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과 실제 (1) - 「군주론」과 환상의 발견

환상과 고통을 이해하기. 막연한 이상 군주와 마키아벨리즘을 대조하며

by 하늘색 자전거

이 글을 시작으로 환상과 실제에 대해 집중적으로 논의 해보자. 그런데 본격적인 이야기에 앞서, 미리 언급하고 싶은 게 있다. 일단 환상이란 무엇일까? 사전적으로는, '현실에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느끼는 상념'이라고 한다. 나는 이번 연작에서 난 그 사전적 정의를 조금 더 구체화해, 삶에 관련해 이야기할 것임을 미리 말하고 싶다. (예컨대, '환상의 동물'이나 '환상적 경험' 등을 이야기하지는 않을 거라는 뜻이다. 그런 의미에서 본 글에서의 '환상'은 '착각'과 비슷하다.)


환상과 실제가 삶에 미치는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영향, 그리고 그 사실을 바탕으로 우리는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 이야기하게 될 것이다. 본 첫 번째 글에서는, '환상'이라는 용어를 삶의 관점에서 구체화하는 데 초점을 두겠다. 그리고 그 환상이 우리에게 어떻게 고통을 주는지 이야기하겠다.


처음으로 다룰 제재는 「군주론」이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은 수백 년간 금서로 지정되어 대중에게 읽히지 못한 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시대까지 「군주론」은 명실상부한 리더의 고전으로 여겨진다.


나는 「군주론」이 큰 성공을 거둔 이유가, 이전까지 진리라고 믿어져 온 윤리학과 철학의 많은 주장들을 적극적으로 반박해 독자들을 설득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런 전체적인 책의 구조에, 우리가 논할 '환상과 실제'가 있다.




사람 위에 군림하는 다른 사람이 존재한 이래로, 사람들은 오랫동안 이 질문에 대해 고민했다. 군주란 어떠해야 하는가? 그것은 대중의 질문임과 동시에 군주 스스로의 질문이었다. 그리고 수많은 이들이 이에 답했다. '군주는 무릇 선해야 한다. 군주는 베풀어야 한다.' 이것들이 '군주란 어떠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마키아벨리 이전의 답이었다.


그리고 마키아벨리는 전한다. 물론 대중의 이상적 군주상과 군주의 이상적 군주상이 같을 수는 있다. 하지만 자신의 위치를 유지해야 한다는 모든 군주의 염원이라는 관점 아래에서 그것은 현실화될 수 없다. 자신이 필수로 견지해야 하는 그 관점을 망각한 채 대중의 이상적 군주상을 맹목적으로 따르는 군주는 망할 수밖에 없다. ¹


「군주론」에서는 많은 예시와 관점으로 군주상에 대해 풍부한 이야기를 전개하지만, 본 글에서는 하나만 다뤄보겠다. 많은 사람이 '군주는 가진 것을 대중에게 베풀어야 한다'라고 말한다. 아름다운 이야기이다. 아름다운 이야기일 뿐만 아니라 수많은 현자들이 그렇게 말했듯 설득력 있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군주는 그러면 안 된다고, 오히려 그럴 수 없을 것이라고 마키아벨리는 말한다.


군주가 무엇을 베푸는지를 생각해 보면 사실 단순하다. 결국은 예산에서 베푸는 것이고, 그것은 결국 대중으로부터 걷은 세금이다. 군주가 단순히 '베풀어야 한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맹목적으로 행해버리면 대중은 세금으로 고생하게 되는 구조이다.


물론 현대에 와서 우리 사회는 복지와 세금의 관계와 우선순위에 대해 정말 많은 논의를 하고 있으며, 결론적으로 어떻게 그 둘을 정하는지에 대한 명확한 답은 없다. 그럼에도 마키아벨리가 여기에서 무엇을 이야기하고자 하는지는 분명하다. 베푸는 것에는 외부 요인에 의한 중단의 리스크가 있기 마련이며, 베풀다가 중단하는 것은 더 큰 화를 불러올 수 있고, 따라서 베푸는 것에 자신의 운명이 종속될 수 있기에, 기본적으로는 베풀지 말고 가능한 인색하게 굴어야 한다는 것이다.


「군주론」이 고평가 받는 이유로, 본격적인 인간 본성에 대한 현실적 통찰을 드는 이가 많다. 예컨대, '인간은 감사할 줄 모르고, 변덕스러우며, 앞과 뒤가 다르고, 위선적이며, 위험은 피해 가고, 이득이 되는 일에는 극성을 부린다.' 같은 부분에서 인간의 본성을 날카롭게 지적해 냈다는 말이다. 특히 마키아벨리는 이런 인간의 본성에 대한 관찰에 그치지 않고, 그것을 바탕으로 군주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그 규범을 쭉 뽑아내는데, 그것을 보면 경이롭기까지 하다.


가령 「군주론」에서는, 새롭게 권력을 잡게 된 군주의 경우, 말하자면 공신들보다 처음에 자신을 지지하지 않았던 이들과 친해지기가 더 쉬울 것이라 말한다. 단순히 공신을 경계하라는 말이 아니다. 나아가 처음에 자신을 지지하지 않았던 이들과 친해지기 더 쉬운 것이 자연스럽다고 주장한다. 신기했다. 왜? 마키아벨리는, 공신은 결국 기존 권력에 대항했던 이들이고, 기존 권력에 불만을 가졌던 이들이며, 왜 불만을 가졌을지 생각해 보면 이들 자체가 만족할 줄 모르는 본성을 가졌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한다. 대단한 통찰이다. 시대를 고려하면 더더욱 그렇다.


그러나 나는 그런 부분도 대단하지만, 이런 「군주론」의 목표와 구조 또한 엄청난 고평가 요소라 생각한다. 많은 군주는 환상을 가지고 있다. 모든 대중의 기대에 부합하는 성군이 될 수 있을 거라는 환상. 그러나 그것은 불가능하기에 많은 군주가 좌절한다. 마키아벨리는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미리 일깨워주고, 그것에 더 좌절하지 말고 더 현실적인 그림을 그려 현실에서 성공하는 군주가 되라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군주는 평화적 군주의 꿈을 꾼다. 하지만 전쟁을 일으킬 수 없다면 타국 간 상황의 주도권을 잡을 수 없다.

군주는 정직한 군주의 꿈을 꾼다. 하지만 신의를 질 수 없다면 변덕스러운 상황으로부터 자신을 지킬 수 없다.

군주는 관대한 군주의 꿈을 꾼다. 하지만 인색할 수 없다면 후일 신민으로부터 미움받지 않을 수 없다.

군주는 인자한 군주의 꿈을 꾼다. 하지만 잔인할 수 없다면 신민으로부터 경멸받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군주는 좌절한다. 하지만 마키아벨리는 이렇게 군주를 위로한다. 괜찮다. 그대들의 덕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그대들이 애초에 바랐던 것은 군주가 동시에, 또한 묵시적으로 바란 '지속성'과는 양립할 수 없는 것이었기에.


마키아벨리는 전한다. 군주는 자신의 환경을 이해하고, 자신의 환상이 덧씌워진 이상적 군주상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그것은 군주의 이상을 단지 '말하는' 사람이 아닌, '구현'하는 사람의 숙명이다.




대중의 이상적 군주상과 마키아벨리즘에서의 이상적 군주상을 대조하며, 앞으로 이야기하고 싶은 '환상'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우리에게 고통을 주는지 살펴보았다. 글을 마치는 동시에 난 다음 문장이, 지금까지 설명한 '환상'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줄 거라 생각해 마지막으로 덧붙이겠다. (당위명제로 바꾼다면 더 잘 이해될지도 모르겠다.)

악마는 인간을 현혹할 만큼 아름다우며, 천사는 악마를 상대할 만큼 흉측하다.



미주


¹ 그럼 대중의 입장에서는? 마키아벨리는 사실 대중의 입장에서도 대중의 이상적 군주상을 따르는 군주가 좋을 수 없다고 말한다. 마키아벨리의 주장에 따르면 그런 군주는 자신의 자리를 유지할 수 없고, 대중은 새롭게 군주가 된 이가 펼치는 정책에 만족하기가 일반적으로 더 어렵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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