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케이버리KAVORY Nov 03. 2023

말짱 도루묵이라 무시하지 마라.

을지로 을지 오뎅

공들여 노력한 일이 아무런 소득 없이 헛수고가 되었을 때, '말짱 도루묵'이란 표현을 쓴다.

도루묵이란 이름의 뜻과 어원에 대한 설이 몇 가지가 있다.


조선의 14대 임금 선조가 피난길에 목어(木魚)를 맛있게 먹은 뒤에,

'이 생선을 은어(銀魚)라고 불러라.' 명했다.

훗날 그 맛이 그리워 다시 맛보았는데 실망스러워 다시 목어(木魚)라 부르라했고,

그래서 환목어(還木魚)라 불려 '도로 목어가 되었다.'는 뜻에서 유래되어

오늘날의 도루묵이 되었다는 설이 가장 유명한 설이다.

 선조가 피난을 간 곳은 '공주'이며 도루묵은

동해에서 잡히는 생선이라

이 설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 남아있다고 한다.


도루묵은 산란기인 11월 중순에서 12월까지 알을 배었을 때 대량으로 잡아

냉동시킨 후 1년 내내 알배기로 즐기고 있다.

몸통에 비해 알집이 매우 큰 편이라 특히 구워냈을 때 그 비주얼이 예사롭지 않다.

바로 그 알배기 도루묵을 즐기기 위해 을지 오뎅을 찾았다.


을지로에 위치한 노포 을지 오뎅은 평일 오후 3시, 주말 오후 2시부터 문을 여는

힙지로 낮술의 성지이자 도루묵 구이 맛집으로 유명하다.



간판에서 알 수 있듯이 2003년에 오픈을 해 올해로 20년째 영업 중인 곳.

사실 외적인 느낌은 30년... 혹은 40년이 되어 보이기도 한다.



내부는 오뎅바로 된 좌석과 테이블 좌석이 있고 다 해서 20석 정도의 규모로 작은 매장이다.

그래서 오후 3시 오픈임에도 불구하고 오픈런을 해야지만 먹을 수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오뎅바 좌석에는 오뎅들이 몇 가지 꽂혀있고, 자리에 앉으면 인원수대로 쪽파가 담긴 국그릇, 앞접시, 오뎅 간장, 단무지를 내주신다.


빈 국그릇에는 국물로 오뎅 국물을 담아 먹으면 된다. 이름도 을지 오뎅이고 오뎅바로 되어있긴 하지만 이 집을 찾는 이유는 사실 따로 있다.


바로 앞서 설명했던 '알배기 도루묵'을 먹기 위함이다. 도루묵 구이(15,000원)를 주문하면 잘 구운 도루 4마리가 나온다.


모든 생선이 그렇듯 산란기의 생선은 모든 영양분이 알로 집중되기 때문에 알이 맛있는 만큼 살 맛이 약해지고, 산란을 마치면 다시 살 맛이 차오른다.

그래서 알배기 도루묵은 '알맛'으로 먹는 게 맞고, 그만큼 살 맛은 크게 의미가 없다고 볼 수 있다.


주문한 도루묵이 구워지는 동안은 앞에 있는 오뎅을 먹으며 소주를 곁들인다.


노릇노릇 구워진 도루묵은 알을 가득 품다 못해 쏟아내고 있다.

생선 알을 익혀 먹을 때의 매력은 뭐니 뭐니 해도 톡톡 터지는 식감과 씹을수록 느껴지는 고소함이다.

힘겨운 젓가락질로 알을 떼어 소주와 곁들이다 보면 어느새 살만 남는다.

바짝 구워진 도루묵의 살 맛은 마치 노가리와 같아서 맛보다는 풍미로 즐기는 술안주가 된다.

도루묵 4마리를 건장한 남자 2명이서 나눠 먹다 보니 순식간에 사라졌다.


결국 못 참고 시킨 다음 메뉴는 황태 양념 구이(14,000원).

황태 양념 구이의 양념은 좋았는데 황태가 조금 퍽퍽해 아쉬웠다.

황태 구이는 보통 굽기 전에 소금, 설탕물에 염지를 하며 불려 굽는다.

촉촉한 황태구이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다소 아쉬운 메뉴였다.


역시 을지 오뎅은 도루묵이 정답이라 할 수 있겠다.


북태평양의 차갑고 깊은 바다를 좋아하는 도루묵은 일본 북해도 해역과 오호츠크해 인근에서 서식한다.

산란기가 되면 해초가 많은 동해안 인근으로 옮겨와 해초에 알을 붙여 번식을 한다.

지구 온난화로 인한 해수 온도 상승은 도루묵의 생태계에도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우리가 언제까지 도루묵을 맘 편히 즐길 수 있을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된다.

작지만 소중한 즐거움을 잃어버릴 수도 있는 것이다.


이제 더 이상 말짱 도루묵이라 무시하지 마라.

그들은 우리에게 모든 것을 내주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