렌즈를 멘 풍경사냥꾼 세 명 만이 우리 앞에 있을 뿐이었다. 언덕 몇 개를 넘어서자 데드블레이가 한눈에 들어왔다. 풍경사냥꾼들은 바로 산개해서 앉아 쏴, 서서 쏴, 엎드려 쏴, 각양각색의 포즈로 풍경을 사냥했다.



고사목 하나하나와 말을 걸듯 살피며 서성였다. 누구와도 말을 섞지 않고 온전히 나무와 만나기 위해 일행과 떨어져서 혼자 다녔다. 죽은 나무들이 남긴 마지막 포즈들이 엄숙했다. 그들이 이겨낸 시간이 느껴졌다.


해가 뜨고 그림자가 선명해지면서 또 다른 풍경을 선사했다. 그때쯤 실제로 화보를 찍기 시작했다. 하늘하늘한 스카프를 날리며 모델들이 등장했다. 그렇게 데드블레이를 자본주의에 넘기고 우리는 발걸음을 되돌렸다.   



별을 덮고 잤던 소수스플라이에서의 사막 캠핑


'남아프리카 기행' 참가자 중에는 갓 일흔이 되시는 분을 비롯해 70대가 3명이었다. 이분들과 사막에서 캠핑을 한다? 캠핑행사를 몇 번 주관한 적은 있지만, 여행감독에게도 버거운 과제였다. 이 엄청난 숙제를 안고 나미브-나우클라프트 국립공원에 도착했다.


캠핑장비는 박다애 디스이즈아프리카 대표가 빈툭의 아웃도어 전문 대여점에서 예약해 놓았는데 장점과 단점이 명확했다. 장점은 견고하다는 것이었고, 단점은 너무 무겁다는 것이었다. 아침에 장비를 픽업하러 갔는데 종업원들이 출근하기 전이어서 우리 일행이 옮겨야 했다.


빈툭을 출발해 5시간 이상을 달려서 겨우 캠핑사이트가 있는 소수스플라이롯지에 도착했다. 쉴 겨를이 없었다. 첫 일정이 캠핑사이트 구축이라니, 다소 가혹한 면이 없지 않았지만 어두워지기 전에 텐트를 치고 음식 준비를 해야 해서 서둘렀다. 남성 군필자 분들과 손 빠른 여성참가자 두 분이 합심해서 7동의 텐트를 금세 설치했다.



캠핑 사이트와 사이트 간격이 그렇게 넓은 캠핑장은 처음인 것 같다. 각 사이트는 커다란 아프리카 아카시아나무를 중심으로 원형 모양으로 형성되어 있었다. 사이트 크기가 커서 텐트 스무 동도 충분히 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카시아나무가 타프 기능을 해줘서 시원하게 캠핑을 즐길 수 있었다.


우리가 텐트를 설치할 동안 다른 여성참가자분들은 바비큐를 위한 세팅을 바로 해주셨다. 티본스테이크, 양갈비, 돼지고기 삼겹살+등갈비와 소시지/감자/고구마를 비롯해 각종 가니시 등 헤아려보니 구워 먹을 것이 10종이 넘었다.


바비큐에 진심인 일행 한 명이 불을 잡았다. 뚜껑이 없는 그릴이라 직화였지만 솜씨를 발휘해서 그 어떤 스테이크나 양갈비에 못지않게 구워냈다. 어렵게 구한 남아공 와인과 함께, 제법 구색을 갖춰서 저녁식사를 할 수 있었다.



나미비아에서 맞은 석양 중에는 세 번째로 좋았지만, 그 정도로도 충분히 좋았다. 다른 두 번의 석양은 너무 좋았고. 석양을 배경으로 아카시 나무 아래서 실루엣 사진을 찍었는데 제법 잘 나왔다. 석양에 취한 최고령 참가자까지 점프샷에 동참하셨다.


캠핑의 밤은, 별이 다했다. 무엇보다 은하수가 선명했다. 다음날 국립공원 내 롯지에서 본 은하수가 더 좋았지만 이날 밤의 은하수도 충분히 인상적이었다. 아이폰으로 설정을 바꿔가며 은하수를 찍어 보았다. 생각보다 괜찮게 찍혔다.


사막은 일교차가 심해서 추위가 걱정이었다. 침낭만으로 부족할 것 같아, 어르신들을 위해서 한국에서부터 이너로 쓸 보조침낭 세 개를 들고 왔다. 다행히 밤 날씨가 쌀쌀하지 않고 선선한 수준이어서 수월하게 밤을 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사막이라 새벽 결로가 없어서 좋았다.


다음날 아침식사는 아프리카 주물단지 보마에 밤새 끓인 삼겹살/등갈비 수육과 라면으로 해결했다. 새벽에 '죽음의 호수'에 다녀오면서 차콜에 불을 붙여 위에 올려서 덥혀놓고 갔다 왔는데 국물이 쫄아서 거의 동파육 수준이 되었는데, 일행은 오히려 맛이 진하게 배어들었다며 좋아했다.


암튼, 사막 캠핑, 성공적!



세계 50대 숙소, 나미브-나우크래프트국립공원 내 롯지


나미브사막 숙소는 극과 극이었다. 캠핑 다음날은 세계 50대 숙소로 꼽히는 ‘소수스 듄 롯지’를 이용했다. 돈만 있다고 잘 수 있는 곳이 아닌, 예약이 하늘에 별 따기라는 이 숙소에서 자면서 하늘의 별을 폰카로 딸 수 있었다.


모든 유명한 숙소가 그렇듯, ‘소슈스 듄 롯지’를 명품으로 만든 것은 입지였다. 국립공원 내에 위치하고 있고 적당히 언덕 위에 자리 잡고 있어서 나미브사막의 일몰을 두루 감상할 수 있는 곳이라는 것이 장점이었다.



시설은 어찌 보면 열악했다고도 할 수 있다. 롯지 벽은 그저 두꺼운 캔버스 천이었다. 당연히 에어컨도 없었다. 낮에 더울 때는 수시로 샤워를 하면서 더위를 달래야 했다. 물은 나무바닥 사이로 바닥에 그대로 떨어졌다. 별다른 배수 시설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구에게든 이 숙소를 추천할 것이다. 이곳에서 잔다는 것은, 그저 특권이다. 이곳에서 숙박한 덕분에 사막의 포인트에 누구보다 먼저 갈 수 있었다.


밤에 보았던 사막의 별도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언덕을 걸쳐서 은하수가 마치 불꽃놀이를 벌이는 듯 펼쳐졌다. 핸드폰 카메라로도 포착할 수 있을 만큼 선명했다. 잊을 수 없는 기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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