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워킹홀리데이를 꿈꾸게 된 건 23살 봄이었다.
2020년 1월에 미국으로 연수교환을 갔다가 코로나 시기와 맞물려 2개월 만에 강제 귀국을 당한 뒤, 해외살이에 대한 로망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그래, 나 워킹홀리데이를 가고 만다!"
그렇게 24살 스타트업 D사, 25살에 마케팅 J사, 26살에 매거진 K사를 거쳐 드디어 27살.
돈을 모으고 용기를 내고 워킹홀리데이 항공편을 끊는 데까지 무려 3년이 걸렸다.
25살에 J사를 퇴사하고 캐나다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발급받았다. 하지만 캐나다에 대한 정보를 찾으면 찾을수록 (내 기준)괴담만 나오는 것이었다.
캘거리: 영하 30도까지 떨어짐
밴쿠버: 레인쿠버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비가 많이 옴+집값이 어마어마함
나는 날씨 영향을 굉장히 많이 받는 편이고 돈 걱정하면서 일상을 보내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오랜 고민 끝에 캐나다를 포기했다.
그리고 날씨 따뜻하고 돈도 많이 벌 수 있는 호주 비자를 발급받게 되었다.
워킹홀리데이 출국일이 늦어질수록 주변 사람들의 걱정 어린 조언을 피할 수 없었다.
"1년 갔다 오면 커리어 공백될 수도 있어."
"1년 있다가 돌아와도 28살이라서 완전 취업 마지노선이야."
나는 꿈 많은 27살인데.... 워킹홀리데이가 커리어에 지장을 줄 수 있다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흔들리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그래서 내 오랜 꿈인 워킹홀리데이를 가서도 커리어를 유지할 수 있는 방법들을 생각해 냈다.
(참 우리나라 살기 팍팍합니다8ㅅ8 그동안 열심히 일했는데 좀 쉬어가면 어때요? 하지만 저는 다시 귀국할 예정이기 때문에 포폴에 넣을 커리어 유지 방법 3가지를 실행할 예정이에요!)
커리어도 유지하며 호주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것들을 알차게 하면서 갭 이어(Gap Year)를 보낼 예정이다.
이제 어느 정도 마음 정리가 돼서 이 이야기를 다룰 수 있게 됐다.
워킹홀리데이로 출국하기로 결심했을 때 내 나이는 27살이었다. 전애인 S의 나이는 31살이었다. 시기상 결혼 얘기가 안 나올 수 없는 나이였다. 늦은 밤 드라이브를 마치고 차 안에서 S가 내게 결혼에 대해 물었다. 나는 확신을 줄 수 없다고 답했다.
"당장 내 미래도 모르겠어! 결혼은 아직 멀게 느껴져."
처음으로 결혼과 미래에 대해 얼굴을 마주 보며 진중하게 대화한 날이었고, 앞으로 더 많은 대화가 있을 줄 알았는데 S에게는 그날이 확신이 필요한 최후의 날이었던 모양이었다. 그 문답을 끝으로 여러 사건이 생기고 타이밍이 어그러지며 우리는 이별했다.
내가 이별을 받아들인 건, 대면으로 이별한 후 1주가 지난 금요일 저녁이었다. 도저히 회사 사무실에 있을 수가 없어서 믿을 수 있는 회사 동료분을 화장실로 불렀다. 입을 열면 울 것 같아 멍하게 동료분을 봤는데, 동료분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왜요? 무슨 일이에요?"하고 물으며 내 손을 잡았다. 그때 심장에 피가 확 쏠리는 기분이 들면서 온몸의 모든 장기가 꿈틀거리는 것 같은 비현실적인 통증을 느꼈다. 동료분은 정말 놀란 눈치였다.
"저 봐요, 괜찮아요? 아파요? 무슨 일인지 말해 보세요. 일 많이 남았어요? 그냥 집에 가요."
짐을 얼추 챙겨 회사 밖으로 나왔다. 회사 입구 앞에 서서 멍하니 바람을 쐬면서 서있었다.
........ 집까지 어떻게 가지?
지하철을 탈 수가 없어서 1시간 정도 회사 입구에 그냥 서있었다. 그날의 쌀쌀한 공기, 높은 건물들, 전광판에서 흘러나오던 광고, 바닥이 사라진 기분, 몸에서 느껴지던 진한 열기는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이후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위로받고 사랑받았다. 이별의 아픔이 점점 흐려지며 떠오르는 것들은 소소한 추억이었다. 처음 사랑에 빠진 순간도 아니고 강렬하고 원초적인 경험도 아닌, 조용한 밤거리를 산책했던 기억, 고유한 습관, 시시껄렁한 농담 같은 것들.
우리는 설레는 로맨스 드라마를 꿈꾸며 연애를 시작하지만, 실제 연애는 드라마처럼 90분 16부작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며 일상적으로 지속되는 것이라는 걸 실감했다. 그러므로 일상을 함께 하기 위해서는 같이 나아갈 수 있는 미래가 보여야 한다는 것도 알게 됐다.
퇴사 후 도서관에 앉아서 워킹홀리데이를 비롯한 20대 후반 인생을 맵핑했다. 미래와 비전, 금전을 가지고 마지막 사랑을 해야지. 한 치 앞을 예상할 수 없는 인생 속에서, 영영 변질되지 않을 따뜻한 밥 한 덩이 같은 안정적인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20대 후반, 다사다난한 워킹홀리데이 준비 과정을 거의 끝마치고 드디어 출국합니다. 너무 힘든 여정이었어서 워킹홀리데이까지 다녀오면 미련 없이 만족스럽게 20대를 마무리할 수 있을 것 같아요! 20대 후반~30살 막차 타시는 분들 중 걱정 가득한 분들! 저도 결국 떠납니다. 함께해요!
Coming S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