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은 답장

by 윤한솔

모든 날이 너였다는 진부한 고백을 해.

아무도 보지 않을 일기장에도

널 사랑한다고 적곤 했지.


있잖아, 마음이 너무 크면

편지지를 펼쳐놓고도

아무런 말을 쓰지 못하게 돼.

고르고 골라서 가장 예쁜 단어만 주고 싶고

생각하고 또 생각해서 가장 고운 문장만 주고 싶거든.


너는 올해 초 내 생일에 선물과 함께 준 편지에 이렇게 적었어.

작년 내 생일쯤 편지를 다 썼다가 부끄러운 마음에 전하지 못했다고.

그렇지만 이제는 부쩍 가까워져서

부끄러움 없이 이런 편지도 전할 수 있어 얼마나 기쁜지 모른다고.

포기하고 그만두고 싶어도 내가 있었기에 견뎠다고.

나의 웃음과 위로를 받으면서

'하루만 더 견뎌보자, 일주일만 더, 한 달만 더'라고 생각할 수 있었다고.

따뜻한 햇볕 같은 사람이 되어줘서 정말 정말 감사하다고.

남들에게 따스함을 베푼 만큼, 돌려받는 하루가 되길 기도한다고.


아, 작고 고운 너는

지난 편지를 다시 읽는 지금 이 순간에도 나를 울게 해.

네게 준 것 보다 내가 받은 것이 더 많은데

너는 어쩜 그 시간들을 다 겪고도 나를 품어 안는지.


소중하고도 보드라운 너는

우는 나를 안아 달래주고

내 손을 잡고 함께 웃어주었잖아.

우리 아무리 힘들어도 고개를 돌리면

서로가 있다는 사실에 위안이 됐었잖아.


한 가지 고백을 하자면,

널 만나기 전에 나는 내가 싫어하는 것만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었어.

호불호가 심하고 싫증도 금방 느끼곤 했으니까.

뭔가를 섣불리 시도하지도 않고

시도하더라도 도무지 끝까지 가본 적이 없으니까.

그런 내게 너는 어느 날 말했어.


나는, 좋아하는 게 아주 많은 사람이라고.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평범한 문장일지 모르지만

나에게 와 닿는 의미는 아주 컸어.

나는 네 앞에서 가장 나다울 수 있고,

전에 없던 내 모습을 발견한 것 같다고 생각했을 때

마침 그 말을 듣게 되었으니까.


좋아하는 게 아주 많은 사람이라는 말은,

내가 좋아하는 모든 것들을 하나하나 알고 있다는 뜻이고

주저하다 한 발만을 겨우 내밀었더라도 나를 응원한다는 뜻이고

많고 많은 나의 면 중에서 사랑스러운 쪽에 시선을 두고 있다는 뜻이니까.


네가 얼마나 어여쁘고 귀한지 자랑하는 말들을 늘어놓고 싶었지만

그것들을 모두 글에 담기엔 나는 아직 미숙한가 봐.

결국은 내 이야기만 하고 말았네.

어떤 사랑을 받았는지 새겨 넣고

어떻게 갚아야 할지 이야기하고 싶었는데

영영 못 갚을 만큼의 마음이란 것만 확인하게 되었어.

다시 만나게 되는 날에 꼭 안아주는 것 말고는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없을지도 몰라.


매일을 나누던 그때가 벌써 오래전이야.

너와의 이별을 앞두고 몰래 문장을 모으고 있었지만

이제서야 이렇게 답장을 해.

이별이 가까워져 편지를 쓴다면

그 편지 이후 매일 볼 수 없게 될 날들이 미리 슬퍼서

서둘러 안녕의 말을 전하려고 했었는데 결국 이렇게 되었네.

답장이 너무 늦어 미안해.

이만 서투른 편지를 마칠게.


진부한 말로 시작한 편지는

진부한 추신으로 끝맺곤 하니까,


추신. 언제나, 언제까지나 널 사랑할 거야.

이전 16화나는 나의 다정을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