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를 끄고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여전히 한창 뭔가를 하는 중인 사람들에게 "저 먼저 들어가 보겠습니다."하고 나오려는데 옆자리 후배가 나 일어나는 타이밍에 맞춰 후다닥 컴퓨터를 끄면서 같이 일어난다.
엘베를 기다리고 있는데 후배가 옆에 오더니 하는 말.
"선배님, 초심 잃었어요? 왜 이렇게 늦게 가는 거예요?"
평소보다 늦게 나왔더니 지하철이 비교적 한산하다. 날씨가 선선하니 좋아서 조금 천천히 걸었더니 평소보다 집에 가는 시간이 더 걸린 거 같기도 하다.
집에 도착하니 아내는 딸 밥을 먹이고 있었다. 낮에 비가 와서 강아지 산책을 못 시켰다고 한다. 가방 내려놓자마자 산책시킬 준비를 하는데 아내가 시계를 보더니 하는 말.
"오늘은 좀 늦게까지 일했나 봐?"
진실은.
아내가 "오늘은 좀 늦게까지 일했나 봐?"라고 말한 시각 저녁 7시 20분.
사무실에서 집까지 걸린 시간 약 50분.
고로 내가 회사를 나온 시간이자 후배에게 초심을 잃었냐며 힐책(?)을 받은 시각 6시 30분.
안 그래도 요즘 들어 퇴근 시간이 10-20분 습관적으로 늦어지는 게 거슬리기 시작하고 있었다. 복직하면서 했던 여러 다짐 중 큰 형님 격 다짐인 '1분도 야근 안 하기'가 조금씩 지켜지는 거 같지 않아 야근에 대한 경계가 게을러지지 않았나 반성을 하려던 참이었는데, 30분 더 일했다고 저런 말 듣는 거 보면, 그래도 '야근 안 하기'에 A+는 아니더라도 A0는 줄 수 있겠다 싶었다.
하지만 30분도 야근은 야근이고, 정해진 근무 시간보다 많이 일한 것도 맞다. 나와의 약속에 엄격해지자. 야근을 위한 변명은 용납하지 않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