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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지금 이 순간 감사한 이유

혼자 있는 이 시간

by 그로우루샤

며칠 전 알바가 일을 그만두었다
정규직 마트직원으로 일하면서
저녁에는 내 일을 도와주었다가
몸이 아파 어쩔 수 없이 그만둔다고
갑작스러운 통보를 받았다
마트에 왔다 갔다 하면서 그 직원이
눈에 들어왔었다 성실한 모습이
내가 원하는 알바의 이상적인 모습이었다
넌지시 그녀에게 다가가서는 알바를
제안해 보고 싶었다

저녁에 아르바이트할 생각 있으신가요?

제가 알바를 구하고 있는데

가능하시면

연락 주세요!


이게 작년 9월의 일이었다

그 이후부터 그녀는 내 가게에서

성실하게 일해주었다

그리고는 아침저녁으로 12시간 이상씩

일을 하다가 결국 몸에 무리가 온 것 같았다


알바가 갑작스레 그만두니 내가 온전히

가게를 운영할 수밖에 없었다

처음엔 퇴근한 남편이 아이들 재우는 동안

가게를 보거나 때론 새벽 마감시간까지

일을 하고 새벽 일찍 출근을 하였다

그런 날이 계속되다 보니 남편도 지치는지

얼굴색이 좋아 보이질 않았다

남편에게 몹쓸 짓(?)을 시키는 것 같아

마음이 좋질 않았다


내가 원해서 시작한 일인데

일을 하고 있는 남편에게 내 일까지

부담을 갖게 하는 것 같아

이건 아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는 퇴근한 남편에게

"내가 알아서 할 테니 당신은 바로 가서 자요"

라고 말하고는 이 시간을 혼자 보내고 있다

투잡 아닌 투잡을 하고 있는 나로서는

늦은 시간까지 마감을 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럼에도 난 지금 이 순간에 감사한 마음이

든다 내가 건강하지 않았다면 이 마저도

해낼 수 없었을 테니 말이다


오히려 남편을 쉬게 하고 내가 일하는 편이

마음이 더 편하다 어차피 내가 시작한 일

내가 마무리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2-30분에 한번 꼴로 들어오는 주문 덕에

나는 아이들 잠을 재우기 위해

가게 문을 잠그고 빠르게 집으로 가서


아이들을 위해 잠자리 기도를 해 주었다

아이들에게 해 주는 기도는 감사기도가

거의 전부가 되는 것 같다


엄마가 왜 그렇게 감사한 마음이 드는지

시시콜콜 이야기해 주면서

아이들에게도 자연스레 감사한 마음을

갖게 해주곤 한다

감사할 일을 나열하면 밤을 새도

끝을 내기 어려울 정도다


20여분 아이들을 위해 감사기도를 마치고

나니 쿠팡이츠 알람이 울린다


집에서 도보로 5-6분 거리에 있는

가게로 열심히 5-6번을 달리게 된다

저녁도 거른 나에게 5-6번 달리기는

결국 날씬한 아가씨 몸매를 만들어주어

감사하다


이 일을 시작한 이후 체중은 몰라보게

빠졌다 체중이 빠지니 미인이라는

소리를 자주 듣는다


한때는 똥 빼가 많이 나와서 고민이

많았는데 이제는 기존에 입던 바지가

술술 내려간다


'강인함의 힘' 책에서는

강인함을 기르기 위해서는 홀로 대화를

나누고 내면을 자주 들여다보아야 한다고

한다


나는 지금 가게를 운영하면서

혼자 늦은 시간에 나와의 대화를 시도해 본다

하와이 대저택이 말하던 '셀프고립'이

이런 게 아닐까 싶다


나는 한때 혼자 있는 걸 너무나 싫어했다

항상 누군가 내 옆에 있어야 마음이 편했었다

그래서 결혼이란 것도 나 혼자 사는 것이

불가능해 보였기에 했다고 생각도 든다

남편이 들으면 서운하겠지만 말이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 들수록 결국 나 혼자

생각하고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인생은 혼자 가는 것

내 안의 나와 대화를 나누다 보면 내가

그토록 두려워했던 외로움보다는

내 삶의 깊이를 더 해주는 혼자만의

시간이란 생각이 든다


코끝이 시리다

매장 내에 히터를 틀어놓아도

찬바람이 너무 강해서 별 효과가 없는 것 같아

오늘은 히터를 켜질 않았다


발이 좀 시리고 코끝이 시린 것 외에는

다른 불편함은 느껴지질 않는다

조용한 이 시간을 누릴 수 있어서 감사하다

남편이 편안하게 잠을 자고 있어서 감사하다

두 아이들이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어서 감사하다

내가 점점 짜증보다는 감사한 마음을 갖게 되어서

그것 또한 감사하다


아이들 초등 입학 전까지는 뭐가 그리 힘들었는지

아이들에게 화도 자주 내고 스스로 눈물도 많이

흘렸었다 지금은 아이들이 말썽을 부려도

감사하다 어린 모습에서 성숙한 모습으로

바뀌는 아이들을 보니 모든 게 감사할 따름이다

주변 성공한 사업가를 만날 기회가 종종 있다

그들을 만나면 언제나 웃음이 끊이질 않으며

감사한 마음으로 상대를 존중해 준다

그들의 모습을 보며 나도 배우게 된다

나는 행복한 부자이기 때문이다


새벽 12시 20분이다

밖을 나가니 눈발이 날린다

눈발은 나에게 축복의 선물이다


나 개인으로서 내 책임을 다해서 감사하고

엄마로서 아내로서 제 역할을 해내고 있어

감사하다 뿌듯하다 그 어느 때처럼

자주 주문이 들어오지 않더라도 난 이 시간에

감사하다 예전의 나 같으면 이런 시간이

고역이었을 것이다 이 시간이 너무 힘들고

지쳤을 터


과거의 내 모습에서 벗어나 지금 나에게

주어진 이 시간에 감사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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