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여행의 키워드는 생동하는 삶의 에너지다. 몸에 용수철이라도 있는 듯,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아프리카인들을 보면서 우리는 그 에너지를 실감한다. 거기에 하나 더 하자면 압도적인 대자연의 스펙터클이다. 동남아여행에서는 결코 느낄 수 없는 '레알 대자연'을 느낄 수 있다. 압도적인 대자연에서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아프리카인을 보면서 우리 또한 생의 에너지를 충전하게 된다.
아프리카의 압도적인 대자연 중에서도 압권이 바로 빅토리아폭포다. 올해 초 남아프리카기행 때 '아니 폭포 하나 보러 가서 5일을 있는다고?' 생각하고 갔었다. 그런데 5일도 아쉬웠다. 봐도 봐도 지겹지가 않았다. 잔잔한 상류에서 보았을 때, 헬기를 타고 보았을 때, 폭포 아래서 물보라를 맞으며 보았을 때 각각 달랐다. 특히 아래에서 보트를 타고 보았을 때는 지옥문 앞에 선 느낌이었다.
빅토리아 폭포 1일 차
- 다시 화이트 아프리카에 오다
짐바브웨의 관광 도시, 빅토리아폴스 타운. 일하는 사람 중에는 백인이 없고 손님 중에는 흑인이 없다. 그런 편견에 빠져들 무렵 한 백인에게 한 방 먹었다. 함께 디너크루즈를 했던 그는 “나의 아버지 고향은 남아공, 어머니 공항은 잠비아, 나는 아프리칸이다. 뿌리의 뿌리를 찾아 올라가면 스코틀랜드인이지만 나의 정체성은 아프리카다”라고 말했다. 세월이 충분히 흘렀다. 이제 백인들에게도 아프리카는 고향이다. 그들의 조상이 아프리카에서 무슨 짓을 했건 간에.
그 ‘아프리카 백인’은 우리에게 아프리카의 다양한 새들을 소개해 주었다. 크루즈를 하며 코끼리 목욕하는 모습이나 하마 하품하는 모습 그리고 악어 꿀잠 자는 모습이나 탐하던 우리에게 그는 고고한 아프리카새의 신세계를 열어 주었다.
쿠바와 마찬가지로 관광산업이 절대적인 짐바브웨 역시 치안이 좋은 편이었다(관광지에 한정되겠지만). 이웃 잠비아와 마찬가지로 국민소득은 1400달러 안팎이었지만 폴스타운 안은 비교적 안전했다. 무가베의 오랜 독재가 남긴 잔상일 수도 있는데, 암튼 폴스 타운 내에서는 편하게 다닐 수 있었다.
폴스타운은 리조트 지대였다. 배낭여행자들은 별로 보이지 않았다. 우리처럼 리조트에 묵는 사람들이 아프리카 수공예품을 많이 사서 보내는지 타운 이곳저곳에 국제탁송 업체가 자주 보였다. 거리를 걸을 때 호객꾼이 제법 붙었는데 하이퍼 인플레이션시대의 유산인 '짐바브웨 100조 달러' 지폐를 1달러에 팔았다. (디스이즈아프리카 박다애 대표 말로는 위조지폐고 진짜는 아마존에서 50달러 정도에 팔리고 있다고)
패키지여행 치고는 다소 긴 5박 6일의 여정을 이곳 폴스타운 리조트에서 묵는데, 최대한 게으르게 지내는 것을 목표로 했다. 그래도 남아공 와인을 사 올 수 있는 술마트와 크래프트비어 펍 그리고 인테리어 좋은 카페 등은 두루 파악해 두었다.
빅토리아폭포 물안개가 화산재처럼 피어오르는 모습이 바로 앞에 보이는 리조트 입지는 대체로 마음에 들었다. 숙소동은 타운하우스처럼 따닥따닥 붙여 놓았고 조경이랄 게 별로 없는데, 요즘 트렌디한 유럽의 캐주얼 호텔처럼 로비 라운지에 공을 들였다. 수영장을 낀 라운지 펍에서 프리미어리그 보면서 맥주를 제법 마셨다. 첫날부터 과음했다. 디너크루즈에서 마신 무제한 남아공와인과 남아공 캐슬맥주 그리고 짐바브웨 잠바지맥주를 연속으로 마셨다.
빅토리아 폭포 2일 차
- 내가 폭포라고 본 것은 그저 오줌 줄기였다
압도적이었다. 빅토리아폭포를 보고 나니, 그동안 내가 보았던 폭포들은, 그냥 아이들 오줌 줄기였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정방폭포 천지연폭포 무슨무슨 폭포…
내가 알고 있는 폭포를 다 가져다 붙여도 빅토리아폭포 하나에 이르지 못할 것 같다. 길이가 1.7km, ‘대자연’이라는 수식어가 과하지 않다.
빅토리아폭포를 따라 걸으면, 그대로 세계 최대 자연스파를 경험하게 된다. 샴푸칠 하고 다니면 머리가 감길 것 같고, 바디워시를 칠하고 걸으면 목욕이 될 것 같다. 촉촉한 미스트부터 폭풍우까지, 모락모락 안개부터 빗물이 하늘에서 땅으로 오르는 모습까지, 물방울의 향연을 보게 된다. 하늘은 쨍한데, 세상은 촉촉하다. 최고의 ‘물멍‘!
사실 이번 남아프리카 기행 대상지 중에서 빅토리아 폭포에 대한 기대가 가장 낮았다. 세계 3대 폭포니 한 번은 봐야겠다는 생각으로 왔지만, 돈 아깝게 폭포 하나 보러 거기까지 가야 하나, 하는 생각이 없지 않았다. 활명수 백만병을 들이켠 듯한 상쾌함이랄까? 머릿속이 복잡한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은 곳이다. ‘여행감독 4대 대자연 명소’로 등극!!!
빅토리아폭포 3일 차
- 보츠와나 초베국립공원의 사파리
보츠와나 초베 국립공원 사파리는 케냐 마사이마라 사파리와 달랐다. 우리가 떠올리는 일반적인 사파리의 비주얼은 마사이마라 쪽이지만 잔재미는 초베강 쪽이 더 컸다.
초베국립공원은 마사이마라처럼 사바나 기후가 아니다. 끝없이 초원이 펼쳐지는 비주얼이 아니라는 얘기다. 나름 수목이 무성한 관목 지대였다. 코끼리 20만 마리가 뜯어먹어도 거뜬한 수풀이 있는 곳이다.
그래서 초베사파리는 더 야생에 가깝다. 내셔널지오그래픽 다큐에서나 볼 수 있는, 사자가 물소 사냥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전속력으로 달려 물어뜯지는 않았지만 수사자 두 마리가 탐색전을 하다 물소 떼에 발각되어 사냥을 포기하고 입맛을 다시는 모습을 바로 옆에서 보았다. 허탕 친 사자를 본 것으로 우리의 사파리는 허탕 친 게 아니라는 것은 아이러니다. 다시 심심해질 무렵 새로운 동물 떼가 나타났다.
동물마다 자기들만의 영역이 있었다. 임팔라 기린 물소 바분원숭이 코끼리 등이 자기들의 영역에서 우리를 반겨주었다. 길을 막고 큰 귀를 펄럭이며 짜증을 내던 코끼리도 있었지만 말이다. 디스이즈아프리카 박다애 대표가 각각의 동물들의 특징을 설명해 주었다.
초베 리조트에서 늦은 점심을 먹고 한가롭게 했던 리버사파리도 좋았다. 끝없이 펼쳐진 늪지가 마사이마라 초원처럼 넓은 풍광을 보여주었다 구정물에서나 볼 수 있던 하마가 열심히 풀을 뜯고 있는 ‘하마촌’은 여기가 아니면 보기 힘들 듯. 초베강 뒤로 쨍한 하늘이 이국적인 느낌을 더해주었다.
빅토리아폭포 4일 차
'아 내가 영화 포스터 안에 들어와 있구나'
빅토리아폭포는 어떻게 보는 것이 가장 좋을까? 빅토리아폭포는 긴 협곡을 따라서 가로로 물이 떨어진다. 대부분 폭포 건너편을 따라 걸으면서 본다. 오른쪽은 잠비아 쪽이어서 국경을 넘어가서 보고 오기도 한다.
다음은 헬기투어다. 헬기를 타고 잠베지강을 따라 내려와서 폭포 위를 8자 모양으로 돌며 관찰한다. 빅토리아폭포는 1.7km에 달하기 때문에 폭포를 한눈에 보는 방법은 헬기투어뿐이다.
마지막은 폭포 아래서 보는 방법이다. 폭포가 있는 협곡에 T자형으로 강이 흐르는데 교차 부위로 내려가서 아래에서 위로 폭포를 볼 수 있다. 100m 이상의 직벽을 내려가야 하고 또 협곡을 옆으로도 100m 정도 가야 해서 위험하다.
돈도 많이 든다. 이런 뷰를 위해서는 제트보트를 탑승해야 하는데 인당 100불이 넘는다. 아니면 잠비아 쪽에서 카누를 들고 내려가거나... 정말 소수의 사람만이 빅토리아폭포를 아래에서 위로 올려다볼 수 있다. 그래도 추천하고 싶다.
잊지 못할 경험이었다. 영화 포스터 안에 들어와 있는 기분? 혹은 그 이상의 공포와 설렘이 교차하는 복잡한 감정. 제트보트가 폭포 쪽으로 달리면 저것이 천국문일까 지옥문일까, 생각이 교차하고... 폭포 아래로 더 다가가고 싶은 마음과 다가가면 위험하다는, 걱정이 교차하고.
빅토리아폭포 5일 차
- 빅토리아폭포에서 진정한 ‘물멍’을 줄기다
오늘은 복습의 날이었다.
1) 빅토리아폭포를 다시 갔고
2) 빅토리아폴스호텔 레스토랑에 다시 갔고
3) 초원 사파리를 다시 했다.
마을산책을 하듯 빅토리아폭포에 가볍게 다녀왔다. 숙소에서 폭포 매표소까지는 십분 남짓. 마지막 뷰포인트에서부터 거꾸로 돌아보기로 하고, 야생 올리브나무 아래에서 일행이 가져온 과일을 나눠 먹었다.
오늘은 우비를 입지 않았다. 빅토리아폭포의 물보라를 온몸으로 맞아보기 위해서. ‘누구 샴푸 가져온 사람 없어요?’ ‘바디워시 없어요?’라며 농담을 주고받으며 잠비아 국경의 15번 뷰포인트로 향했다.
이곳은 빅토리아폭포의 T존이다. 폭포에서 떨어진 물이 잠베지 강으로 흘러나가는 곳이다. 어제 제트보트를 탔던 곳이 바로 이곳 아래였다. 내려다보니 아찔했다.
여러 뷰포인트를 들러보니 변한 부분이 느껴졌다. 어떤 곳은 물이 좀 말랐고 어떤 곳은 물이 좀 불었다. 그 변화가 물보라 크기 변화로도 이어져서 물이 분 곳은 시야가 완전히 가려졌다. 수량이 많을 때 오는 게 꼭 장땡은 아니란 걸 알 수 있었다.
오전 폭포 산책을 마치고 어젯밤 갔던 빅토리아폴스호텔에 갔다. 5성급이 중요한 게 아니다. 그런 건 널렸다. 아마 ‘리딩호텔’ 인증을 받은 곳 중에 리조또를 9달러에 등심스테이크를 18달러에 먹을 수 있는 곳은 이곳 외에는 찾기 힘들 것이다.
트러플리조또와 등심스테이크 맛이 미세하게 변했다. 조금씩 밸런스가 깨져 있었는데 점심엔 총주방장이 부재하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살짝 들었다. 어제와 다른 남아공 와인을 시켜보았는데, 어제와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남아동 가서 제대로 된 남아공 와인을 마셔봐야겠다는 생각을.
식후에 호텔 이곳저곳을 둘러보았다. 영국에 안 가봐서 영국 호텔의 전형을 모르지만 대체로 건물이 장식적이지 않고 실용적이었다. 프랑스 식민지호텔과는 확실히 구분되었다. 역시나 내실은 프랑스?
나이트사파리는 ‘보충수업’으로 충분했다. 보츠와나 초베국립공원 사파리 때 빅파이브 중 코뿔소와 얼룩말을 보지 못했는데 여기서 코뿔소가 풀 뜯어먹는 소리를 바로 옆에서 들었고 임신한 얼룩말이 철분 보충을 위해 흙을 파먹는 것도 보았다.
이번 사파리의 대박은 기린의 혈투를 목격한 것이었다. ‘나이스한 개새끼’처럼 나란히 서서 우아하게 먼 곳을 응시하다 ‘아 이 새끼 용서가 안 되네’하면서 주기적으로 싸웠다. 목을 휘감아 목펀치를 날리는데 해드뱅잉을 하는 듯했다. 찍어 놓은 동영상에 이런 음악을 입히면 제법 어울릴 듯.
주) ‘어른의 여행, 트래블러스랩’의 남아프리카기행은 디스이즈아프리카와 공동 기획으로 12월18일~12월30일 ‘빅토리아폭포’ + ‘나미비아 붉은 사막’ + ‘케이프타운’으로 구성되어 진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