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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재열 여행감독 Feb 13. 2024

여행자에게 ‘마음의 오지’란

'마음의 오지‘ 혹은 오지에 두고 온 마음


마음의 오지


탱탱한 종소리 따라나가던

여린 종소리 되돌아와

종 아래 항아리로 들어간다

저 옅은 고임이 있어

다음날 종소리 눈뜨리라

종 밑에 묻힌 저 독도 큰 종

종소리 그래서 그윽할 터


그림자 길어져 지구 너머로 떨어지다가

일순 어둠이 된다

초승달 아래 나 혼자 남아

내 안을 들여다보는데

마음 밖으로 나간 마음들

돌아오지 않는다

내 안의 또 다른 나였던 마음들

아침은 멀리 있고

나는 내가 그립다



처음 기자생활을 했을 때 데스크였던 이문재 선배의 시 <마음의 오지>다. 오지에 다녀올 때마다 이 시를 떠올리며 ‘오지에 두고 온 마음’을 생각한다. 여행이란 '마음의 오지'를 발굴하는 일이 아닌가 싶다.


도시에서는 같이 있어도 마음이 나뉜다. 같은 일을 해도, 같은 곳을 바라보아도 마음이 나뉜다. 심지어 내 마음도 마음 밖으로 나간다. 나에게서도 떠났던 마음이 오지에서는 쉽게 묶인다. 자만이 깎여나간 자리를 마음이 묶어준다. 묶이지 않으면 불안하니까.


세 번째 히말라야에서는 그렇게 묶인 마음이 더 많이 보였다. 첫 번째 히말라야는 숨이 차서 남의 마음을 둘러볼 겨를이 없었다. 두 번째 히말라야는 너무나 극한 상황에 내몰려 마음에 기스가 나버렸다. 세 번째 히말라야에서 비로소 남의 마음을 들여다볼 여유를 가졌다.



시인이 표현한 '마음의 오지'가 정확히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함께 있어도 늘 고독해 보였던 이문재 선배의 모습에서 얼핏 가늠할 수 있을 것 같다. 암튼 마음과 오지는 절묘한 조합이다. 마음이 많은 곳은 마음 둘 곳이 없으니까.


도시에서는 다들 나름의 성취가 있다. 그 성취는 자신의 명함 위에 가지런히 조각된다. 그러나 그 성취는 도시를 벗어나는 순간 종이조각이다. 사장님도, 교수님도, 변호사님도, 의사님도 아니다. 다들 그냥 아저씨 아줌마다.


위아래로 구분되던 것이 오지에서는 평등해지면서 쉽게 묶인다. 묶이지 않으면 눈앞의 난관을 헤쳐나갈 수가 없기 때문이다. 자연 앞에 당당한 스펙을 가진 사람은 없다. 자연을 극복하기 위해 사람들은 마음을 묶는다. 


'마차푸차레 트레킹'은 쉽지 않은 여정이었다. 비유한다면 북한산을 5일 연속 올라가서 한라산을 2일 연속 내려오는 일정이라고 할까? 트레킹에 익숙한 사람에게는 매력적인 일정이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는 버겨운 일정이다. 여기에 고산증까지 괴롭히니...



여행감독의 일이란 마음을 묶는 일이면서 또한 풀어주는 일이다. 여행에서는 '원팀'이 되어야 하는 순간이 있다. 그럴 때는 묶어주지만 풀어줄 수 있는 순간에는 풀어준다. '여행이 자기 자신을 발견하는 일'이라 할 만큼 거창한 일은 아니지만,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할 때 비로소 행복하니까.


마음을 묶고 풀어주는 일엔 품이 많이 간다. 그래서 여행에서는 혼자일 수 있을 때는 되도록 혼자 있는다. 이번에도 포카라에서 일행이 쇼핑에 나설 때 슬쩍 빠져서 호숫가에서 커피잔을 들고 졸았다. 그 순간이 참 좋았다.  


여행을 갈 때는 함께 갔지만 돌아올 때는 혼자 오는 여정을 택했다. 스스로 선택한 외로움은 귀한 시간이다. 귀한 외로움을 즐겼다. 앞으로도 종종 그럴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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