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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샤인해피 Dec 17. 2023

결혼시작 새로운 불행이...

드디어 내 짝을 만났다 그런데...

싱글족을 선언한 때가 2011년 10월 초였다... 그리고 며칠 후 대학 후배인 정아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정아도 나처럼 결혼을 하고 싶어 안달이 났던 후배 중 한 사람이다

나처럼 결혼에 목말라 있던 친구가 바로 정아였다. 그녀도 결혼 대상자를 만나지 못해 

한참 힘들어하고 있을 때 내가 주변에 있는 선배를 소개해 줘서 결혼에 골인하였다.

정아 엄마는 내 덕에 좋은 남자와 결혼했으니 

나 또한 좋은 남자를 소개해주겠다고 호언장담하셨다.


사실 싱글족 선언 후 얼마 안 된 때라 별로 기대를 하지 않았었다.

마음을 비우고 미팅자리에 나갔다. 

정아네 엄마가 소개해 주시니 거절할 수도 없고, 

상대 남자 엄마의 종교가 나와 같아서 그 점이 마음에 들었던 것 빼고는

크게 관심이 가질 않았다. 기대 없이 나간 미팅은 나에게 기대 이상의 선물을 안겨주었다.


상대 남자는 나보다 네 살이나 많았는데 나이보다 젊어 보였고, 깔끔한 외모가

나쁘지 않았다. 이야기를 해 보니 성격도 무난해 보였다. 다만 한 가지 걸리는 점은

나보다 여자에 관해 아는 것이 더 많아 보였다

여자의 취향, 여자가 좋아하는 패션, 심지어는 네일아트까지 모르는 게 없었다.

순간 '여러 여자와 사귄 남자인가? 그러면 어때! 이미 과거인데'

그 점만 빼고는 정말 다 좋아 보였다. 그 남자는 나에게 대뜸 

"우리 집은 제사를 많이 지내는데 결혼하면 제사 지낼 수 있어요? 

제사 지내는 걸 문제시 삼지 않는다면 저는 계속 만나고 싶은데요. 어떠세요?"


처음엔 당황스러웠다. 처음 만난 자리에서 제사를 지낼 수 있냐고 말하는 당돌한 남자, 

자신감이 있다고 해야 하나? 네가 원치 않으면 

너 아니어도 제사 허용하는 여자 만날 수 있는데... 이런 마음이 있는 것 같았다

고민스러웠다. 그 자리에서 바로 대답하기는 어려웠다. 그리고 저녁을 먹고 헤어졌다.


그리고 며칠 후 그 남자에게 연락이 왔다. 계속 만나고 싶다며...

"그래, 제사가 문제냐? 여자에 대해 많이 아는 게 문제냐?"

제사는 지내면 되는 거고, 여자에 대해 많이 알면 오히려 내가 편하지 않을까 싶었다


그리고 며칠 후 그는 나에게 결혼을 전제로 만남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하였다.

나도 흔쾌히 그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연애를 하기 시작했다. 

만남을 가진 지 한 달 후 나는 담배를 피우던

그에게 정중히 제안을 했다.


 "저는 담배냄새만 맡아도 거북한 사람인데, 결혼 전에 담배를 

끊을 수 있을까요?"라고 이야기하니 

그는 한번 노력해 보겠다고 하였다.


그리고 만난 지 두 달 만에 나에게 담배를 끊겠다고 약속하였다. 

사진: Unsplash의 Mohd Jon Ramlan

                                       

그리고 만난 지 세 달째 되던 날

상견례를 하였다 초고속 진행이었다

그리고 만난 지 6개월째 되던 날 결혼식을 올렸다.

 

사진: Unsplash의 Drew Coffman

정말 결혼하던 그날은 평생 잊지 못할 순간이 되었다.

내가 그토록 바라던 결혼. 그 결혼을 하는 날이었다. 

짧은 연애기간이 아쉬웠지만 그의 나이 40세, 내 나이 36세였으니 

둘 다 평균적으로 늦은 결혼이라 양가에서는 경사 중에 경사였다.


남편은 여동생, 남동생 둘 다 먼저 결혼한 상태라서 더 급했는지도 모른다.

늦은 결혼이었지만 두 사람 모두 선남선녀가 만나 결혼하게 되니 서로가 정말 기뻤다.

우리 부부는 결혼생활이 정말 꿈만 같았다. 특히 남편은 꼼꼼하고 가정적이었다.

집안에 있는 모든 일은 남편이 도맡아 했다. 내가 꿈꿔왔던 남편의 모습이었다.

남편이 집안의 이런저런 일을 다 하다 보니 내가 하는 일이 적었다.

남편이 알아서 척척 일을 해 주니 내가 신경 쓸 일이 많지 않았다. 

그때는 그게 당연한 줄로만 알았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남편이 내가 해야 할 일까지 해야 해서 많이 힘들었다고 했다.


그리고 결혼하고 몇 달이 흘렀다. 하루는 남편과 내가 길을 걷고 있을 때였다. 

지나가던 아이가 3-4살쯤으로 보였는데 그 아이를 뚫어지게 보면서 뭔가 아쉬운 듯

한 표정을 지어서 마음이 심란했다. '이 사람이 아이를 갖고 싶은가?'

내 마음이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결혼한 지 몇 개월이나 흘렀는데 임신이 되질

않는 게 걱정이 되었다. 남편은 아무 말이 없었지만 내 속은 타들어갔다.


결국 내가 남편에게 "우리 검사받으러 갈까? 우리 몸 상태가 어떤지 한번 검사해

보면 어떨까? 나도 당신도 나이가 적은 게 아니니 한번 해 봐도 좋을 것 같아"

남편은 알았다고 했다. 그리고 청담동에서 유명한 모 불임전문병원에 예약을 하고 

검사를 하였다. 

그리고 며칠 후 검사 결과를 듣고 나와 남편은 할 말을 잃었다.

검사결과는 남자도 정자 상태가 좋질 않고, 나 또한 나이에 비해 배란이 많이 되어

자연임신이 불가능하다고 하였다.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에

우리 두 사람은 정말 어찌해야 할지 몰랐다. 그냥 그 자리에 주저앉고 싶었다.

사진: Unsplash의 Louis Galvez

내가 그토록 바라던 결혼을 했는데. 이제는 나에게 예상치도 못한 불행이 다가오는

느낌이었다. 결혼하면 당연히 아이는 갖는 거라 생각했다. 정말 단순한 생각이었다.

우리 부부에게 찾아온 큰 시련. 정말 지혜롭게 헤쳐나가야 했다. 


그런데 그때는 그리 지혜롭지 못했다. 아니 서로 당황스러워 한동안 흥분이 가라앉질 않았다


남편은 시험관이라도 해 보자 하는데 나는 그 제안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나만의 철학이 있었으니 말이다. 나에게 절대 시험관은 있을 수 없었다. 

고지식하게 생각할지는 모르지만, 나는 독실한 천주교 신자로서 시험관은 하기 싫었다.

교회에서 반대하는 교리인 시험관을 하면서까지 아이를 갖고 싶지는 않았다. 

그리고 여자의 몸에 해가 되는 방법이라 더더욱 싫었다. 

그 문제로 남편과 며칠간 냉전의 시간을 가졌다.

나는 절대 안 된다고 하고 남편은 하겠다고 하니 우리의 의견은 그야말로 

평행선을 달리고 있었다.

남편과 시부모님은 나에게 찾아와 시험관 할 수 있도록 비용을 대주겠다고 제안까지

하는 것이었다. 그런 시부모님께 나는 "저는 시험관으로는 절대 아이를 갖지

않겠습니다. 꼭 자연임신으로 아이를 갖겠습니다"라고 말씀드리고 홀연히 집을 나섰다.


남편은 고집스러운 아내의 말을 따를 수밖에 없었을 터다. 지금 생각해도 확고한 내 의지를

그 누구도 꺾을 수 없었다. 하루이틀... 시간이 흐르니 남편과 나의 관계는

회복하기 어려운 상태까지 가고 있음을 직감했다. 이 불행의 시간은 언제쯤이면 끝이 날까?


그때의 시간으로 되돌아간다면... 

정말 다시 생각해도 견디기 힘든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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