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서 나의 자리 찾아가기.
오리엔티 (QGY)를 통해 구입한
동목촌 정산소종 (곡총 고차수 홍차)
Gucong Old Tree Black Tea
오늘은 서양에 홍차로 알려진 차의 원류 그중에서도 근본의 동목촌 정산소종을 마셔보았다.
다만 이 제품은 우리가 흔히 무연정산소종이라고도 하는 훈연향이 없는 정산소종이다.
나는 끈적하고 달달한 몰트향, 군고구마향 같은 게 가장 처음 느껴지고 식으면 버터떡 같은 향이 났다.
오리엔티 상품 페이지에서는 꿀과 흑설탕 그리고 꽃과 과실향이라고 표현했다.
옛날 유럽인들이 처음 이 차를 수입하고 용연향과 같은 과실향의 매력에 빠졌었다고 배웠는데 그래서인지 희미한 과일향이 있다.
아쉬운 점은 이 제품 어디에도 우리는 법을 찾을 수 없어서
조은아 님의 [오늘의 차] (2020, 솜씨컴퍼니)에 나오는 정산소종 우리는 법을 따랐다
5g, 100도에서 20초.
혀 양쪽 끝을 쪼이는, 보통 바디감이라고 부르는 것은 덜해서 부드럽고 끝맛이 살짝 달다. 너무 식혀서 마시면 떫은맛이 더 강하게 느껴진다.
어제는 아버지께서 은퇴 후 처음으로 온종일 집에 계신 날이었다.
에세이를 써보고 싶기도 하고 유튜브를 보고 싶기도 하니 (그렇다면 높은 확률로 거의 유튜브만 보실 것 같긴 한데...) 노트북이 필요하지 않겠냐고 하셔서 장도 볼 겸 겸사겸사 코스트코에 모시고 갔다.
내가 어머니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가전제품, 학용품, 부엌용품 등등을 구경하고 있자니 아버지께서 한마디 하셨다.
"이래 가지고 언제 장 다 보고 갈 거야?"
"엄마, 아빠 혹시 뭐 다른 일정 있으세요?"
"있겠냐? 여보 좀 이런 여유도 즐겨봐요. 어휴. 정말."
대전 코스트코에서 저 품목들은 들어가자마자 있다.
그렇다. 아버지는 코스트코 입점 10분도 안돼서 저 말씀을 하셨더랬다.
얼마 후 지하 1층 식품관에서 무언가를 아련하게 바라보시던 아버지는 다급히 나를 부르셨다.
"아들, 이거 좀 봐봐라."
"........"
아버지가 가리키신 곳에는 전날까지 당신이 대표이사로 출근하셨던 그 회사 냉장제품이 가지런히 진열되어 있었다.
그걸 바라보는 아버지 마음이 어땠을까?
약 5분간 어떻게 제품을 코스트코에 납품하게 되었는지 어떤 공정을 거치는지 설명해 주셨다.
아버지... 저도 알아요... 저 2년간 그 회사 인턴하고 8년간 오리 키워서 납품했었잖아요...라고 속으로만 생각했다. 오늘 본 중에 가장 반짝이는 아버지 눈빛 때문에 그리고 아련한 그 뒷모습 때문에.
46년. 한 업계에서 보낸 시간.
24년, 한 회사에서 대표이사로 보낸 시간.
아버지는 가장 많은 시간을 보냈고, 누구보다 잘 아는 곳을 떠나셨다.
가장인데 가정이 가장 어색할 아버지와 동행이 즐겁기도 하고 서글프기도 했다.
아버지의 퇴직 소식을 들은 주변 사람들이 한 마디씩 했다.
"이제 자네가 가장일세."
"이제 네가 기둥이야."
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는데 그 말이 맞나?
그래서였을까, 퇴직은 아버지가 하셨는데 내가 몸살이 났다.
유리 같은 멘탈에 더 유리 같은 몸인가.
사실 친구들은 아니 대부분의 40대 기혼남들은 이미 가장인데 말이다.
아마도 은연중에 나는 아니라고 생각했었는지도 모르겠다.
너무 든든한 아버지의 존재 때문이었을까. 아버지의 직업 때문이었을까.
팀 운동을 하면 포지셔닝이 중요하다. 적절한 위치선정과 주어진 역할 수행.
진천에 살 때는 배드민턴 동호회를 했었는데 복식 파트너와의 호흡이 중요했다. 코트에서 비는 자리, 콕이 날아 올 방향, 상대편의 자세와 기술에 따른 수비 위치 선정 등등.
인생을 살아가는 것도 이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함께 사는 사람들과의 호흡.
혼자 사는 인생이라고들 하지만 또 혼자서만 살 수도 없는게 이 세상 아닌가.
내가 있어야 할 자리에서 내가 해야 할 일을 하는 것.
어쩌면 인생은 이 두 가지를 알아가고 수행하는 과정일지도 모르겠다.
학업, 취업, 결혼, 이직, 승진, 육아 등등 끊임없이 바뀌는 내 자리를 찾아내고 그곳에서 내가 맡을 역할이 무엇인지 알아내고 최선을 다해 그것을 하는 것. 그게 삶이 아닐까. 우리가 하는 노력들은 모두 그 일부이며 또 그것들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버지는 일단 지금 가정에서 다시 자리를 찾으셔야 할지도 모른다.
스스로 몰입할 어떤 일들을 찾고 집중해야 한다.
휴식도 계획에 따라 운동이나 독서나 여행이나 뭐든지 그랬으면 좋겠다.
그리고 나도 변화되는 우리 가정에 다시 적응해야 한다.
어머니도, 내 아내도, 내 아이들도.
아버지가 퇴직하셔서가 아니라
우리 인생이 끊임없이 움직이고 변하고 성장하기 때문에.
나의 자리를 잘 찾아가자.
그리고 내 옆자리의 그들을 사랑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