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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옹 Mar 20. 2024

[40춘기] 마흔한 살 아저씨 신입사원으로 돌아가다.

신입사원으로 다시 시작

2023년 마흔한 살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에 공기업 신입으로 이직을 하였다.


사기업 노동자들은 으레 사노비보단 공노비 낫다고 한다.

NCS를 준비하고 원서를 접수하였다.


결론은 최종합격. 이게 되네?!

블라인드 채용이 맞긴 맞나 보다.


나보다 와이프와 주위 사람들이 더 놀라워했다.


그 기쁨도 잠시 40대의 나이에 보수적인 집단에서의 신입사원 생활은 쉽지는 않았다.

나이 먹고 군대를 다시 간 기분이랄까..


그동안 괜찮았던 허리디스크가 다시 도졌고,

41살 신입사원이라는 역사를 찍은 지 5개월 만에 병가 2달이라는 역사를 또 써버렸다.


마흔 살도 흔들리더라.


공자께서

불혹(不惑)은 세상에 흔들리지 않는다(?)라고 하셨는데..

엄청 흔들린다. 흔들리다 못해 춤을 추고 있었다.


전 직장은 나름 큰 여행사에서 12년간 여행 상품기획을 하고 있었다.

12년 짬밥이다 보니 편안(?)하게 일을 하고 있었다.


불혹에 들어서니 생각이 많아진다. 

미래에 대한 고민, 뭔지 모를 공허함, 의미 있게 살고 싶다는 욕심 등  많은 생각에 휩싸이고 있었다.

이때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사업하시는 분들이 많더라. 결과는 케바케.


나 또한 하라는 일은 하지 않고 고민만 하고 있었다.

'이걸 계속해야 되나? 코로나 25,26 이런 게 또 와서 여행업계가 또다시 휘청 거리면 어떡하지?'

그러다 보니 안정적이면서 급여가 높고 사회에 기여하는 일을 하는 공기업에 도전한 것이다.


인생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솔직하게 합격할 것이라 건 생각지 못했다. 

40대를 누가 신입사원으로 뽑는단 말인가.

내심 떨어지길 바라는 마음도 있었는데, 덜컥 합격을 해버린 것이다.

그저 무료한 삶에서의 도전에 의미를 두었던 것인데 합격통지가 오니 당황스러웠다.

누군가에겐 간절히 들어가고 싶은 곳인데 이런 오만한 생각을 하는 것도 미안하였다.


텅 빈 A4 지를 책상에 올려놓았다.

세로로 한 줄을 긋고, 왼쪽은 남는다. 오른쪽은 이직한다.

각각 상단에 적은 다음 장단점을 분석하기 시작하였다.

12년 경력을 버리고 신입사원은 아무래도 리스크가 큰 거 같지만 10년 이후 멀리 본다면 그래도 공공기관이 옳은 선택인 거 같았다.


계획을 세웠다.

신입이지만 경력이 있으니 업무도 빠르게 이해할 것이고 금방금방 적응하자.

임신준비 중인데 올해 임신해서 내년에 출산하자.

공공기관의 장점을 잘 활용하자.!


공공기관은 짬이  안될수록 온갖 잡다한 업무와 하기 싫어하는 업무를 짬 시키는 구조였다.

물론 잘 가르쳐 주지도 않는다.

최근 MZ신규공무원의 퇴사러시를 이해하게 되었다.

또한 다른 업종으로의 이직은 경력이 10년이든 20년이든 아무짝에 쓸모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임신준비마저도 바로 될 것이라 생각했지만 삼신할머니께선 그렇게 호락호락하신 분이 아니었다. 


이 와중에 전 직장은 코로나 여행 보복 수요로 인한 사상최대 실적을 달성하였다.

역대급 성과급 지급이 되었고 전 직장 단톡방에선 성과급에 대한 대화가 한창이었다.

성과급에 대한 아쉬움과 소외감이 느껴졌다.


마이크 타이슨이 그랬지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은 가지고 있다.

처맞기 전까지..


양싸데기로 처맞고 있으니 허리디스크 마저 생겨버렸고,

2달간 병가를 내고 요양을 시작하게 되었다.


마흔에 들어서 인생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걸 다시금 깨닫고 있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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