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십 대 시절을 어둠의 자식(사회나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꺼려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으로 보냈다. 물론 웃기도 하고 오락거리도 즐기기는 했다. 그러나 속은 우울감과 패배감으로 범벅이었다. 그렇게 된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내 비관과 냉소는 수능을 준비했던 고3과 재수생 시절에 정점을 찍는다. 원하는 결과가 나왔으면 그나마 나았겠지만, 그것도 아니었다. 그러다 벼랑 끝 심정으로 택한 것이 미술유학이었다.
우울함이 극에 달할 때 그나마 내가 할 수 있었던 첫 번째는 정신이 쏙 빠지도록 매운 음식으로 내 위장과 정신을 하얗게 태우는 것이었고, 두 번째는 법륜 스님의 즉문즉설을 보는 것이었다. 강연 중 소개하신 “주여, 뜻대로 하옵소서.”라는 종교적 신념이 그렇게 와닿았었다. 스님 표현을 빌리자면 “우리는 쥐약인데 그것도 모르고 맛있어 보이니 먹으려 한다. 신은 먹지 말라고 계속 신호를 주는데. 그러면 우리 입장에서 못 먹는 게 좋은 걸까, 먹는 게 좋은 걸까?”의 뜻이었다. 이 말씀을 들으니 왜 사람들이 종교에 귀의하는지 이해가 갈 것도 같았다. 내 힘으로는 어찌 할 수 없는 일에 대해서는 운명이라는 핑계를 대야 그나마 위안이 되었던 것이다. 그러지 않으면 나 자신이 너무 비참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유학을 마친 지금은 정말 그렇게 생각한다. 한국 대학이 나에게는 쥐약이었고, 내 미래를 아는 어떠한 절대적 존재가 경고한 것이 아닐까 하고.
한국대학이 실제로 나에게 쥐약이었는지 아니었는지 사실 확인은 필요치 않다. 내가 그렇게 여기기로 했으니까. 이제는 노력을 했는데도 잘 안 되면 ‘내 눈엔 맛있어 보이는데 사실은 쥐약인가 보다.’하며 놓을 수 있는, 조금은 여유롭고 무책임한(?) 사람이 되었다. 살기가 훨씬 편하고 즐겁다. 유학은 나에게 삶에 대한 새로운 태도를 알려줬다. (매우 비싼 졸업장은 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