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전국 10등 안에 못 들지만, 장성 여행법

경쟁하지 마라, 업혀가라

by 고재열 여행감독

어른을 위한 장성 여행법


오래간만에 여행특강을 하고 왔다. 국내 체류 기간이 짧아 요청이 와도 대부분 응하지 못하고 있다. 다행히 날짜가 맞았다. 여행특강을 가면 오고 가는 동안 그 지역 여행을 기획해 본다. 강의할 때 좋은 화두가 되기도 하고. 이번엔 장성이었다. 장성은 어릴 적 첫 여행지였다. 외갓집이 있어서.


장성에서 손꼽히는 여행지는 백양사(내장산), 축령산 편백림, 필암서원, 황룡강 정도다. 홍길동을 밀고는 있지만 빛바랜 느낌이고. 그럼 이곳들을 원재료로 어떤 여행을 기획할 수 있을까? 여행감독으로서 나의 시험범위는 ‘어른의 여행’이다. 어른을 위한 장성 여행법은?


여기서 중요한 점은 수도권의 어른들이 장성을 원포인트 여행지로 선택할 가능성은 낮다는 점이다. 지자체들은 여행/관광 콘텐츠를 놓고 주로 옆 지자체와 경쟁한다. 그러면서 자신들이 더 낫다고 자랑한다. 쓸데없는 경쟁이다. 수도권 사람들이 그 지역을 여행할 때는 특정 지자체가 아닌 그 일대를 여행한다.


지자체가 단독 여행지가 되려면 전국 10등 안에는 들어야 한다. 제주 강릉 속초 단양 안동 경주 부산 통영 여수 순천 목포 신안 군산 남원 태안 등등. 대충 꼽아보아도 금방 열 곳이 넘는다. 이 정도 되는 지자체라야 단독 여행지로 경쟁력이 있다. 10등 안에 들지 못하는 지자체는 다른 고민이 필요하다.


그래서 관광/여행과 관련해서는 옆 지자체와 경쟁하지 말고 업혀가라고 조언한다. 옆 지자체들과 어떤 여행 씨퀀스를 형성할 수 있을지 고민하라고 말한다. 밥상을 차리는 고민보다 숟가락을 얹는 고민에 대한 답이 더 유용하기 때문이다.



장성을 중심으로 생각해 보자. 축령산 편백림과 백양사 단풍(내장산의 주목)이 있으니 일단 수목기행 씨퀀스 조성이 가능하다. 옆 담양이 소쇄원 죽녹원 관방제림 메타세쿼이아를 보유하고 있으니 수목기행에 숟가락 얹기 딱이다. 왼쪽 고창엔 선운사 단풍이 있고.


황룡강이 있으니 생태기행에도 좋다. 황룡강은 영산강 지류인데, 영산강(광주)과 또 다른 지류 드들강(나주) 등과 엮으면 훌륭한 생태기행이 될 것이다. 임실 옥정호와 담양호와 장성호를 묶으면 호반기행도 가능하고. 장기적으로 숙박 개발에도 유용하고.


올해 장성 방문의 해를 진행하면서 미식도시를 표방했다고 하는데 장성하면 딱 떠오르는 음식이 없다. 영광굴비, 담양 떡갈비, 고창 선운사 장어구이처럼 지역을 대표하는 음식이 없다. 지역을 대표하는 농산물도 떠오르지 않고.


이럴 땐? 해장템을 고민하면 된다. 주변에 유명 여행지가 있으면 반주를 마시는 숙박객이 많으니 다음날 해장국이 절실하다(제주가 그렇다). 최근에 전현무가 장성 우시장 국밥을 극찬했다고 하는데, 일단 국밥을 밀어보면 좋을 듯. 남도기행은 미식기행이고 반주를 곁들이게 되니 해장템은 필수다.


남도에는 닭코스요리를 하는 곳이 많은데 장성에도 옥정가든이 유명하다 한다. 그렇다면 기존 강자인 해남 순천 함평 등과 엮어서 치킨 성지순례를 주장해도 될 듯하다. 황룡강과 장성호가 있어서 민물고기가 많이 나서 매운탕과 어죽 등으로 얼큰하게/부드럽게 해장을 도모할 수도 있을 것이고.


백양사가 있으니 영광 불갑사와 고창 선운사와 엮어서 암자기행을 도모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필암서원이 있으니 담양 소쇄원 무등산 아래 의재미술관 등과 꿰어서 남도 선비의 풍류를 내세울 수도 있을 것이고. 묶어내면 흥미로운 주제들이 제법 나온다.


씨퀀스를 형성한 뒤에는? 여행의 주연이 되어야 한다. 여행지의 주연은 누구인가? 숙박지다. 조연은 밥 먹는 곳, 차 마시는 곳, 액티비티 하는 곳. 숙박지는 물을 끼고 있는 곳이 유리하다. 황룡강과 장성호가 있으니 해볼 만한 게임. 지금은 장성을 둘러보고 광주에서 자는데 광주에 와도 장성호에서 잘 수 있도록.


가장 중요한 포인트! 답은 이미 와 있다. 다만 널리 퍼지지 않았을 뿐. 광주 시민들이 장성 여행의 답을 이미 찾았을 것이다. 장성을 가장 자주 방문하는 광주 시민들이 재해석한 장성이 수도권 사람들에게도 그대로 통할 수밖에 없다. 오늘이 장성을 광주 시민들이 어떻게 누리는지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암튼 내년 남도기행엔 장성을 포함해 보려고 한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중장년층 국내여행을 위한 열 가지 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