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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고운 May 14. 2024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1)

2번 탈락 후 꿈꾸던 브런치 작가가 되었음에도

2017


나는 2009년부터 온 힘을 다했던 물건 정리와 미니멀라이프 경험을 책으로 펴내고 싶었다. 책을 써서 작가가 되어보겠다고 절실한 마음에 카드 대출까지 받아 500만 원을 내고 프로그램을 수강했다. 하지만 나에게 남은 것은 워드프로세서 30페이지 분량의 글뿐. 


그 당시에는 내가 쓴 글을 보는 것도 너무 부끄럽고 힘들었고, 만족스럽지도 못해서 (약간의 출간 시도는 해봤지만.. 실패로 끝나고...) 외장하드에 보관만 해뒀다.




2018년부터 2022년까지


2017년 당시 미니멀라이프 정리 코칭을 사업화하기 위해 네이버 블로그에 열심히 글도 올리고 활동을 할 때가 있었다. 그때 만나게 된 소중한 고객 분이 나한테 이런 조언을 해줬다.


고운님 글은 딱 브런치 스타일에 잘 맞는 것 같아요. 브런치 한번 해 보세요.



그 말을 듣고 용기를 내어 브런치 작가 도전을 했지만 결과는 처참히 실패했다. 당시 브런치를 어떻게 하면 합격할 수 있는지 열심히 찾아봤는데, 합격을 하면 메일이 하루 만에 오고 불합격을 하면 메일이 3~4일 이후에 도착한다는 내용을 봤다.


안타깝게 나도 3~4일 만에 불합격 메일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받으면서 얼굴이 화끈거렸다. 왜냐고? 나는 나름대로 학교 다닐 때 일기도 성실히 썼었고, 고등학교 때는 방송반 아나운서를 하면서 방송 대본도 조금씩 쓰기도 했고, 대학교는 심지어 언론정보학과를 나왔으며 과에서 발행하던 웹진에서 3년 정도 기자 일도 했고, 결국에 졸업하고는 전공을 살려 (오래 하진 않았지만) 기자 일을 했는데… 나 나름 글 쓰는 사람이라고 글밥을 먹던 사람이라고 자부하며 살았는데...


그런데 찾아보니 브런치 작가 지원에 떨어진 사람들은 많고 많았다. 분명히 브런치만의 어떤 까다로운 기준이 있을 것이다. 당시 내가 그 기준을 충족하지 못했을 뿐이었겠지.


한 번 떨어지고 나서는 마상을 많이 입었다. 그래서 두 번째 지원을 한 게 아마 몇 년 후였던 걸로 기억한다. 용기 내어 두 번째 지원을 했지만 그 역시 떨어지고 말았다. 원래 관심사도 다양하고 직업도 다양한 일을 거쳐 왔으며 생각도 많고 공상도 많은 나에게 글 소재랑 스토리는 한없이 많은데... 너무 많은 소재의 글을 쓰겠다고 해서, 뾰족하지 않아서 그랬던 것일까. '브런치랑 나랑은 궁합이 안 맞나?' 이런 생각을 했다.


그럼에도 주 검색 엔진으로 다음을 활용하는 나는 가끔씩 다음 메인 화면에 올라오는 브런치 글을 보며 아주 작은 질투 아닌 질투의 감정을 느끼기도 했다. 애증의 브런치.




2022년부터 2024년 봄까지


2022년 하반기부터 2023년 5월까지는 결혼 준비를 하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인생 일대의 중요한 순간이 아닌가. 그래서 사실은 글쓰기도 까맣게 잊고 살았다.


개인적으로는 노션 Notion 에 일기를 기록하고 있는데, 며칠 전 정리를 하다 보니 노션의 일기도 저 바쁜 시절에는 하나도 안 적혀있더라. 오직 결혼 준비 내용만이 기록되어 있다. (결혼 준비 이야기도 더 이상 내 머릿속 기록이 휘발되기 전에 브런치에 글로 올릴 계획이다.)


결혼은 잘 마쳤고 신혼여행을 다녀오고 정신 차려보니, 새로운 일을 구하게 되고 이사도 하게 되었는데... 일하고 있던 도중 갑자기 임신이 되어 몸에 무리가 온 나는 결국 세 달 만에 일을 그만두게 됐다. 체력이 너무 갑자기 달려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지만 그래도 돌이켜보면 행복한 상상과 장밋빛(?) 미래에 부풀어있던 시간이었다. 그게 작년 11월 말부터 12월 초중순. 


계획도 없이 갑작스럽게 찾아온 아이는 12월 말 계류 유산으로 이별하게 됐다. 동시에 내 인생도 혼란으로 빠져들었다. 아이를 갖자마자 하던 일을 그만두게 되면서 '나는 도대체 어떤 삶을 살아야 하나...' 이런 고민들을 했었는데, 유산을 하고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 보니 그 고민은 늘 함께였다. 사실 아이가 있으나 없으나 해야 하는 고민이었다.


유산 후 우울증을 생각보다는 빠르게 극복하며 다시 새로운 일에 도전해 보기로 했다. 그중 하나가 바로 브런치 작가 재도전이었다.


2017년에 꽁꽁 봉인해 둔 워드 파일을 꺼내어 아무 생각 없이 챕터별로 '복붙(복사 붙여 넣기)'을 했다. 두 번이나 떨어져서 이젠 더 이상의 기대도 없었다. 어차피 e북을 출판하기 위해 책 느낌으로 글을 쓴 거라, 미리 적어둔 기획 의도와 목차를 브런치 지원서에도 그대로 옮겨 적었다. 떨어지든 말든, 어차피 붙으면 좋고 아니어도 상관없다는 마음으로 거침없이 지원서를 제출했다.


어라, 그런데 다음날 메일이 왔다. 


'브런치 작가가 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브런치 작가가 되었는데 막상 합격했다고 하니, 작가 지원을 위해 완성했던 글 3개의 발행 버튼을 누르는 게 그렇게나 부끄럽고 또 용기가 나지 않았다. 2월 중순에 브런치 작가에 합격했는데 5월 초까지 나는 글을 한 편도 발행하지 못한 '무늬만' 작가였다.


결국, 그렇게 갈망하던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고 해서 아무 일도 일어나는  없었다. 오히려 작가가 되니까 글쓰기와 발행에 대한 부담감만 더 커질 뿐이었다.


(다음 편에 계속)






이 글이 발행되는 '기록의 기록' 매거진 소개 


원래는 꼼꼼하고 완벽주의 성향이라

한 번 마음먹은 것을 행동에 옮기는 데 굉장히 신중한 편입니다.


허나 아주 최소한의 필터링만 거친 글을 쓰기로 했어요.

살아있으면 글을 써야 하고 글을 쓰는 사람이 곧 작가이기 때문입니다.


글쓰는 기록에 대한 기록을 차근차근 남겨보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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