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것 알기, 그것을 끝까지 사랑하기

도서 <가끔은 내게도 토끼가 와 주었으면>

by 스누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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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그림책을 좋아하는 사람의 그림책 에세이. 지친 마음을 달래주는 진부한 에세이. 나는 그 진부한 에세이라도 찾아다니는 지친 사람.



이 정도가 이 책을 대하는 나의 마음가짐이었다. 아트인사이트의 책 소개 글을 잘 읽어보지 않은 탓도 있지만, "메마르고 뾰족해진 나에게-"라는 글귀가 그저 스쳐가는, 위로에 최적화된 문구 같았기 때문이다.



사실 책의 첫 장을 넘길 때까지, 내가 이런 책을 읽는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어색하게 느껴졌다. 에세이나 수필 형식의 글이 아직 낯선 데다가, 겉표지에 그려진 귀엽고 앙증맞은 토끼는 어쩌면 나와 정반대의 성향을 가진 생명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 책과 나와 비슷한 점이라고는 겨우 '그림'이라는 단어 정도이지 않을까, 혼자 생각하며 잠깐 씁쓸해하다, 한 장 한 장 종이를 넘겼다. 그렇게 아이가 잠에 들듯 이 책은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나에게 스며들었다.




02

할 일의 목록을 늘어뜨리거나, 해야 할 일에 하고 싶은 일들을 끼워 넣는 것. 예를 들면 마당에 물을 주다가 무지개를 만들어 물장난을 하는 것. 이것은 저자가 보듬고, 곱씹는 '일상'이다. 그녀의 하루 일과가 소개된 글귀는 나른한 글자체와 묘하게 어울려 어쩌면 평화로워 보이기까지 했다.


예전의 나였더라면 "너무 비효율적이야!"를 외치며 답답해했을 텐데. 나도 변하긴 했구나,라는 생각을 하며 왠지 모를 희망이 느껴졌다.


"어쩌면 나도 행복해질 수 있겠다."





책을 덮고.png illust by 예연<어쩌면 나도 행복해질 수 있겠다 - 부제 : 책을 덮고




03

책은 아주 편안하고 평온하게 흘러간다. 그림책에 대해 이야기를 들려주거나, 그림책을 보며 떠올랐던 감정, 경험, 다짐 등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림책과 이어진 그 몽글몽글한 생각은 샤베트가 되기도 하고, 체육시간이 되기도 하고, 할머니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다시 책으로 쓰여 독자들 마음속으로 들어간다.


지나치게 요란하지도, 지나치게 고요하지도 않은 표현들을 보며 서둘러 샤프를 꺼내어 밑줄을 긋지 않을 수 없었다. 예민할 정도로 풍부한 감수성을 가지고 풀어나간 한 권의 그림책 에세이는, 문학도 예술의 한 종류임을 다시금 깨닫게 했다.


가끔은 그림책의 모습이 담긴 사진이 책 속에 등장하곤 하는데, 가끔은 그것이 찍힌 배경이 탁자가 되기도 하고, 풀밭이 되기도 한다. 그러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빛의 흔적도 발견할 수 있는데, 저자가 어떤 바램과 감정을 가지고 그 순간의 분위기를 기록하고자 했을지 곰곰이 생각해보는 것도 또 하나의 재미로 다가온다.




04

책의 마지막에 소개되어 있는 프롤로그에는 저자가 이 책에 얼마나 애정에 쏟았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어떤 말을 하고 어떤 말을 남겨 할지 알 수 없었다는 말. 뒤척이는 새벽에 설핏 든 잠 속에서 나는 내 그림책을 따라 지난 시간을 여행했다는 말.


어쩌면 지구상에 존재하는 '창작자'는 다 비슷한 마음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 싶다. 나도 저녁 늦게까지 그림을 그리고 화실을 나오는 그 순간에도, 차마 발걸음이 떼어지지 않아 그림을 사진을 찍어서 집에 가는 길 내내 들여다보았으니까.




05

이렇게 편안한 책을 읽으면서도, 책을 덮는 순간까지 내 머릿속은 이런저런 생각으로 가득 찼다. 우선, 저자가 너무나 부러웠다. 그녀는 그림책을 통해 자신이 행복해진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흔히 말하는 '엄마'의 역할을 성실히 수행하면서도, 그림책을 놓지 않는다.


자신이 무엇을 할 때 가장 행복한 지 알고, 자신의 상황에 충실하면서 그것을 계속 이어나가는 것. 그게 바로 자신을 위한 진정한 삶이 아닐까 싶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알아내기, 그리고 그것을 끝까지 사랑하기. 어렵겠지만 우리가 행복해지기 위해 평생에 걸쳐서라도 알아야 할 우리 마음속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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