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의 기능을 유지하는데 주목한 일본과 기능을 바꾸는데 주목한 한국
철도 노선을 기준으로 한국과 일본을 비교한다면, 모세혈관이 없는 나라와 있는 나라로 비교할 수 있을 것 같다. 안타깝게도 모세혈관이 없는 나라는 한국이다. 일본은 어떻게든 지선을 유지한다. 아마 JR의 이용 요금이 비싼 것은 지선 유지에 필요한 비용을 보전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반면 한국은 가장 장사 잘 될 노선(SRT)을 민간에 불하해 지선 유지를 위한 마지막 보루를 스스로 부쉈다.
다시 철도역을 기준으로 한국과 일본을 비교한다면, 한국은 철도역을 다른 용도로 바꾼 것을 자랑하고 일본은 역사를 허물어 무인역으로 만들어 유지시킨 것을 자랑한다. 한국의 폐역은 박제되어 추억을 판다. 일본은 철도 고유의 기능을 판다. 무인역이지만 여전히 기차역으로 기능한다. 지방에 가면 이런 무인역을 무시로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철도의 재활용 측면에서 한국과 일본을 비교한다면, 한국은 레일바이크 등 레저 시설을 설치한 것을 자랑하고 일본은 관광열차를 만들어 다시 기차가 달리는 것을 자랑한다. 철도 노선을 없애면 한국은 공식처럼 레일바이크를 만든다. 최초의 레일바이크는 신선했지만 이제는 벽화마을처럼 안이한 지역재생의 클리세가 되었다.
일본은 과거의 기능을 살리지는 못하더라도 기차를 달리게 하는데 주목한다. 협궤의 활용이 인상적이었다. 일본 전통 편백숲을 보존한 아카사와 숲은 예전에 편백나무를 실어 나르던 협궤를 관광열차로 활용한다. 구로베 댐을 건설할 때 자재를 나르던 도록코 협궤열차 역시 관광열차로 바뀌어서 협곡 사이로 사람들을 나른다. 기존 협궤를 사용하지 않는 곳은 야쿠시마 산림열차 정도였던 것 같다.
비교하고 보니 두 나라 모두 나름 일관성이 있다. 다만 나는 일본의 방식에 점수를 주고 싶을 뿐이다. 우리가 철도의 효용과 경제성만 남기고 모든 것을 버릴 때 일본은 철도가 할 수 있는 작은 기능을 악착같이 살려냈다. 고유의 기능을 살려낸 것에서 일본 특유의 장인정신이 엿보인다.
JR의 최남단 역 니시오오야마역도 일본 철도의 장인정신을 느낄 수 있는 무인역이다. 규슈 최남단의 명산 가이몬다케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을 수 있어서 ‘인스타 맛집’으로 꼽히는 곳이다. 한국 관광객 중에서도 이런 이유로 이 외딴역을 찾는 사람들이 제법 많았다. 기차가 뜸한데 일부러 기다려서 가이몬다케를 배경으로 기차가 들어오는 풍경을 찍곤 한다. 와이파이가 설치되어 있어 현장에서 찍은 사진을 기분 좋게 올릴 수 있다.
이 니시오오야마역을 중심으로 검은모래 해변과 가이몬다케 그리고 인근의 용궁신사가 규슈올레로 연결되어 있다. 제주올레 외전인 이 길을 걸으면 가이몬다케의 웅장함과 검은모래 해변의 애잔함 그리고 용궁신사의 화려함을 두루 느낄 수 있다. 그중에서도 니시오오야마역에서 무료하게 기차를 기다리는 시간을 맛보라고 권하고 싶다.
이 글에 대한 페이스북 댓글 중 주목할만한 글이 몇 편 있어서 소개한다.
Wu-Hean Baac님의 의견 : 세계 철도 역사를 보더라도 조선(한국)은 철도 도입이 결코 늦은 나라가 아니었죠. 일제강점기를 지나면서 한반도는 부산에서 파리를 갈 수 있을 정도로 철도의 땅이었습니다. 다만, 해방 후 맥아더에 의해 미국처럼 도로 중심 체계로 재편됩니다. 그런 흐름이 자연스럽게 박정희 정권까지 갔고 경부고속도로 공사를 시작으로 한반도는 도로 위주의 토건으로 방향을 잡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 여기에 자동차 제조사를 정책적으로 밀어주기 위해서 도로 건설에 더욱 투자를 했을 것이고요. 반면 철도는 일제강점기 수준을 크게 벗어나지 못하다가 KTX를 도입하면서 변화가 생기지만 이미 한국은 미국식 자동차 위주의 도로 시스템이 정착된 후라 철도문화의 커다란 도약이나 진전은 없는 상태인 듯해요.
이성원 님 의견 : 일본이 철도운용능력과 수송량에 있어 세계적 철도대국이라 하지만 일본의 철도시스템 자제가 failed입니다. 1800년대(?) 최초 철도 레일 선택을 협궤(저렴한 비용으로 빠르게 설치 가능. 대신 운송량이 적고 속도가 느림)로 채택하여 구축을 하는 바람에 현대의 고속열차가 사용하는 표준궤와 맞지 않고 일본은 고속열차에는 표준궤 적용하고 거기에다 협궤와 표준궤의 중간궤의 레일까지 있어 시스템 자체가 비효율적이고 비쌉니다. 쉽게 얘기하자면 한국 KTX는 어느 곳이나 일반열차와 동일한 철로를 이동할 수 있고 훗날 대륙으로 진출할 수도 있지만 세 가지 종류의 레일이 깔려있는 일본은 그때그때 레일에 맞는 열차로 바꿔 실어야 되니 그렇지 못하죠.
심철보님 의견 : 전체적인 철도투자에 대한 시각은 그렇게 볼 수 있지만 애초 일본은 초기부터 사철을 비롯하여 철도망이 촘촘하게 깔렸고 우리의 경우는 일제시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점이 현재의 결과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요. 일본의 경우 불채산 노선에 대한 지속적인 폐선(처음에는 제3섹터. 무인역 등으로 변천되다가 점차 폐선의 상황으로)하는 형태로 진행되고 있어 다소 무리 있는 해석입니다. 최근에는 우리나라의 경우 너무 무분별한 로컬선들을 건설하고 있는 게 오히려 문제(어떻게 운영할 것인가에 대한 검토 없이)라고 볼 수 있을 지경입니다.
한민수 님 의견 : 일본은 촘촘한 지선 철도망을 제대로만 활용한다면, 오히려 전기자동차 보급률을 훨씬 빨리 높일 수 있는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봅니다. 먼 거리는 철도로, 가까운 거리와 철도 음영지역으로 이동할 때는 전기자동차로 하면 되죠.
반면 우리나라는 전형적인 "주도종철" 국가입니다. 고속철도, 준고속철도망은 이제야 확충이 본격화되는 추세고, 도시철도 광역철도망은 취약할 뿐만 아니라 쾌속, 특급 열차 운영도 제대로 되지 않습니다. 서울을 중심으로 한 수도권 광역철도망과 간선철도망이 손을 댈 수 없도록 취약하다는 점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고요(적어도 우리나라 경제력이나 인구 수준이라면 서울 내 철도망은 진작부터 일본 도쿄 수준까지는 개선되었어야 마땅합니다).
지선철도는 아예 무너져내려 버리는 상황이고요. 고속도로와 고속화도로(일반국도와 지방도를 자동차 전용도로화한 것) 위주인 데다 특히 아파트 위주의 주거생활 방식인 우리나라 여건을 생각한다면, "고속 충전이 가능하고, 항속거리가 길며, 전비도 유난히 좋은" 특출난 전기자동차가 나오지 않는 이상 늘어나는 교통 수요를 감당해낼 수 없습니다. 전국 각지로 분산된 행정복합도시, 혁신도시 탓에 중장거리 교통 수요가 늘어난 것도 치명적이고요.
전기자동차(소형차량), 수소 전기자동차(대형버스, 트레일러 등 화물차) 위주로 도로교통체계를 재구성하고, 철도교통이 주된 중장거리 운송수단이 되지 않는 이상 "한국판 그린뉴딜" 전략은 절대 성공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그 교통망 정비 문제가 전통적인 "주도종철" 정책과 "아파트 중심 주거생활 패턴"이 정면으로 가로막는 꼴입니다. 안타까울 따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