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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르메스 May 30. 2018

아마추어에겐 현대미술이 오히려 더 쉽다(에필로그)

나는 아마추어이다.

[에필로그]

나는 아마추어이다.

미술사를 전공한 적도 없고 미술평론을 전공한 적도 없다. 오디오 평론을 하다가 우연히 알게 된 작가가 전시회를 한다기에 인터넷 취미 사이트에 전시회를 소개하는 글을 올린 것이 미술에 대한 글을 쓰게 된 시초이다.

본격적으로 미술에 대한 글을 쓰게 된 계기는 나 같은 아마추어가 보기에도 뻔한 가짜를 진품이라고 우기는 일부 감정사에게 대한 분노 때문이기도 하고 현란한 글 솜씨로 작품을 더 어렵게 표현하여 독자를 헷갈리게 하는 일부 평론가에 대한 의분을 느꼈기 때문이다. 

고백할 것은 일부 검색의 도움을 받기도 했지만 주로 기억에 의지하여 글을 썼기 때문에 제목을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한 경우가 있고 기억을 조작하여 내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방향으로 작품을 변형 시킬 수 있다. 이런 경우 정확하지 못한 정보를 제공한데 대해 진심으로 송구하게 생각한다.

세 가지가 찜찜한데 

첫째, 뒤샹의‘샘’이 소변기를 바로 설치했다고 기억하는데 얼마 전TV 교양프로그램에서 모교수가 뒤샹의 샘이 소변기를 거꾸로 설치했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논리적으로나 미학적으로 볼 때 바로 세우는 게 맞는데 교수가 거꾸로 세웠다고 하니 헷갈린다. 거꾸로 세워도 제목과 이미지의 대조미는 사라지지 않으나 바로 세우는 것이 대조미가 더 풍부하다. 다다적 반항정신에 충실하려고 공산품을 전시하긴 했지만 뒤샹이 작가인 이상 미학적 요소를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공산품의 깔끔한 실용미에 반한 뒤샹이 소변기의 실용미가 안보이게 거꾸로 세울 리가 없다. 그 교수는 아마 다다이즘의 허무주의와 저항정신을 강조하다가 뒤샹이 예술가인 걸 깜박하고 실수한 게 아닌가 생각한다. 그 증거로 와인 병 꽂이 같은 공산품을 한 번도 거꾸로 설치한 적이 없음을 보면 알 것이다.

둘째, 데미안 허스트의 다이아몬드 해골 미간에 루비불꽃 모양이었는지 다이아몬드 날개모양이었는지 헷갈린다. 처음 본 것은 불꽃 문양이었는데 두 번째 본 것은 날개모양이었다. 데미안 허스트가 다이아몬드 해골을 두 번 만들었다면 말이 되는데 해골의 신원까지 밝혀진 마당에 다이아몬드 해골을 두 번 만들었다는 것은 믿기 어렵다. 다른 사람이 다이아몬드 해골을 모방해서 만들었다면 말이 된다. 불꽃이나 날개나 움직이는 건 마찬가지기 때문에 해석에 큰 차이는 없다. 날개는 인류의 꿈인 날고 싶은 욕망을 나타내기 때문에 해골도 한 때 이상과 꿈을 추구했던 사람이었던 걸 뜻하기도 하고 한 쪽 날개로 날 수 없으니까 이상을 추구하다가 좌절을 겪은 인간을 상징하기도 한다.

셋째, 예수와 열 두 제자를 나타내는 작품에서 두상의 고개각도를 달리해서 열두 가지 고뇌를 표현한다고 했는데 요즘 자꾸 정면을 바라보는 똑같은 두상이 촛불을 동그랗게 에워싸고 있는 장면이 떠오른다. 정면을 본다는 건 바로 앞만 본다는 뜻으로 세속적인 고뇌를 한다는 뜻도 된다. 이렇게  배치하면 마지막 밤의 엄숙함은 배가 되고 예수의 고독은 더 진해질 것이다. 

지금까지 글을 쓰면서 일본 번역 투 문장이나 영어번역 투 문장을 쓰지 않으려고 조심했다. 일본 번역 투 문장을 피하려면 가급적이란 단어나 에, 의라는 표현을 쓰지 않으면 된다. 영어번역 투 문장은 명사를 세 번 연속해서 사용하거나 수동태를 남발하면 된다. 명사가 연속해서 나오면 조사를 붙였고 될 수 있으면 능동태로 표현하려했다. ‘추정되다’와‘추정하다’ 사이에 잠깐 고민했는데 필자가 가짜로 추정하는 것이어서 ‘추정하다’로 일관되게 사용하였다. 수동태로 쓰면 판단주체가 모호하여 책임을 회피하는 비겁한 문장이 되기 쉽다. ‘좋다’ 보다 ‘좋은 것 같다’는 말을 더 많이 쓰는 자신감 부족시대에 나부터도 자신감 있게 능동태 문장을 써야겠다고 생각을 했다.

대학을 졸업할 무렵 친구가 운영하는 화실을 방문했는데 차가 나올 동안 심심해서 비너스 상을 스케치 했다. 친구가 이 스케치를 보더니 뭉크 같다는 촌평을 했다. 그 당시 나의 정신 상태가 뭉크같이 불안정했던 모양이다. 불안정한 정신 상태가 대학교 일학년 때 최고조였고 오해가 겹쳐 차마 입에 담기 힘든 욕을 주변 사람에게 했다. 가장 후회스러운 일이고 깊이 사죄드린다. 

어줍잖은 정의감과 무지와 이기심으로 남의 몸과 마음에 상처를 준 것을 깊이 후회하고 반성한다. 고마운 사람도 참 많은데 우선 아내에게 감사드린다. 눈짓만으로 내가 할 말을 알아채는 능력이 없었다면 감히 책을 쓸 엄두도 못 내었을 것이다. 헌신적인 간호를 해 준 심여사와 처제에게 감사드린다. 간호를 도와 준 아들과 딸에게도 감사하다. 아내에게 끊임없이 용기를 불어넣어 준  장인, 장모님과 처남들께 감사드리고 가끔 경과를 지켜 본 형과 형수와 어머니의 기도와 동생들께 감사드린다. 무엇보다 나의 미의식을 세련시켜 준 진영섭 작가, 이세훈 교수, 조옥희 화백 및 세상의 모든 작가들에게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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