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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운드림 May 17. 2024

이름은 고운데, 왜 몸은 안 곱노.

슬기로운 '고운' 탐구생활

"이름은 고운데, 왜 몸은 안 곱노."     


대략 17년 전, 태권도장에서 들은 이야기였다. 연대 책임을 중시했던 그때는 한 명이 동작을 틀리면 모두 다 같이 엎드려뻗쳐서 죽도로 엉덩이를 맞았다. 우리는 모두 운동인이었기에 여자라고 예외는 없었다. 한 명씩 돌아가면서 말없이 사랑의 매(...)를 때리던 관장은 그날따라 유독 나에게 그런 농담을 했다.     


엉덩이를 맞아본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러나 엉덩이에 가해지는 물리적 충격보다, 관장의 말이 멍처럼 아프게 퍼져나갔다. 소아비만이었던 내게 지나가는 말처럼 한 것일지는 몰라도 그것을 여과할 필터가 없었던 나는 어른인 관장의 말을 곧이곧대로 흡수해 버렸다.      


어째서 나는 이렇게 태어났지? 왜 많고 많은 이름 중에서 하필 내 이름은 '고운'이지?     


흡수된 질문은 다른 애들보다 한 학급은 더 큰 체형이 '고운'하면 흔히 떠오르는 가냘프고, 부드럽고, 아름다운 이미지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는 인식을 주었다. 만약 지금 그런 상황을 맞닥뜨린다면 그것이 진짜 나의 생각이 맞는지 한 번 더 반추해 보겠지만, 애석하게도 그때 가장 먼저 찾아온 감정은 ‘수치심’이었다. '이름값 못하는 애'가 된 것만 같아서.



내가 엄마의 뱃속에 있었을 때, 병원에서는 아기 심장 소리가 잘 안 들린다고 하여 단 것을 잘 챙겨 먹으라고 권장했다고 한다. 엄마는 잘 드시지도 못하는 초콜릿과 우유를 먹으며 아기의 심장 소리를 들었고, 그 아기는 무럭무럭 자라 출산 예정일보다 보름은 더 늦게 있다가 4.35kg으로 태어났다. 내가 달달한 것을 아주 좋아하는 것은 어쩌면 그것과 연관이 있을지도? 가끔 이런 시답잖은 상상을 하며 단 것을 좋아하는 이유를 합리화하기도 했다는 것은 우리만의 비밀로 묻어두자.     


관장의 말은 내가 자라면서 새로운 환경에 놓일 때, 죽도 소리를 내며 따라왔다. 자기소개를 할 때면 열에 아홉은 '이름이 곱다.'라는 이야기를 꼭 들었다. 여담으로 말하자면, 나의 이름은 순우리말이 아니라 한자로 높을 고(高), 이를 운(云)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물론, 그런 세세한 것까지 모르는 상황에서 그들은 아무런 저의 없이 의식의 흐름을 따라 말한 것일 테지만, 그럴 때면 나는 다시 엉덩이 맞는 어린 시절로 돌아갔다.     


당신도 내가 이름은 고운이지만 몸은 곱지 않다고 생각하나요?      


평소에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이따금 내면의 깊은 곳에서 불편한 감정이 올라왔다. 주변에서 괜찮다고 해도 나는 괜찮지 않을 때가 있지 않은가. 수치심이 강해질 때면 '음식'을 먹으며 즉각적인 만족감을 얻는 방식을 선택했다. 그것이 점점 더 큰 고통을 부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은 채. 허투루 방치한 불편함은 부정적인 정체성으로 변질되었고, 이윽고 내 몸에는 울퉁불퉁하게 일그러진 셀룰라이트로 자리 잡았다. 너무 오래 마음에 붙잡아둔 나머지 정말 곱지 않은 몸이 되어버리고 만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영원할 것만 같은 ‘이름값 못함’의 믿음이 깨지는 순간이 왔다.     


첫 PT를 받을 때였다. 정체기에 들어선 나에게 트레이너가 '비키니 안 입고 싶어요?', '남자친구 안 사귀고 싶어요?'라는 질문을 던졌다. 트레이너 나름대로 자신의 경험을 통해 대다수의 여성이 살을 빼고 싶어 하는 이유를 꼽아 동기부여를 하려고 시도한 것이었다. 나는 '하하, 그래야죠.' 하고 말했지만 마음의 소리는 '네, 아닌데요.'라고 즉각적으로 반응했다. 그때의 나는 살을 빼야 하는 명확한 목표가 없었지만, 트레이너가 말한 이유로 살을 빼고 싶지 않다는 것만은 분명했다. 처음으로 내 마음이 무언가를 받아들이지 않고 곧바로 대답을 한 순간이었다. 내 마음은 무엇을 원하지 않는지 분명히 알고 있었다. 

    

돌이켜보니 나는 여태까지 자라면서 '아니오'라고 말해본 적이 없었다. 말대꾸를 하지 않고, 윗사람의 의견을 거스르지 않고 수긍할 때 따라오는 '착하고 말을 잘 듣는 아이'라는 칭찬이 좋았기 때문이었다. 그것이 어린이가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특권이라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더 이상 어린이가 아니었다. 내가 듣고 싶은 말과 받고 싶은 대우를 남에게서 찾을 때가 아니라, 내면에서 행해져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어린 나에게 이 말을 꼭 하고 싶다.     


흘러가는 말을 전부 마음에 담아두지 않아도 돼. 나의 기준은 내가 정하는 거야. 남들의 의견과 같지 않아도 괜찮아. 그건 ‘틀린’ 게 아니라 ‘다른’ 거니까. 사람마다 기준이 다른 건 자연스러운 일이야.     

그 뒤로부터는 어떤 일이 있을 때면 나의 기준과 가치관은 무엇인지 더욱 관심을 가지고 살펴보게 되었다. 내가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은 무엇인지, 두루뭉술하게 떠오르는 느낌이 있다면 구체적으로 감정의 이름을 붙여보고, 일상 속에서 어떤 순간에 행복을 느끼는지 알아가면서. 덕분에 하루하루가 보물 찾기를 하는 것처럼 재미있어졌다. 이러한 순간들이 나다움을 회복하게 해 준다고 나는 믿고 있다. 이러한 시간들이 쌓인 덕분에 나는 비로소 그 일을 다른 각도로 비추어 볼 수 있게 되었다. 관장의 농담과 트레이너의 질문은 나의 고유성을 발견하고, 나만의 기준을 가지게 해 준 귀한 기회가 되었다. 그리고 이제는 '살을 빼는 이유'가 내가 좋아하는 일을 지속하기 위해 체력을 기르기 위함이라고 분명하게 말할 수 있다.

         



가끔 엄마가 나의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자주 언급하는 에피소드로 이번 이야기를 마무리 지어볼까 한다.     


5살 무렵, 불교 신자인 엄마를 따라 방생을 하러 간 적이 있다. 꼭두새벽부터 관광버스에 올라탄 나를 보며 할머니들께서 "하따 가시나, 복실복실하이 꼭 돼지 같네!" 하며 반겨주셨다. 귀엽다는 뜻의 칭찬이었지만, 돼지라는 말이 내심 부정적으로 다가왔는지, 다섯 살의 나는 아주 새침하고 맹랑하게 말했다.


"아니야, 나는 통통 예뻐!"     


엄마가 종종 말해주지 않았더라면 나에게도 이런 ‘맹랑함’이 있다는 사실을 까마득히 잊고 있었을 것이다. 우리는 살면서 다양한 경험과 사회관계 속에서 자아상을 만들어간다. 간혹 예기치 못한 사건이 순식간에 상처로 다가올 때가 있고, 자존감이 옅어질 때도 있지만, 함부로 낙담하지 말자.     


사건은 상처가 되도록 허락할 때에만 상처가 된다. 누군가의 의견이나 이미 일어난 사건을 ‘상처’로 받아들일지, 아니면 나의 삶을 한층 더 다양한 각도에서 바라볼 수 있는 프리즘 같은 ‘기회’로 받아들일지는 자신의 선택에 달려 있다. 여태까지 ‘상처’로 받아들였다면, 이제부터는 다르게 비추어보는 방법을 선택할 수 있다. 그리고 그에 따라 마음의 빛깔 또한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오래전에 이름 붙인 부정적인 정체성이 있다면 과감하게 떼어내자. 그 너머에는 내가 원할 때면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는 무한한 가능성이 우리를 반기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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