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윤복의 풍속화를 중심으로
풍속화는 인간의 사회생활, 일상의 풍습을 그린 것으로, “옛적부터 사회에 시행되어 온 의 ․ 식 · 주, 그 밖의 모든 생활에 관한 관습을 나타낸 그림”이다.
한 폭의 정경情景에서 그 당시 사람들의 삶에 얽힌 이야기와 신분, 복식, 생활풍습 등 사회상과 문화적 정황情況 등을 구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
무엇보다 풍속화는 인간 생활의 여러 단면이 사실적으로 표현해야 하므로 사실성과 함께 시대적 기록성이 있다. 학자에 따라 조선 시대 후기 풍속화의 특징은 "한국적 소재와 주제를 독창적인 기법으로 다룬 서민 예술이라는 점, 실학사상의 실증적인 사고에 바탕을 둔 민족적 리얼리즘 예술이라는 점, 유교주의 사회체제에 억눌렸던 인간성의 긍정이라는 점"을 꼽기도 한다.
조선 후기에 풍속화는 사인풍(士人風)과 화원풍(畵員風)의 화가에 의해 전개되었다고 볼 수 있다. 사인풍 화가들은 서보書譜나 화본畵本을 모작한 데 비해 화인풍은 서민의 일상생활을 주로 나타내는 그림으로 생활의 주변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고 있다. 화원풍의 대표적 작가는 김홍도金弘道, 신윤복申潤福, 김득신金得臣 등이 있다.
이들 중 특히 신윤복은 여속女俗을 나타낸 속화로써 사회에서 금기로 여기던 것을 대담하게 표현하였다.
남녀의 애정을 노골적으로 나타냄으로써 유교 중심의 사회에 반발하는 의미를 담는 등 한량과 기녀를 중심으로 한 귀족의 향락적인 생활을 묘사하였다. 김홍도의 풍속화는 주로 농민이나 수공업자 등 서민의 일상생활 단면을 묘사한 것이 많다.
신윤복의 풍속화는 인간적인 본성을 사실적으로 표현하였으며, 그의 작품세계는 "도회적인 세련을 익힌 젊은 남녀의 성과 애정실태", 남녀 복식의 형태와 색감, 착장모습을 구체적으로 나타내고 있어 그 당시 여인들의 옷매무새를 살펴보고자 한다.
<그림 1> 미인도 <그림 2> 거문고 줄 고르기
매무새의 사전적 의미는 '옷, 머리 따위를 수습하여 입거나 손질한 모양새를 뜻한다.
저고리 같은 것을 매고, 여미는 뒷단속을 '매무시'라 하며, 매무시한 뒤의 모양새난 맵시를 매무새라 한다.
신윤복의 풍속화에 나타난 여인들의 옷매무새는 나름의 스타일이 있다.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전형적인 상박하후(上薄下厚)의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풍속화 속 여인들의 옷매무새는 허리를 중심으로 상체 부분의 저고리는 폭이 좁고 길이가 짧다.
하체 부분은 가슴 가리개 허리띠를 이용하여 최대한 가슴을 압박하고, 치마허리에 풍성한 주름을 잡아 둔부를 과장되게 부풀린 형태이다.
이러한 실루엣을 연출하려면 속옷을 여러 벌 겹쳐 입어야 가능했을 것이다.
가슴을 보이지 않게 칭칭 동여맨 가리개는, 오히려 시선을 이끌어 도드라져 보이고,
겨드랑이 아래로 흘러내린 저고리 속고름은 겉고름보다 선명한 붉은색이다.
미인도와 거문도 줄 고르기 등에 보이는 여인들의 옷매무새는 은폐와 노출사이를 넘나드는 무심한 관능미가 엿보인다.
풍속화 속 여인들의 옷매무새는 요즘 현대의 A라인 한복 매무새와 다른 모습이다.
저고리는 가슴가리개와 겨드랑이 살이 보일 정도로 짧고, 저고리의 고름의 크기는 겉고름과 안 고름의 별 차이가 없으나, 자색인 겉고름에 비해 안 고름이 더 화려한 다홍색이다.
양반 부녀자들에게만 허용되었다는 곁마기가 달린 삼회장저고리를 입고 서민들은 손쉽게 접할 수 없는 화려한 노리개나 가체를 장식한 모습으로 묘사되어 있다.
저고리 아래로 드러난 가리개용 허리띠로 가슴을 밀착시킨 상의와 과장되게 부풀린 하의의 실루엣은 여성의 신체 곡선을 강조하는 듯한 옷매무새이다
<그림 2> 거문고 줄 고르기에 나타난 여인들의 모습에도, 같은 매무새가 보인다.
가리개용 허리띠는 은폐를 위한 용도로 쓰였지만, 가슴선이 드러나며, 상체를 압박하였고, 치마 밑에는 속옷을 겹겹이 껴입어 하체를 풍성하게 부풀려 둔부가 마치 항아리를 품은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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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복식에 가식 되는 장식은 성적인 매력을 강조하거나 은폐를 위해 과장이나 억압의 방법으로 표현되고, 도덕적인 윤리를 강조한 사회에서는 성적 부위에 압박을 가한다.
이러한 점으로 미루어 볼 때, 가슴 부위에 보이는 유별난 압박과 과장되게 껴입은 치마는 그 당시 유교 사회에서 여성에게 ‘정숙’을 여성의 부도婦道로서 강요되었던 유교 윤리의식이 반영된 옷매무새이다.
이와 같은 여성 복식의 착장 방식은 <그림 3> 어물 장수에서도 볼 수 있으나 젊은 여인과 마주 보고 있는 나이 든 여인의 매무새는 사뭇 다르다.
<그림 4> 문종심사聞鐘尋寺, <그림 5> 연소답청에 말에 탄 여인의 모습 등 신윤복 풍속화에 등장하는 기녀, 일반 여인들, 반가의 여인들의 모습도 같은 차림으로 보아 당시의 보편적인 차림새로 보인다.
<그림 3> 어물장수 <그림 4> 문종심사
<그림 5> 연소답청
상박하후의 옷매무새는 당시의 김홍도의 풍속화 <그림 6> 우물가, <그림 7> 평생도 중 초도호연初度弧莚등에서도 보인다. 그림 속 일반 부녀들의 모습, 양반부녀, 모습도 가슴가리개로 상체를 압박하고, 둔부를 과장되게 부풀린 모습이다.
<그림 6> 우물가 <그림 7> 초도호연
신윤복 풍속화 속 여인들의 옷매무새는 대체로 저고리 아래로 드러난 가슴가리개, 속고름, 들추어진 치마 밑으로 단속곳과 속바지 차림이다.
조선시대 여인의 폐쇄적인 복장과는 반대로 오히려 노출시킴으로써 선정적인 아름다움을 강조한 듯 보인다. 이러한 상박하후의 옷매무새는 여인들의 신분에 관계없이 표현된 것을 볼 때 이러한 스타일이 당시에 유행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스타일에 대해 시오노 나나미는 『남자들에게』책에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누가 보아도 그런 줄 아는 것이 스타일이다. 스타일은 삶이 녹아든 매혹적인 습관이자 지혜로운 취향의 발현이다.”라고 썼다.
꽉 조이는 저고리가 입고 벗기가 어려워 소매를 뜯어서 벗을 정도로 불편했지만, 젊은 여인들의 전유물로 자리 잡을 수 있는 배경에는 그 불편을 감수할 만큼 당 시대 여인들은 미적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수단으로써 활용되었던 것이다.
당시에 사대부가의 이덕무는 짧고 꽉 끼는 저고리에 대해『청장관전서』사소절士小節에
“새 옷을 입으려면 옷소매에 팔을 꿰기가 몹시 어려워 한 번 팔을 구부리기만 하면 솔기가 터지고, 심하면 입고서 얼마 안 되어 팔의 기운이 돌지 않고, 팽창하여 벗기가 어려워서 옷소매를 째고서야 벗게 되니 어찌 그리 요사스러운가?”라고 통탄한 기록을 볼 수 있다.
그러면서도 그 말미에는 “대체로 의복을 장식하는 것이 그 시대의 양식樣式이다. 이 양식은 다 창기들이 여우같이 아름답게 하려는 데서 나온 것인데 세속 남자들이 그 아름다움에 빠져 이를 깨닫지 못하고는 그 아내나 첩에게 권하여 이를 본받게 해서 서로 전하여 익히게 된다.”라고 적었다.
여인들은 정숙이라는 부도婦道로 억압하는 시대적 가치에 부응하느라, 신체를 가리면서도 오히려 신체부 위를 강조함으로써 여성의 에로티시즘이 발현된 것으로 해석된다.
어느 시대든 특정 스타일의 옷이 대중의 인정을 받으려면, 시대를 풍미하는 문화와 사회적 가치 등을 담고 있어야 한다. 그 유행을 지지하고 채택하는 공통된 정서로 묶인 집단의 협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옷을 둘러싼 시각적 구조변화는 곧 인식의 변화를 의미하기에 변화를 열망하는 집단의 소비가 밑받침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처럼 그 시대를 대표하는 스타일은 새로운 트렌드를 체화화 하는 과정에서 동질감을 느끼는 재미가 있어
그에 따르는 불편함을 감수하면서도 따르는 경향이 있어 보인다.
일반적으로 복식에 더해지는 장식은 성적 매력의 강조나 은폐를 위한 과장, 억압의 방법으로 표현된다.
조선시대처럼 도덕적인 윤리를 강요하는 사회에서 성적 부위에 유별난 압박을 가한다는 점을 미루어 볼 때,
여인들의 가슴압박과 둔부를 과장되게 부풀려 풍성하게 보이도록 연출하는 옷매무새는 이를 방증傍證
하는 것으로 보인다.
*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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