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의 우산

by 생각의정원


아침에 일어나 창밖을 보니 비가 내리고 있었다. 현관 신발장 옆에 꽂혀 있는 우산 다섯 개를 보며 생각했다. 오늘은 어떤 우산을 가져갈까.


검은색 장우산은 가장 튼튼하다. 바람이 불어도 끄떡없다. 하지만 무겁다. 회색 접이식은 가볍지만, 조금만 세게 내려도 금방 젖는다. 빨간 우산은 예쁘지만 손잡이가 헐거워졌다. 투명 우산은 시야가 좋지만 쉽게 찢어진다.


결국 아무거나 집어 들었다. 어차피 비를 피하는 건 마찬가지니까.


우산이라는 물건은 참 이상하다. 필요할 때만 생각나고, 필요 없을 때는 존재감이 없다. 맑은 날에는 짐일 뿐이고, 비 오는 날에는 생명줄이다.


그리고 우산은 늘 사라진다. 어디에 두고 왔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카페, 식당, 버스, 지하철. 우산은 마치 증발하듯 사라진다. 그래서 우리는 또 우산을 산다. 편의점에서, 급하게.


어쩌면 우산은 이 세상에서 가장 자주 잃어버리는 물건이 아닐까. 그리고 가장 자주 빌려주는 물건이기도 하다. 빌려주고 돌려받지 못해도, 크게 섭섭하지 않은.


비 오는 날 거리를 걷다 보면 우산의 리듬이 있다. 사람들은 우산을 들고 제각각의 속도로 걷는다. 급한 사람은 우산을 기울이고 빠르게 걷고, 여유로운 사람은 천천히 빗소리를 듣는다.


우산과 우산이 스쳐 지나갈 때, 우리는 순간적으로 각도를 조정한다. 너무 가까워지지 않도록, 하지만 비는 피할 수 있도록. 말없는 협상이 이루어진다. 이것이 도시에서 살아가는 방식이다.


가끔 우산 없이 비를 맞으며 걷는 사람을 본다. 급해 보이지도 않은데, 그냥 걷는다. 처음에는 실수로 우산을 안 가져온 줄 알았는데, 천천히 보니 일부러 그러는 것 같다. 비를 맞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우산을 받쳐 들고 서 있으면, 비는 우산 위를 두드린다. 똑똑똑. 일정한 리듬 같기도 하고, 불규칙한 소음 같기도 하다. 사람에 따라 다르게 들릴 것이다.


누군가는 그 소리를 좋아하고, 누군가는 싫어한다. 누군가에게 비는 낭만이고, 누군가에게는 불편함이다. 같은 비, 같은 우산 아래에서도 우리가 느끼는 것은 다르다.


비가 그치면 우산을 접는다. 물기를 털고, 흔들고, 다시 현관에 세워둔다. 다음 비 오는 날까지. 그리고 그날이 오면, 나는 또 고민할 것이다. 오늘은 어떤 우산을 가져갈까.


비는 계속 내린다. 우산은 여전히 다섯 개다.


그리고 나는 안다. 다음 달쯤 되면 그중 하나는 없어져 있을 거라는 것을. 어디선가 누군가 내 우산을 쓰고 있을 거라는 것을. 그리고 나도 어디선가 누군가의 우산을 쓰게 될 거라는 것을.


우산이란 그런 물건이다. 잠시 빌려 쓰다가, 다시 돌려주는. 완전히 내 것이 아니지만, 필요할 때는 확실히 내 것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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