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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종원 Dec 14. 2020

52년 쓴 133권 일기를 '서울역사박물관'에 기증하다

보통시민이 서울의 역사가  되다

‘딩동’

현관문 초인종이 울립니다.

“안녕하십니까?”

장정 5명이 들어섭니다.

1시간 반 뒤 그들은 우리 집에서 짐을 6 상자 가지고 나갔습니다.

내가 52년 동안 쓴 133권 일기입니다. 1967년 대학 2학년부터 작년까지 썼던 것이지요.

그리고 내 반평생을 함께 하였던 라디오,카세트레코더, 카메라 등도 함께입니다.

찾아 온 일행은 ‘서울역사 박물관’ 직원입니다.

내가 일기를 기증하겠다 하여 박물관에서 받아간 것입니다. 서울의 역사로 삼겠다고 합니다.


12년 전에 30년 일기를 쌓아 놓으니 177CM




52년 동안 쓴 133권 일기



직원들이 일기와 기타 등등 물건을 포장합니다. 




책 꽂이가 텅 비었네요.




일기는 초등학교 때 숙제에서 중학교의 사춘기, 고등학교 대학교의 청춘. 그리고 뒤 따라온 중년, 장년까지 동행입니다.

초등학생 때는 선생님께서 반 아이들 앞에서 내 이름이 불렸습니다. 가장 일기를 못 쓴 아이로서 참으로 부끄러웠습니다. 

중학생 2학년 때부터 어머니께서 사주신 튼실한 일기장에 일기를 썼습니다.

사춘기의 생각, 갈등을 적으면 어머니께서 아들의 침묵이 무엇인가를 아들의 일기장을 슬쩍 보시고는 아들의 마음을 헤아려주셨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우리 집 일기쓰기 대장이십니다.

아버지가 쓰신 일기들은 다락방에 가득 찼습니다.

일흔 나이가 넘어서도 일기를 쓰시더니 어느 날에 그 많던 일기장은 슬며시 사라졌습니다.

당신께서 썼던 일기를 하나 둘 태워버리고는 함께 있었던 아들이 쓴 소년과 청춘 시절 일기까지 태우셨습니다.

눈이 어두워서 일기장이 같은 모양이었으니 아버지의 장년, 노년과 아들의 소년, 청춘은 사라졌습니다.


남은 일기는 대학 2학년부터입니다.


글 잘 쓰는 남처럼 뛰어난 글을 쓰는 솜씨가 없기 때문에 내 이야기를 열심히 써보자는 결심을 합니다.


사춘기 때는 사랑 이야기를 가슴 두근대며 잉크 축인 강철 펜으로 순정어린 세월을 적어갔습니다.


일기를 강철 펜으로 쓰고, 만년필로 바뀌고, 타자기로 찍고 워드프로세서 르모로 찍고 컴퓨터 글로 찍고 이제는 휴대폰에 찍고 종이 일기에도 적습니다.

군 생활에서 만나 제대 후 만나서 손 한 번 안 잡고 떠난 여인은 회사에서 쓰는 용지에다 이별의 편지를 써서 저에게 보냅니다.

일기장 한 면에 그녀는 지금도 여전히 보라색 잉크 글씨로 로 이별을 말합니다.

젊은 날에 이제 기억조차 흐릿한 아가씨와 함께 하염없이 오고 간 이야기가 단편 소설입니다.


만나고 헤어지고 마음에 그림자조차 없더니 떠난 다음에 만난 일도 없는 사람들도 일기 속에선 방금 헤어진 듯합니다.


청춘 시절 짓궂은 밤을 보내고 지금은 세상을 떠난 친구의 청춘이 그립습니다.



묵은 일기에서 세상일은 마치 소설 하나처럼 결정되어있습니다.


살아오는 동안 만났던 사람과 있었던 일들이 하나 같이 결정되어있었던 같은 느낌입니다.


사랑도 직장도 모두 내 뜻인 것처럼 살아왔으나 묵은 일기를 앞으로 뒤로 넘기다보면 지도상의 지역을 오가듯이 정해진 길을 간 것 같습니다.

아내를 만나고 결혼했습니다. 한 평생 남편을 믿고 살겠다는 소박한 글을 제 일기에 남깁니다.

세상은 적당한 괴로움 속에 약간은 적선하듯 있던 행복마저 사라지더군요.

결혼 1년 뒤 첫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리고 다시 10년 뒤, 아내는 교통 사고를 당하여


 나는 회사에서 병원으로 퇴원하여 아내의 병상 옆에서 밤을 보냅니다. 일기장에는 늘 들고 다녔던 수첩의 메모를 붙여놓습니다. 그 메모는 시간 별로 달라지는 아내를 지켜보는 병상 기록입니다.

병원에서 퇴원을 한 지 8개월 째되던 때, 우리의 결혼 기념일에 장인 어른께서 꽃 바구니와 편지 한 통을 보내 주셨습니다. 어른께서는 당신이 돌아가시던 해까지 계속 보내주셨습니다.

함께 써 주신 편지 한 통 한 통이 일기 속에서

“자네 내 딸을 잘 보살펴 주어 고맙네. 내 딸내미야. 저런 남편 없다. 사랑 주며 살거라.

하는 말씀이 들리는 듯합니다.


39살 아내는 33년 동안 한 손 한 발만 성한 채 나날을 보내게 됩니다. 아내의 소원이

“나 보다 자기가 먼저 죽으면 안돼. 자기가 나를 돌봐주고 가야해. ”

하는 말도 내 일기장에 아내의 유서처럼 적힙니다.


아이들이 자라는 모습을 5년 일기에다 적습니다.

아픈 엄마 발을 씻겨 주는 초등학교 4학년 아들과 1학년 딸이 애틋합니다.


아내가 어느 해 몇 달 일기를 씁니다.

남편처럼 아이들도 일기를 적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함께 동참했지만 아이들에게 일기쓰기는 작심삼일입니다.

그래도 남은 일기로 아내의 중년과 아이들의 소년이 눈에 선합니다.

“속 썩인 남편이 그리워라. 그 때 자식들이 다녀갔네. 내 허전한 마음을 어이해.”

눈물로 쓴 어머니 일기와 그 일기를 이 큰 아들은 책을 만들어 어머니를 뵙듯 합니다.


아내가 꽃 지듯  지는 동안 자식들은 사춘기와 청춘을 보내고 중년이 되어 짝을 찾아 갔습니다.


나는 이조백자 닮은 아내를 지키며 살아갈랍니다. 일기를 계속 이어 써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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