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이었다. 가끔 쥐가 나듯 몸이 굳는 경우는 있었지만 거친 숨소리로 발작을 일으킨 적은 없었다. 새벽 2시가 넘어가던 시간, 처음 보는 반려묘의 발작 앞에서 머리가 아득해져 왔다. 초코의 발작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뇌에 보석을 담은 채 태어난 아이. 동년배 형제들보다 유난히 체구가 작았던 그 아이는 매미가 우는 계절, 우리에게 왔다. 나름 집사 경력 4년에 이미 두 고양이를 반려 중이었지만 아픈 아이는 처음이었다. 우선 가족이 된 의미로 새 이름을 선사했다. 오레오, 오치즈, 오초코. 형, 누나와 합을 맞추어 지었다지만 집사의 사심이 드러나는 이름이었다.
몸이 불편한 초코를 돌보는 건 마치 신생아를 보는 듯했다. 배가 고파도, 목이 말라도, 화장실을 가고 싶어도, 모든 건 "먀- 먀- 먀-"로 통용되었다. 목청은 얼마나 높고 좋은지 한 번 울기 시작하면 아이유의 3단 고음이 부럽지 않았다. 다시금 초보집사가 된 기분이었다.
두어 번의 계절이 지나갔다. 아이가 우는 이유를 몰라 발을 동동 구르던 시기도 졸업했다. 초코와 함께 하는 시간이 익숙해질 즈음- 발작은 예고 없이 찾아왔다.
헐떡이는 숨소리, 풀려가는 동공, 빳빳하게 굳은 채 튀어 오르는 몸.. 낯선 모습에 레오, 치즈도 주위를 맴돌았다. 가족의 예상치 못한 상황 앞에선 그 어떤 사전 지식도 무용지물이라는 걸 그때 깨달았다. 한차례 폭풍 같은 시간이 지나고 나면 아이는 축 쳐진 채 얕은 숨을 내쉬었다.
발작은 주로 새벽에 찾아왔다. 1분 남짓 되는 찰나의 시간이었지만 우리에게는 억겁과도 같았다. 초점이 나간 눈은 마치 돌아올 길을 찾지 못해 헤매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행여 아이가 길을 잃을까 밤새 사랑한다, 사랑한다, 속삭여주곤 했다.
지금도 때때로 초코는 모두가 잠든 시간 조용히 혼자만의 외출길을 떠나곤 한다. 몇 번을 겪어도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을 경험. 다만 이제는 불안해하기보다 함께 하는 시간에 감사한다. 한 번 더 눈을 맞추고 한 번 더 사랑한다 되뇌는 이 시간. 어두운 밤도 '함께'이기에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