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이 이름을 발견한 것은 바로 오늘 아침의 일이다.
조용한 일요일 오전. 사무실에 일찍 나와 일본카피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메모해 두었던 카피의 광고 원본 이미지를 찾으려고 여름에 중고로 산 2009년 카피연감을 꺼냈다가 우연히 책 밑단에 찍힌 스탬프와 도장이 눈에 들어 온 것이다.
분쿄대학(文教大学) 쇼난(湘南)캠퍼스 도서관에 있던 책이란다. 검색해 보니 분쿄대학은 동경을 포함한 3개의 캠퍼스가 있는데, 쇼난캠퍼스는 가나가와현에 있다고 한다. 도쿄에서 서쪽으로 약 60km, 서울에서 약 1,000km 거리에 있는 이 학교는 태평양으로 이어지는 바닷가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다. 구글링을 해보니 금세 이 학교의 사진들이 나타난다.
클릭 몇 번을 더 하니, 도서관 이미지가 모니터 앞에 떠오른다. 브라우저의 화살표를 눌러서 내가 현장에 있는 것 처럼 공간을 이동하며 도서관 안을 둘러볼 수 있다. 연감류의 참고도서들이 꽂혀있는 코너도 찾았다.
아, 이 책이 있던 곳이 여기구나.
빨간 벽돌 건물의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있는 도서관은, 그리 넓지는 않지만 깔끔하게 정돈된 전형적인 학교 도서관이다. 멋진 미래를 꿈꾸던 젊음들이 지식의 영토를 넓혀가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카피연감이 원래 있던 곳을 알게 되니, 더 이상 이 책은 30분 전에 꺼내 든 그 책이 아니다. 책장에 꽂혀있던 여러 장서들 중 하나에 불과했던 이 두꺼운 연감은, 이제 나에게 출생의 비밀을 알려준 특별한 관계가 된 것 같다.
내가 지금 보고 있는 책은 몇 년 전까지 일본의 바닷가 도시에 있는 대학 도서관에서 광고를 공부하던 대학생들이 보던 책이다. 반짝이는 눈으로 광고자료를 찾으며, 아이디어 발상법과 카피라이팅을 연습하는 학생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불현듯, <너의 이름은>이나 <시그널>처럼 어느 매개체를 두고 시공간을 초월해 누군가에게 닿아있는 묘한 기분이 든다. 이 책을 매개로 12년 전쯤의 일본의 젊은 예비광고인과 연결되어, 광고와 예술과 인생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상상을 해본다. 휴일 아침에 우연히 발견한 인장하나가, 나를 애니메이션의 주인공으로 만들어준다.
한편으로는, 광고카피에 대한 자료가 왜 도서관에 계속 머무르지 못하고, 중고책방으로 흘러오게 되었을지 아쉬운 마음도 든다. 이렇게 두꺼운 광고 자료가 이제 대학에서 필요 없게 된 건 아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