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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규영 Dec 19. 2022

"미래는 멋대로 전진하지 않는다"

아사히신문 외, 세계 여성의 날 기념 광고 (2021)

2021년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아사히 신문에 15단 전면광고가 게재됐다. 아사히 신문과 교토여자대학 등 여대, 그리고 몇몇 기업과 단체가 함께 게재한 연합광고였다. 사진이나 일러스트 같은 이미지는 없다. 그동안 여성 이슈에 관련된 사건이 있을 때 신문에 나온 헤드라인들만이 모여있다.



일본의 여성문제나 정치, 역사 등에 대한 지식이 없어서 깊이 있게 내용을 알 수는 없다. 하지만 헤드라인들만 봐도 일본에서도 여성인권 관련 이슈가 뉴스가 되어 왔고, 오랜 시간을 걸쳐 조금씩 전진해 온 것을 알 수 있다. 미국의 여성 참정권 투쟁에 대한 것도 보이고, 대학에서 남녀 공학이 개시되었다는 소식도 보인다.  남녀평등에 대한 입법 관련 뉴스도 여럿 보인다.


광고 아래쪽에 배치된 바디 카피에는 굵직굵직한 여성운동사의 사건들이 소개된다.


1857년 3월. 미국에서 여성에 의한 노동환경 시위가 열렸다.

1913년 8월. 일본에서 여성 최초의 여대생이 탄생했다.

1946년 4월. 일본에서 최초로 여성의 참정권이 행사됐다.

1960년 7월, 일본에서 최초로 여성 각료가 탄생했다.

1986년 4월. 남녀고용기회균등법이 시행됐다.

2020년 5월. 일본은행 138년사에 처음으로 여성 이사가 등장했다.

2021년 1월. 미국에서 최초의 여성 부통령이 탄생했다.

2021년 2월. 경단련 부회장에 최초로 여성이 취임 내정됐다.



그리고 다음 카피가 이어진다.


塗り替えられてきた「常識」 ひっくり返った「慣習」。

女性たちの勇気と情熱により生まれた

奇跡の上に、私たちは立っています。

それでも、まだまだ解決すべき課題は山積みです。


덧칠해져 온 상식, 뒤집힌 관습.

여성들의 용기와 열정에 의해 탄생한 기적 위에 우리는 서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 해결되지 않은 과제가 산적해있습니다.



그리고 '남녀 임금격차 해소', '일본 최초의 여성 총리 탄생'  같은 헤드라인들이 신문을 장식할 날을 향해 연대하자는 내용이 적혀있다.


이 광고에서 눈길을 가장 먼저 끄는 것은 그간의 헤드라인들로 만들어진 메인 이미지이다. 어떠한 기교도 없이 신문기사의 제목을 배열한 것으로 여성운동사의 흐름이 느껴진다. 그 이미지 위에 선택된 한 줄의 카피가 그 의미를 더욱 깊이 있게 만들어준다. 언젠가 아시히 신문의 실제 표제로 쓰인 적이 있는 문장이라고  한다.


 未来は 勝手に進まない。
進めてきた 人たちがいる。

미래는 멋대로 전진하지 않는다.
나아가게 해온 사람들이 있다.



남자와 여자는 평등하다. 이 평범한 한마디를 상식으로 만들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희생이 있었을 것인가. 그렇게 쟁취한 상식이 공고하게 구축된 관습의 벽을 완전히 넘기까지 또 얼마나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인가.


여성문제뿐이 아니다.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 차별받지 말아야 한다. 모두가 동등한 민주적 권리를 갖는다. 국가의 주인은 국민이다. 지금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상식과 권리는 가만히 앉아서 우연히 손에 쥐어진 것들이 아니다. 헌신과 희생으로 이 간단한 문장을 상식으로 만들어 온 사람들에게 우리는 빚을 지고 있다. 그리고 우리가 깨어있지 않으면 언제고 부서져 과거로 되돌아갈지 모른다는 것을 많은 사례들을 통해 느끼고 있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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