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킨 - 2019년 40대
두 달에 한 번씩 아버지 약값과 어머니 휴대폰 요금을 내드린다. 틈틈이 필요한 걸 사드리기도 하고, 가끔 급한 호출을 하실 때면 숨이 차오를 정도로 달려가는 일이 전부다.
천천히 걸어 10분도 채 되지 않는 가까운 곳에 부모님을 두고 지낸다. 일주일에 한 번씩은 찾아뵙고 같이 밥을 먹는다. 여덟 살, 다섯 살 두 손자 녀석의 재롱을 보며 꼬박 하루를 함께 지낸다. 특별할 것 없는 대화가 이어지고 돌아오는 길엔 어머니가 준비해 주신 반찬도 넉넉하게 받아온다.
형들이 얼마 전 줬다며 막내아들 용돈은 매번 마다하신다. 드렸다가 되돌려 받는 손길은 세상 그 무엇보다 어색하지만, ‘괜찮다’를 연신 꺼내시는 부모님 앞에서 억지로 드리는 것도 한계가 있게 마련이다.
남들 못잖은 효도를 하고 있다 생각하지도 않는다. 동시에 불효자라고 스스로를 깎아내리지도 않는다. 그 누구와 마찬가지로 내가 해드릴 수 있는 최선을... 그저 할 뿐이다. 애주가 아버지가 권할 때면 마다하지 않고 소주를 함께 마신다.
전부라고 단언할 순 없지만, 가능하면 어머니 말씀을 거스르지 않는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효도. 어쩌면 가장 현실적이면서 쉽고, 두 분에게 가장 편안한 일상을 드리는 방법이라고 본다.
두 분의 젊은 시절은 그리 부유하지 못했다. 지금도 크게 다르진 않다. 풍요롭진 않지만 남들에게 손 벌리지 않아도 될 정도의 적당하다면 딱 그 정도의 생활. 그러던 어느 날, 행운이라 말할 만큼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공로수당이라는 이름의 공짜 돈. 그것도 매달 10만 원씩. 아버지와 어머니 앞으로 각각 10만 원씩.
서울에서는 유일하다던 그 공로수당. 아버지는 평생을 중구에서, 어머니도 50년 넘게 중구에서 살고 계시기에 그 감회는 남달랐을 것이다. 믿기지 않는다고 하셨다. 그전부터 받아오신 노령연금과는 또 다른 ‘맛’이었다.
첫 달 아버지는 고기를 사주셨다. 어머니는 두 손자의 간식을 아끼지 않으셨다. 이후로도 여러 차례 고기파티는 이어졌다. 중구에서 살아 이런 일도 있지 않냐 하시며 그간의 이야기들이 이어졌다. 못이 박히도록 들은 옛이야기도 어김없었다. 그 모든 것들은 자연스러웠다. 고기 냄새 너머 과거 부모님 월급날에나 맡을 수 있었던 통닭의 향수가 은은하게 퍼졌다. 달콤하고 기분 좋은 느낌이었다.
아무리 새로운 것이라 하더라도 익숙해지면 무던해지기 마련. 낯선 공로수당의 달콤한 향기가 생활 속에 스며들었다. 아버지는 공로수당으로 당신 약을 사셨다. 어머니도 휴대폰 요금 그만 내줘도 된다 말씀하시는 걸 큰돈 아니니 괜찮다고 했다. 그렇다고 해서 고기파티가 사라진 것도 아니고 아이들의 간식이 줄어든 것도 아니었다. 공로수당은 그저 그렇게 두 분의 일상에 소리 없이 뿌리를 내리게 되었을 뿐이다.
그동안 아들로서 해드린 모든 것들을 굳이 금액으로 환산할 필요는 없다. 그리고 그것이 두 분이 매달 받으시는 20만 원보다 크든 작든 가늠할 이유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공로수당을 받기 전에도 늘 해드렸던 것들이 공로수당을 받으신 뒤로 조금씩 그 자취를 감추게 되니 괜히 서운해졌다. 그간 내가 해드린 효도의 가치가 20만 원정도였나... 20만 원... 내 불효의 무게가 그렇게 느껴졌다.
뿌리내린 공로수당은 더 풍성하게 가지를 뻗어 나가고 있다. 부모님은 그 가지 아래 시원한 그늘을 누리실 테다. 그 나무에 틈틈이 물을 주고, 상처나 아픈 곳 없는지 잘 살펴나갈 것이다. 자식으로서 내가 할 수 있는 바른 행동이 공로수당과 함께 부모님에게 행복을 느끼게 해 드리면 좋겠다.
모자람 없으나 넘치지 않고 지루해하지 않으면서 즐거운 마음으로 한 결 같이 그러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