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촌놈에게 부산이란 도시는 환상 그 자체였다. 서울 못지않은 발전된 도시 풍경과 바다가 어우러지는 조합은 내게 있어 늘 선망의 대상이었다. 스무 살이 지나 여름에는 록 페스티벌을 가을에는 영화제를 핑계 삼아 부산을 찾았다. 그럴 때면 부산은 늘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환대해 주었다.
조용필이 부른 조금은 촐싹맞은 느낌의 <서울 서울 서울>에 비해 최백호가 부른 <부산에 가면>은 고즈넉함이 일품이다. <돌아와요 부산항에>라는 시대의 대표곡도 있지만 취향에도 정서에도 <부산에 가면>만큼 부산을 구석구석 빼곡하게 담은 노래가 또 있으랴. 눈만 감아도 생생하게 느껴진다. 뜨거운 여름 볕의 다대포항의 열기. 그리고 부산 전역을 누비며 영화제 기간 내내 설레발치며 돌아다닌 시간들 말이다.
냉면을 많이 좋아한 것은 아니었으나 부산에 놀러 가 먹어본 밀면은 그 독특함에 첫 만남부터 홀라당 빠져버렸다. 분명 밀가루 면이라고 하였는데 분위기는 냉면 못지않았고 먹는 방식 또한 냉면보다 한결 수월했다. 다른 메뉴도 마찬가지였으나 유독 밀면에 집중했던 것 같다. 밀면을 필두로 돼지국밥과 꼼장어는 부산에 가면 늘 먹었던 음식이었다. 밀면에 소주 한 잔, 돼지국밥에 소주 한 잔, 꼼장어에 소주 한 잔, 해석한들 무엇할까. 모두 다 소주 안주였다.
독서일기로 직전에 다룬 책이 몹시 머리가 아플 것 같아 눈에 띄는 조금은 쉬운 책을 골랐다. 부산에 근거를 둔 여러 대학교수들이 쓴 갖가지 음식 기행이다. 유명한 맛집 소개만 구구절절 읊은 것이 아닌 각 음식과 재료에 대한 역사적으로 또 생활에 밀접한 에피소드까지 깨알같이 나열된다. 먹어본 음식도 있고, 먹어보고 싶은 음식도 있다. 물론 먹기 싫은 음식은 단 하나도 없다.
이마저도 서울 촌놈의 선입견일까. 경상도 음식은 전라도에 비해 맛이 없다고 늘 생각했으나 그건 큰 오산이었다. 도시라는 공간이 갖고 있는 위압감, 그리고 그 인프라가 만들어내는 신선한 재료와 빠르게 순환되는 깨끗한 위생 등을 필두로 부산의 음식은 충분히 맛있고 다양했다. 책을 시작하기 앞서 '열두 달 부산 진미'로 두 페이지에 할애한 구성은 마치 부산에 가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설렘을 느끼게 해준다. 더욱이 열두 달 빼곡히 먹어야 할 음식이 있으니, 평생을 두고 부산을 수시로 찾아야 할 것만 같다.
평생을 두고 두 번 정도 맛본 재첩 국에 대한 슴슴한 이야기. 아직 먹어보지 못한 복국 이야기. 사랑해 마지않는 돼지국밥과 우연한 기회로 대학로에서 맛본 완당. 서민의 대표적인 생선 고등어와 책을 읽기만 해도 기대가 되는 웅어. 그리고 영원한 소주 친구 꼼장어가 이어진다. 암소갈비는 마음에 품고, 밀면과 간짜장 그리고 구포국수까지 이어지면 내용은 쉽게 읽히나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과다 분비되는 위산을 주체할 수가 없게 된다.
부산오뎅과 고구마, 그리고 양갱에 이르면 나도 모르게 막걸리가 떠오르고, 동래파전을 찍고 소개되는 막걸리와 대선 소주까지 다다르면 그야말로 산해진미 진수성찬을 뚝딱 해치운 느낌이다.
음악을 글로 다루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것이 음식이 아닐까 싶다. 맛도 냄새도 글로는 전할 수 없는 한계가 분명하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한다. 그래서 종종 음식을 다루는 책은 저자의 고민 그리고 소개하고자 하는 방향성에 따라 그 내용이 알차기도 하고 또 수박 겉 핥기처럼 겉돌기도 한다.
그런 면에서 <부산미각>은 부산 음식의 역사를 중심으로 그 시작과 현재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어우르는 느낌이 든다. 여행을 좋아하고 음식을 좋아하는 이라면 꼭 한번 읽어보길 권하고 싶어진다. 후덕한 정과 나눔 그리고 사람 냄새가 진하게 풍기는 대한민국 곳곳의 "미각"이 더 신명 나게 퍼져 나가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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