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길에 도로 옆 숲 한가운데서 가을 햇살에 태닝을 하는 길냥이 한 마리를 만났다. 옆에서 부스럭거리면 사진을 찍어대는 나는 전혀 의식하지 않은 채 눈을 감은 채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때문인지 고작 고양이 주제지만 뭔가 어마어마한 내공과 의연함 같은 게 느껴졌다. 아닌 게 아니라 그렇게 큰 길냥이는 처음 본 것 같기도 하다. 잘 먹고 다니다 보다.
나는 가을, 정확히 말하면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초겨울 하면 길냥이들이 떠오른다. 길냥이들의 구슬픈 울음소리가 귓가에 아른거리고 특히 갓 태어난 길냥이들이 문득문득 걱정된다.
앞으로 다가올 2-3개월의 추위를 이 불쌍한 것들은 어떻게 견딜고... 하면서 말이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항상 '우리 꼬미는 행복할까'로 이어진다. 우리 집 서열 사슬에서 (거의) 최상위를 차지하고 있는 꼬미를 보면 '넌 다행히 날 만나서 더울 때 시원하고 추울 때 따듯하게 지내는구나. 배고프거나 목마를 걱정도 없이. 네 복이다.'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다가도 한편으로는 날 만나지 않았더라면 꼬미가 누렸을 행복은 뭐가 있을까 생각한다. 다른 건 잘 모르겠지만 이 세상에 태어나 한 번도 짝짓기를 못 하고 죽는 꼬미가 불쌍할 때도 있다.
흔히 길냥이의 평균수명은 3년, 집냥이의 평균수명은 10~15년으로 잡는다. 집냥이가 더 오래 사는 대신 집냥이가 되는 순간 대부분의 경우 중성화 수술을 당한다. 번식 욕구를 유지한 고양이를 키우는 건 현실적으로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스갯소리로 길냥이는 험한 세상에서 살긴 하지만 대신 3년 동안 짧고 굵게 즐기다(?) 갈 수 있다는 말도 있다. 짧고 굵게 즐기다 갈 것이냐, 가늘고 길게 편안하게 갈 것이냐...
이번 가을이 벌써 꼬미와 맞이하는 열두 번째 가을이다. 앞으로 몇 번이나 더 꼬미와 가을을 겪을 수 있을까. 오늘 집에 가는 길에 꼬미가 좋아할 만한 낙엽 몇 개 주워 들어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