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드디어 방학!

퇴직하는 당신에게 바치는 글.

by 빅토 Lee

오늘의 티타임 티


아이들이 방학을 했다.

그래서 티타임을 가질 수가 없었다.


아빠만 찾는 아이들 때문에 한가하게 티를 고르고 사진을 찍고 맛과 향을 음미할 시간이 없었다. 사실 이 글도 아이들에게 서점에서 책 한 권씩을 사서 쥐어준 뒤 겨우 짬을 내어 쓰고 있다.


하지만 매주 목요일에 글을 올리기로 나와 약속했으니 지키려고 한다.




아, 드디어 방학!


인생이라는 학교 7학년 2반

그 문턱에 서서 망설이는 그대여

한 시대의 저뭄도 아니고

그대의 쓸모가 다 한 것도 아닙니다.


그간 쉼 없이 일하고 고생했으니

인생이 그대에게 준 방학이랍니다.


방학이니까 숙제도 있답니다.

많이 읽고 많이 쓰고

많이 걷고 많이 운동하세요.

그리고 그대의 이야기를 그대의 지혜를

사랑하는 이들에게 전해주세요.


그동안 일 때문에, 아이들 때문에, 손주들 때문에

바쁘고 힘들어서 못했던 것 많이 하세요.

오직 그대만을 위해서 그리고 그대와 함께한 아내를 위해서

즐겁고 슬기로운 방학을 보내세요.


훗날 천국에서 숙제검사 있을지도 모르니

미루고 몰아서 하려고 하지 말고

하루하루 감동과 기쁨으로 보내세요.


아, 드디어 방학입니다.




아버지가 퇴직을 결정하셨다.

정확히 말하면 퇴직을 결정당하셨다.


공동 창업주주로 당신이 직접 이름까지 지은 모회사에서 21년, 그 자회사에서 대표이사로 지낸 지 24년. 한 직장에서 40년이 넘게 충성했고 애정했고 최선을 다 했다. 올해 아버지의 회사는 다른 자회사와 통합이 결정되었고 그 누구도 아버지에게 그다음을 이야기해주지 않았다. 남아서 할 역할을 주지도, 그렇다고 감히 떠나라고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아버지는 씁쓸하게 퇴직을 결정했다.


방학은 한시적이다. 개학이 되면 다시 최선을 다해야 한다.

아버지의 퇴직이 영원한 쉼이 되지 않기를 바라고 아버지가 열정적으로 몰입할 꿈을 찾으시기를 바라는 마음에 아버지의 퇴직이 은퇴나 안식이 아닌 방학이기를 소망한다. 우리 아이들은 방학에 아빠만 의지한다. 우리 아버지는 방학에 아들을 의지하도록, 그런 내가 되어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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