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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운비 Apr 21. 2022

쑥을 샀다. 그것도 1kg 박스로

쑥 먹고 사람 되려구요


계절의 흐름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제철음식을 좋아한다. 봄이면 파릇한 정취가 묻어나는 봄나물이, 여름이면 뙤약볕 갈증을 풀어주는 여름과일이 떠오른다. 가을이면 알알이 여물어가는 곡식으로 마음을 채우고, 겨울이면 따뜻한 방구석에 앉아 손 끝 노오래질 때까지 귤을 까먹곤 한다.


올봄에도 어김없이 봄나물 생각부터 났다. 달래, 냉이, 두릅, 돌, 취- 종류는 많고도 많지만 그중 유독 쑥내음이 고팠다. 마트에 가니 다른 봄나물은 한 자리씩 차지하고 있는 반면 쑥만 보이질 않았다. 재래시장에서 어렵게 찾은 아이는 상태가 썩 좋지 못했다. 아쉬운 대로 다른 나물을 집어 들려는 순간, 몇 년 전 먹었던 콩가루쑥국이 떠올랐다. 한 술 뜨자마자 입안을 가득 메웠던 쑥향. 그건 흙 한 줌, 그리고 봄 한 줌의 맛이었다. 



결국 난생처음 온라인으로 쑥을 주문했다. 그것도 박스로.






쑥 1키로라니? 감도 오질 않았다. 감자, 양파처럼 무게감 있는 채소도 아니고, 나풀나풀대는 생쑥으로 1키로면 한 달 내내 먹는 거 아닌가? 이럴 땐 손 크다고 고개를 내저으며 쳐다보던 엄마를 닮긴 했구나 싶었다.



생산자 직거래로 주문한 덕에 당일 아침 바로 뜯어 배송이 왔다. 어리디 어린 봄쑥이라 쑥향은 조금 약해도 보드라웠다. 봄을 한가득 선물 받은 기분. 괜히 간질대는 마음에 쑥 1키로를 봉지째 들고 남편 앞에서 춤을 추었다.


 "여보! 쑥 왔어 쑥 먹자! 쑥! 쑥쑥쑥! 쑥! 쑥쑥쑥!"


맞장구 쳐주는 남편 덕에 이래서 결혼했나 웃음이 났다.



첫 메뉴는 와플이었다. 쑥버무리도, 쑥떡도 아닌 쑥와플. 동서양의 만남이랄까? 투박한 국내산 통밀에 친환경 쑥을 한 줌 두 줌 흩뿌려 넣었다. 설탕은 딱 한 스푼만. 직접 빵을 구워본 이라면 알겠지만, 베이킹에서 설탕 한 스푼은 범죄다. 택도 없는 양이지만 쑥내음을 크게 방해하고 싶진 않았다. 우여곡절 끝 완성된 반죽을 10년 가까이 된 와플기에 넣었으니 이제 기다림만 남았다. 난생처음 먹어볼 쑥와플. 두근 반 세근 반.



와플이 익는 데에는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렸다. 노후된 기계라 그런지 어찌나 삐걱대던지. 냄새로는 다 익었는데 도통 와플기가 빵 내놓을 생각을 안 하는 바람에 과하게 구워졌다. 접시에 담으면서 느낀 첫 감상은 아뿔싸 '돌덩이'





 "여보, 이거 사람이 먹을 수는 있는 거지?"

 "그럼~! 1키로 있으니까 사양 말고 먹어^^"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딱딱해 보이는 쑥 와플을 앞에 두고 나란히 앉아 칼질을 하는데 썰리지가 않는 거다. 취식 가능 여부를 확인하는 남편에게 걱정 말라 큰소리를 쳤다. 칼은 던져두고 손으로 집어 들어 한 입 넣는데 와그작- 바삭함 그 자체. 맛있는 음식의 표본이라는 '겉바속촉' 말고 '겉바속바'였다. 안까지 파삭 익어 흡사 과자 같은 느낌이었지만 언제 또 이런 와플을 먹어보겠는가. 생각보다 쑥향은 세지 않았다. 입 안에서 천천히 오물오물 대야 비로소 은은하게 스미는 쑥내음. 이 정도면 첫 시도작치고 나쁘진 않은 것 같아 슥삭 해치웠는데-


뒤돌아보니 날 보며 웃고 있는 쑥 1키로 (빼기 와플용 100그람)

맞다! 나 쑥 박스째 구입했었지!


남은 쑥으로는 또 어떤 음식을 해 먹을까-

배시시 웃음이 새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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