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 가방과의 이별 이야기
‘루이비통’, ‘프라다’, ‘셀린’, ‘로에베’, ‘에트로’….
나를 거쳐 간 명품 가방 브랜드다. 중학교 3학년 때부터 매달 나오던 패션잡지를 즐겨보면서 뭔가 있어 보이는 브랜드 제품에 자연스럽게 관심을 두게 됐다.
처음 가졌던 ‘브랜드’ 가방은 미국산 ‘이스트팩’이라는 백팩이었다. 96년인가 97년 무렵 ‘이스트팩/잔스포츠’라는 미국산 백팩 브랜드가 한창 유행을 했는데, 나도 고등학교 입학하면서 97년에 이스트팩 가방을 사서 잘 메고 다녔다.
그런데 98년에 IMF가 터지고 나라 경제가 어려워지다 보니, 학교에서는 외제품을 이용하지 말자는 캠페인을 벌였고 아침 등굣길에 학생주임이 일일이 가방 검사를 했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어떤 가방을 메고 다니는 것까지 학교에서 간섭했다는 게 참 어이없는 상황이긴 하다.
그때는 가방 앞주머니에 있던 브랜드 태그를 떼야 아침에 등교하면서 걸리지 않았기 때문에 나도 학교에 갈 때는 태그 없는 가방을 메고 갔다. 친구들은 태그를 떼서 버렸는지 태그 없는 가방으로 늘 다녔다. 하지만 나는 버리지 않고 가방 앞주머니에 넣어뒀다가 학교가 끝나고 시내로 놀러 나갈 때는 옷핀으로 태그를 달고 나갔었다. ‘나는 이런 가방을 메고 다니는 사람이야.’라고 그때부터 자랑하고 싶었던 것 같다.
대학생이 되고 나서는 옷도 옷이지만 가방에 많은 신경을 썼다. 인터넷으로 당시 내가 감당할 수 있었던 수준인 2~30만 원 정도로 살 수 있는 명품 가방을 구매해서 들고 다녔다.
그때도 이런 가방을 메고 다니면, 내가 마치 그 브랜드가 된 것 같이 우아하고 멋진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았었다. 친구들이 “오, 그 가방 뭐냐. 예쁘네~” 하고 칭찬하면 나를 칭찬해 주는 듯해서 우쭐했다. “응. 이건 이런 브랜드인데 이탈리아에서 만든 거야.” 하면서 자랑도 했었고, ‘이렇게 유명한 브랜드를 잘 모르다니 패션 센스가 제로군.’ 하면서 속으로 은근히 무시하기도 했었다. 패션에 관심이 없으면 잘 모를 수도 있는데도 이런 걸 모르는 사람들은 센스가 없고 나랑 잘 어울릴 수 없다고 생각했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100만 원이 넘는 가방을 처음 구매해 봤다. 사회생활을 막 시작하던 당시엔 당당하고 멋진 사회인이 되고 싶었다. 근데 내가 그때 생각하던 ‘당당하고 멋진’ 사회인의 시작은 명품 브랜드 가방과 카드지갑이었다.
월급이 얼마 안 됐는데도 카드 할부로 100만 원 정도 되는 넘는 가방을 구매했다. 그런데 가죽이라 무거워서 그런지 별로 잘 안 들고 다니게 됐다. 게다가 날씨가 별로 안 좋은 날에는 가방에 눈이나 비 한 방울이라도 묻을까, 가방을 상전처럼 모시고 다녀야 하는 점이 불편했다.
그리고 패션 잡지나 TV 드라마, 영화에서 나오는 연예인들을 보면 옷마다 스타일을 맞춰서 가방을 바꿔서 들고 다니지 않나. 이 옷에는 이런 가방, 저 옷에는 다른 가방을 맞춰 들기 위해서 숄더백, 토트백, 핸드백 등등 여러 종류를 사야 했다.
처음에는 그나마 저렴한 가격대의 명품 브랜드를 구매해서 만족스럽게 썼다. 나중에 돈을 더 벌게 되니 더 비싸고 좋은 가방이 눈에 들어오게 되고, 그것보다 저렴한 건 눈에도 들어오지 않고 뭔가 부족해 보였다.
쓰면서 가장 만족했던 건 루이비통 가방인데, 만듦새나 실용성도 뛰어나서 ‘아, 이래서 명품.’이라는 느낌이 절로 들었다. 하지만 몇 년 들고나니 남들도 너무 많이 메고 다니기도 하고 식상해져서 별로 들고 싶지 않게 됐다.
어쨌든 이렇게 나의 20대와 30대 초반의 가방 욕심과 사랑은 끝이 없었다. 하나를 원해서 가지다 보면 또 더 다른 좋은 것들이 눈에 들어오고, 쓰다 보면 질리고….
어린 시절부터 애착을 많이 갖고 있던 가방을 정리하면서 내가 외면적인 부분에 많이 신경을 쓰는 사람이었구나, 남들이 보는 내 이미지를 많이 신경 쓰고 있었구나 하는 걸 알게 됐고, 외적인 부분에 대한 집착을 편안하게 내려놓을 수 있게 됐다. 거의 10년 이상 차곡차곡 모아두었던 3~40개의 가방을 어렵지 않게 처분할 수 있었다.
가방 브랜드의 가치를 나 자신과 같게 여겨왔던 생각을 알게 되니, 예전에 한창 잘 쓰다가 이제는 잘 들지 않는 오래된 가방이나 최근에 샀어도 자주 안 쓰는 가방에 대한 미련을 쉽게 내려놓을 수 있게 되었다.
가방을 사면 처음 몇 년 동안은 잘 쓰지만, 시간이 지나면 유행도 바뀌고 더 멋지고 새로운 가방이 많이 나온다. 예전에는 잘 쓰다가 이젠 거의 쓰지 않지만 아깝다는 이유로 가지고 있었던 가방도 많았는데, 아낌없이 버렸다.
가방을 줄이고 줄이는 과정에서 처음엔 단순히 개수를 줄이는 것에만 초점을 맞추다가 아차 했던 적이 있다. 왜냐면 가방을 신나게 버리는 데만 집중하다 보니 처분하지 말고 가지고 있을 걸 그랬나 싶은 가방도 있고, 버리고 나서 다른 색깔로 다시 구매한 가방도 있다.
예전에 선물 받았던 백팩이 있었는데 자꾸 가방을 볼 때 옛날 기억이 떠올라 들고 다닐 자신이 없어서, 인터넷 중고 거래 카페에 올려서 판매했었다. 그런데 처분하고 나니까 그 가방의 실용적인 면을 대신할 다른 가방이 없었다. 결국엔 눈물을 머금고 다른 색상으로 똑같은 걸 다시 구매한 적도 있다.
한때는 도미니크 로로의 책에서 가장 최고의 것만을 갖자는 말에 공감을 했다. 로로는 어설픈 거 몇 개를 가지고 있는 것보다는, 이곳저곳에 유용하게 쓸 수 있는 최고의 하나를 갖는 게 더 효율적이라고 말한다. 필요없다 싶은 가방은 다 처분하고 내가 갖고 있던 중 가장 고급의 몇몇 가방을 남겨뒀다. 그런데 당시 내 생활패턴에는 좋은 가방을 들고 다닐 일이 별로 없었고 천으로 만든 에코백이 더 잘 맞았다.
정리를 하면서 내게 유용한 물건을 고른다는 건 가격이나 품질을 고려하는 문제보다, 라이프 스타일이나 옷차림에 가장 잘 맞는 걸 선택하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제는 백팩, 크로스백, 클러치, 에코백 정도로 용도 별로 몇 개만 가지고 있다. 명품 가방은 없고 적당한 가격대로, 내 옷차림에 잘 맞는 가방만 남겨놨다.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고 내가 편한 대로 원하는 가방을 들고 다닌다.
가방의 목적은 결국 필요한 물건을 담아서 갖고 다니기 편하려고 메는 거지, 브랜드 가방을 들 정도로 돈이 많고 센스가 있는 사람이라는 걸 드러내려는 목적은 이제 사라졌다.
하지만 여전히 이름 없는 보세 가방보다는 브랜드 제품을 선호하긴 한다. 합리적인 가격에 활용도 또한 높은 브랜드로. 왜냐면 너무 저렴한 물건은 박음질이나 내구성, 구조도 뭔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갖고 다니면서 기분이 썩 좋지는 않기 때문이다.
꼭 최상품으로 비싸고 좋은 것을 가질 필요도 없고 각자 선택의 차이라는 생각이 든다. 길을 걷다 보면 명품을 카피한 이미테이션 가방이든, 저렴한 가방이든 본인이 편한대로 자유롭게 들고 다니는 사람들을 본다.
사람마다 가치관이 다르기에 가방의 목적에 충실한 것을 들고 다닌다는 자신만의 핵심 가치만 있다면, 비싼 것이든 싼 것이든 문제 될 건 없구나. 이제는 이렇게 유연하게 생각이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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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글이 다음 메인화면 + 구글 디스커버에 노출되었네요~ :)
끝까지 읽어주심에 감사드려요.
이 글은 제가 2016년까지의 정리했던 이야기를 담고 있어요.
16년째 미니멀라이프를 실천하고 있는 현재의 일상과, 꾸준한 실천을 위한 인사이트를
뉴스레터로도 발행할 예정입니다.
5월 마지막주 주말부터 뉴스레터를 통해서도 저와 소통해요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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