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법에서 엿보이는 한국인의 강박
‘당신이 먹는 음식이 당신 자신이다’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이 말은 너무 넘겨짚는 말 같다. 대신 ‘당신이 하는 여행이 당신 자신이다’라는 말을 한다면 이 말은 충분히 성립한다고 본다. 여행으로 사람을 만나는 여행감독의 시선에서 그렇다.
나이로 세대를 나누는 것이 좀 억지스럽다는 것은 알지만 또 이것만큼 선명한 구분법도 없다. 한국 사회의 세대를 크게 구분한다면 산업화/민주화 세대(60/70), X세대/그 시절 신세대(40/50), MZ세대(20/30)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에 동의 못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어쨌든 거칠게 구분하면 이렇다.
가정을 해보자, 이 세 개의 세대가 모두 있는 한 가족이 크루즈선에서 내렸다, 어떤 차이를 보일까? 60/70 가족은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가이드를 볼 것이다. ‘오늘은 어디 가는 거야?’라는 눈빛으로. 20/30 가족은 그곳에서 해봐야 할 몇 가지, 먹어봐야 할 몇 가지, 미션을 수행하기 위해 줄을 설 것이다. 40/50은 가이드를 따라갈 것이냐, 인터넷과 유튜브에서 찾아본 정보대로 자유여행을 할 것이냐 갈등할 것이다.
세대에 따른 한국인의 여행법을 거칠게 구분해 본다면 20/30은 ‘수행평가형 여행’, 40/50은 ‘마음은 한비야, 몸은 하나투어’, 60/70은 ‘대확행 콤플렉스‘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와 같다.
1) MZ세대(2030) : 수행평가형 여행
‘00에 가면 꼭 가봐야 할 곳 몇 곳’과 ‘00에서 꼭 먹어야 할 것 몇 가지’를 열심히 수행한다. 이를 수행해야 하는 의무감으로 인증샷을 찍어야 하는 곳에서 줄을 서있다. 몰개성적인 개성 추구를 하는 셈이다.
이들의 강박은 자신이 여행하고 온 곳에 대해 다른 사람이 ‘거기에서 저기 가 봤어? 그거 먹어봤어?’ 하는 물음에 제대로 답하지 못할까 하는 것이다. 그래서 몸을 갈아서 인증샷을 찍는다.
이 세대의 장점은 정보 리서치 능력이다. 주머니 사정이 안 좋은 이들은 부지런한 클릭으로 가성비 좋은 여행을 만들어 낸다. 여행감독이지만 여행의 가성비에서는 이들을 따를 엄두가 안 난다.
아쉬운 점은 이들이 주된 여행 콘텐츠 제작자이다 보니 이 세대의 취향이 과잉 대표되고 있다는 점이다. 비유하자면 어렸을 때는 누구나 짜장면이 맛있었지만, 탕수육만 같이 시켜줘도 황홀했지만 나이가 들어서 짬뽕의 매력도 오향장육의 맛도 알아가는데, 짜장면 겨루기식 정보가 너무 많다.
@ X세대(4050) : 마음은 한비야, 몸은 하나투어
배낭여행/어학연수 1세대인 이들은 자신의 여행력을 과신한다. 하지만 항공/숙박/식사/이동의 숙제를 종합적으로 잘 풀어내지 못해서 막히고, 결국 여행사에 의탁하곤 한다. 다 잘할 줄 알았는데, 다 헷갈리는 것이다.
주머니는 가성비를 추구해야 하는데, 마음은 가심비를 추구하는 부조리. 여행이란 ‘불완전한 완전’인데 이것저것 다 만족시키려다 나가리, 결국 여행사 패키지의 ‘가성비’에 굴복하곤 하는 세대.
물론 이 세대에서도 여행을 잘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대학 때 배낭여행이나 어학연수 경험이 있어서 자신이 여행을 잘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가 직접 여행을 기획하고 두손두발 들고 여행사에 의탁하는 경우가 많다.
IMF 외환위기 때 외신은 ‘한국은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뜨렸다’라고 비난했다. 그렇다면 연 샴페인이 있다는 얘기인데, 나는 우리 세대가 그 샴페인을 맛본 세대라고 생각한다. 취향에 있어서 가장 발달한 세대가 아닌가 싶다.
@ 민주화/산업화 세대(6070) : 대확행 콤플렉스
크고 확실한 행복을 찾아, 열심히 살았던 인생에 대한 보상과 포상으로 어마무시한 여행을 시도한다. 주류 남미나 아프리카에 가서 개고생을 한다. 왜 가냐면? ‘남들이 안 가본 곳에 가기 위해!’ 간다고 한다. 남들이 안 가본 돗에 가서 남들이 안 해본 고생을 하고 온다. 가슴이 떨릴 때 떠나지 않고, 다리가 떨릴 때 떠나려니.
자신의 취향을 느긋하게 발전시킬 여유를 갖지 못하고 벼락취향을 누리느라 ‘남들이 좋다는 곳‘에 가고 ’남들이 좋다는 것‘을 먹고 마시며 남들보다 나은 삶을 추구하지만 남들이 겪지 않을 고생을 겪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이들의 대확행 추구는 전원주택과 콘도 회원권과 같은 ’크고 확실한 실패‘로 귀결되는 경우가 많다. 청장년 시절 산업화와 민주화를 위해, 나보다는 우리를 위해 헌신하다 자신의 취향을 두루 발달시킬 기회를 갖지 못한 세대다. ’어른의 여행, 트래블러스랩‘의 주된 멤버 층이다. 여행을 통해 이들과 ‘취향의 허비학교’를 구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