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수필 : 과거가 된 미래

by 잭 슈렉

직전에 읽은 <인구는 거짓말하지 않는다>에서 유일하게 언급된 영화가 한편 있다. 유명한 무명 감독으로 일컬어지는 리처드 플라이셔 감독의 <소일렌트 그린>이다. 1968년작 <혹성 탈출>의 주인공으로 익숙한 얼굴인 찰톤 헤스톤이 주연을 맡은 1973년 작품이다.


영화의 배경은 2022년이다. 이미 우리에겐 과거가 된 시점이다. 1970년대의 무한한 상상력은 2022년을 어떻게 묘사했을까. 스포일러가 다분하니 관심 없는 분은 뒤로 가기 버튼을 꾹 눌러달라.


언급한 책 <인구는 거짓말하지 않는다>는 급속도로 늘어나는 지구의 인구, 그리고 저출산, 나아가 다가올 미래에 대한 전망을 다각도로 다룬다. 그 와중에 단순히 인구가 늘어나는 것이 비단 나쁘다고 꼬집지 않으며, 저출산의 해결책이 우리가 그간 접해온 것들로부터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 또한 질책한다. 그러면서 언급한 <소일렌트 그린>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늘어난 인구문제로 인한 식량 부족 사태를 다루었는데, 영화를 보고 나니 왜 책에서 이 영화를 소개했는지를 여실히 깨달을 수 있었다.


congerdesign-vegetables-752153_1920.jpg


때는 2022년이다. 인구 증가와 환경 파괴로 이미 자연은 완전히 소멸됐다. 지구 온난화로 인해 1년 내내 32도를 육박하는 폭염이 지속되고, 열대기후 국가는 이미 멸망한 뒤다. 뉴욕 인구는 4천만 명을 넘어섰고, 그중 맨해튼에만 2천만 명이 모여 산다.


먹을 것도 없다. 씻을 물도 없다. 하물며 잠잘 공간도 없다. 주인공 쏜 형사(찰톤 헤스톤)가 거주하는 그나마 사람이 살만한 곳 역시 온수는 커녕, 집으로 진입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계단에도 사람들이 빽빽이 모여 잠들어 있다. 굶어 죽는 일은 다반사고 자칫 시위나 소요 사태가 일어나면 중장비 기계가 몰려와 사람들을 쓰레기 수거하듯 잡아간다.


그 와중에 소일렌트 기업 이사가 의문의 죽음을 당한다. 고급 빌라에서 사는 그의 집은 24시간 내내 에어컨이 나오고 냉장고도 있고 먹을거리도 넘쳐난다. 그의 죽음이 단순 강도가 아닌 교살이라 판단한 쏜은 사건을 추적하고, 그 끝에서 소일렌트 기업이 사람을 재료로 음식을 만드는 것을 깨닫게 된다.


드라마틱한 절정도 없다. 뒤통수를 후려치는 반전도 없다. 다만, 충분히 짐작되는 결말을 향해 나아가는 장면 장면의 참혹함과 암울함이 생각보다 생생하게 전해지는 작품이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이사가 거주하는 빌라에 '가구'라고 불리는 여자가 있다는 점이다. 이 여자는 비서이면서 동시에 성적인 대상으로 쓰인다. 주인이 바뀌면 가구는 그 집에 남게 되고, 새 주인을 맞이하는 과정에서 선택 또는 버림을 받는다. 스스로 생각하는 것을 포기한 것처럼 누군가의 소유물이 되어 살아가는 가구가 빌라 곳곳에 여럿 있다. 찾아보니 작중 가구라는 표현은 19세기 흑인 노예를 불렀던 표현 중 하나였다고 한다. 노예제가 폐지되었으나 1970년대 기준 2022년을 바라보면서 노예제가 다시 부활했음을 예상하게 하는 뼈아픈 설정이 아닐 수 없다.


jggrz-nuthatch-9412845_1920.jpg


또한 음식을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그 재료(사람)가 필요한 소일렌트 기업은 종교의 힘을 빌려 사람들의 자살을 돕는다. 독이 든 음료를 마신 뒤 20분에 걸쳐 미리 고른 음악과 좋아하는 색으로 분위기가 연출된 방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다. 성직자가 자살을 돕는 것을 넘어서 방조하기에 이르고, 이렇게 죽은 사람은 죽음과 동시에 바로 음식의 재료로 사용된다. 이뿐만이 아니다. 자살하지 않더라도 여러 이유로 죽은 사람들 또한 돈을 받고 거래되며 음식의 재료로 쓰인다. 그래서 영화에는 '사망 포상금'이 공공연히 지급된다.


현란한 CG도 없고, 귀 롤 사로잡을 음향도 빈약하지만 그 시절의 영화에는 제법 의식을 휘어잡을 이야기가 있어 좋다. 비록 이 작품은 흥행에 실패했지만, 인구와 식량이라는 측면에서 한 번쯤 관람해 볼 필요가 충분히 있어 보인다. 부익부 빈익빈이 명확하게 나누어진 세계, 먹을 것을 찾아 좀비처럼 움직이는 사람들, 한정된 공간에 너무 많은 사람들이 살면서 발생하는 현상들까지... 영화 속 세상이라고 외면하기엔 우리가 사는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는 면들이 있다.


더 늦기 전에 아끼고 소중히 다뤄야 하는 마음을 지니는 일이 얼마나 힘들까. 아주 조금이나마 미약하더라도 진심의 밀알을 모두가 각자 품어보자. 티끌 모아 태산이 힘든 일은 맞지만, 또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 않기 때문이다.

작가의 이전글오늘 수필 : 두 번째 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