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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재열 여행감독 Jun 13. 2024

고 임덕용 대장이 수행한 산악인의 의무

고 임덕용 대장을 추억하며


돌로미테의 간달프가 우리 곁을 떠났다. 산악인 임덕용. 그가 이끌어준 돌로미테 트레킹 와중에 이 비보를 접했다. 20여 명을 이끌고 트레킹을 진행하느라 슬퍼할 겨를도 없었다. 트레치메 코스를 마지막으로 돌로미테 트레킹을 마치고 나서야 조용히 그를 추모한다.


1983년 히말라야 '바인타브락 2봉'(6,960m)을 세계 최초로 등정. 1980년 한국인 최초로 알프스 마테호른 북벽 등정에 성공. 그가 산악인으로서 남긴 기록이다. 한국인으로는 드물게 황금피켈상 심사위원을 역임하고 메스너와 볼차노 동네지기인 그는 말 그대로 국제적인 산악인이었다.


하지만 나에게 그가 중요한 이유는 돌로미테와 알프스의 아름다움으로 이끌어 주었기 때문이다. ‘저 고집스러운 노인은 왜 가이드를 하는 거야’라는 멸시 속에서도 돌로미테 트레킹을 이끌어 주었고 적자를 보는 여행이었지만 알프스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싶어 알프스 트레킹을 강행해 주었다.


세상에 잘난 산악인은 차고 넘친다. 인간 한계를 극복한 그들에게 찬사가 흘러넘친다. 그러나 나에겐 고 임덕용 대장이 가장 위대한 산악인이다. 나에게 산의 아름다움을 보여주었고 내가 데려간 사람들을 그 아름다움 속으로 이끌어 주었기 때문이다.


그런 그에게 ‘기억의 의무’를 수행할 의무를 느낀다. 고인이 수행한 역할에 대해 우리가 기억해 주고 누군가 그 유산을 이어받았으면 하는 생각이다. 나는 고 임덕용 대장만큼 산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하는 산악인을 본 적이 없다.


많은 산악인들이 자신의 업적을 자랑한다. 세계 초등 기록을 가지고 있고 황금피켈상 심사위원을 역임한 임덕용 대장 역시 자랑할 것 투성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산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데에만 주목했다. 자신의 신화에 묻히지 않고 사람들을 데리고 산으로 향했다.



돌로미테 트레킹은 사실 알타비아1 코스를 종주하게 하는 것이 가장 간단하다. 국내 여행사들이 어렵게 예약했다며 생색을 내지만 이탈리아 현지에 거주하는 그에게는 더 쉬운 일이다. 하지만 그는 알파인이 아닌 일반인들에게 적합한 방식으로 산을 안내했다.


그는 돌로미테의 가장 아름다운 부분들을 모아 컴필리에이션 트레킹을 구성해 주었다. 로젠가르텐, 로델라/싸쏘롱고, 세체다, 마르몰라다, 라가주오이, 친퀘또리, 트레치메… 그가 보여준 돌로미테의 단면들이다.


사우나가 있는 4성급 호텔에서 묵어서 피로를 풀도록 하고 저녁도 정식 코스로 격식을 갖추었다. 이탈리아인들의 휴양지인 시르미오네에서 휴양하게 해주기도 하고 이탈리아식 온천욕을 경험하게도 해주었다. 지역사회 인맥을 활용해 우리에게 편의를 베풀어 주기도 했다.


최대한의 편의를 제공했지만 수직의 산을 경험할 수 있게 우리를 실내 암장과 비아페라타로 이끌기도 했다. 1차 세계대전 때 산악 훈련을 받지 않은 군인을 위한 등반루트로 구축된 비아페라타는 산악인들이 사랑하는 이들에게 산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기 위해 활용되는 루트인데 그는 이곳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베네디타, 드미트리, 도마니크, 안토니오, 프란체스코. 고 임덕용 대장 덕분에 이탈리아의 알파인들이다. 한국 여행사들은 가이드가 코스만 안내하는 것으로 트레킹을 이끌지만 그는 전문 산악인 지인을 불러 산의 매력에 더 깊이 빠질 수 있게 이끌고 안전도 도모했다.


또한 주도면밀했다. 마지막으로 병문안을 갔을 때도 일정 중 비아페라타를 수행하기 위한 플랜을 설명했고 내가 사야 할 아웃도어 아이템을 지정해 주었다. 부인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마지막까지 그가 텐션을 유지했던 비결은 산에 대한 의무감이었다고 했다.


한국에서 나잘난 맛에 살던 사람들이 트레킹에 동참해 조용히 나를 불러 종용한 것이 있다. 고 임덕용 대장보다 내가 갑이니 임 대장이 말을 듣게 단도리하라는 것이었다. 쓴 말이 목구멍 언저리까지 올라왔지만 삼켰다. 그냥 웃고 말았다. 그래, 당신들이 사는 세상은 그랬구나.


고 임덕용 대장은 우리들의 영원한 산행 대장님이다. 알파인들에게는 더 위대한 산악인이 많겠지만 우리 같은 베타인에게는 참으로 고마운 산악인이고 본받을 어른이었다. 돌로미테와 알프스를 걸을 때마다 내내 그를 추억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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