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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재열 여행감독 May 22. 2024

어쩌다 보니 단골이 된 일본의 시골 료칸

일본 기후현의 히라유 온천마을


일 년에 서너 번씩 찾는 일본 온천마을이 있다. 일본 온천마을 중에 가장 좋다고 생각해서거나 최고의 온천수라고 생각해서는 아니다. 그걸 평가할 수 있을 만큼 많이 다니지도 못했고.

다만 나에겐 ‘최적’의 온천마을이라서 찾는다. 일본 북알프스 트레킹의 베이스캠프다. 가미코지, 시노타카나 쉽게 오를 수 있는 3000m급 봉우리(노리쿠라다케)에 어프로치 하기 쉬운 곳이다. 리틀교토 중 한 곳으로 일컬어지는 다카야마나 일본 최고 산악도시 마츠모토 사이에 있다. 일본의 대표적 전통마을인 시라카와고와도 가깝고 여러모로 유용하다.


하지만 처음엔 쇠락한 온천마을의 인상이었다. 다른 온천마을에 즐비한 기념품 숍도 몇 개 없었고 식당도 별로 없었다. 저녁에 술 한 잔 하려고 둘러보았는데 연 곳이 보이지 않아서 발길을 되돌려야 했다. 유카타 입고 돌아다니는 사람도 거의 없었고.

그런데 자주 오니 장점이 보인다. 온천마을로서 최고의 매력은 바로 풍부하고 뜨거운 온천수다. 대부분의 탕이 온천수를 받아서 바로 흘려보내는 구조다. 그만큼 온천수가 풍부하다는 거다. (겨울에 매력은 눈 쌓인 노천온천에서 즐길 수 있다는 점이고)


마을 전체로 온천수 인심이 좋다. 족탕도 이곳저곳 있지만 가장 큰 매력은 노천탕이다. 누구나 잠시 담그고 갈 수 있는 노천탕이 있다. 내가 묵는 료칸에도 외부에 공개된 노천탕이 있다. 들어가 사용하고 푯말만 ‘입욕중’으로 바꿔 걸면 된다.

진짜 매력은 느슨함이다. 이 마을의 특징은 경쟁이 없다는 것이다. 이자카야 한 집, 펍 한 집(겨울엔 문을 닫는다), 카페 한 집, 라멘집 한 집, 소바집 한 집, 솥뚜껑 와규구이집 한 집. 한 집씩 밖에 없지만 모두 잘한다(안타깝게도 편의점이 없다). ​



특히 이자카야가 압권이다. 구옥을 개조해 멋지게 꾸몄는데 내실은 동네 바보형들 차지다. 문득문득 열리는 문틈으로 보면 동네 바보형들이 거의 누워서 술을 마시고 있다. 야밤에 여는 유일한 주점이자 음식점이다 보니 마을 사랑방 역할을 겸하는 것 같았다.


마을 사람들끼리 친목도 좋은 편인 것 같다. 함께 출자해서 마을 공동 온천을 만들었는데 여기가 압권이다. 지금까지 가본 일본 노천탕 중 가장 넓다. 탕만 예닐곱 개가 있다. 저렴한 숙소도 딸려 있다. 숙소로서도 경쟁하지 않는 방식을 개발한 셈이다.


마을사람들끼리 조그만 마츠리도 자주 한다. 지난여름에도 하더니 이번에도 한다고 가보란다(하루는 비가 와서, 하루는 감기 기운이 와서, 결국 못 갔다). 지난여름에 가보니 소박했지만 정감이 있었다. 아까 말한 한 집씩 있는 곳의 주인들이 와서 행사를 준비한다(마을 청년회 간지로).

마지막으로 온천마을로서 검증되었다는 점은 일본 온천계의 최고 브랜드 호시노 그룹 료칸이 들어선다는 점이다. 우리가 묵는 료칸은 호시노 료칸과 1박에 인당 50~80만 원 하는 고급 료칸 사이에 있는 집이다. 올봄에 다시 와서 보니 호시노 료칸은 공사가 막바지였다.



보통 일본 료칸에 가면 저녁 먹은 뒤에는 방에 모여서 한 잔 더 하곤 하는데 이곳에서는 따로 공간을 내주고 간단한 안주와 잔을 세팅해 준다. 보통 료칸에선 댓병으로 사케를 팔지 않는데 이곳에선 준비해 준다. 한국인의 취향에 맞춤인 곳이다.


료칸(히라유프린스호텔)의 늙은 여주인은 이번에도 조용히 일행을 맞이하고 저녁엔 배추김치를 아침엔 깍두기를 내주었다. 그리고 히다규로 얼큰한 꼬리곰탕을 끓여 주었다. 일행이 트레킹 나갈 때는 생수를 챙겨주곤 했는데 이번에도 그랬다. 참 정이 가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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