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제일 날씬한 사람이 누구게?"
친구가 물었을 때, 난 그게 미스터리 책에 나오는 얘기인 줄 알았다.
'충격'이나 '쇼킹'이라는 단어와 '실화'나 '진짜'라는 단어가 함께 표지에 쓰인 책이 유행이었다.
번개에 맞고 아가씨가 된 할머니, 앉으면 심장마비로 죽는 나무 의자, 뒤통수 한가운데 눈이 달려 뒤쪽도 볼 수 있는 양갈래 머리 언니, 문을 열고 나갔는데 갑자기 지구 반대편으로 가버린 아저씨...
신비롭고 괴상하고 오싹한 이야기가 '실제'-라고 적힌- 사진과 같이 실린 책이었는데, 어떤 건 그림 같고 어떤 건 너무 흐렸지만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머리를 맞대고 책 주변으로 모인 우리들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는 게 중요했지.
"일본에서 제일 날씬한 사람이 누구게?"
친구가 다시 한번 물었을 때 난 약간 기가 죽었다.
미스터리 책이 하나도 없어서 학교에 친구가 가져온 책을 같이 봤는데, 그 질문이 꼭 내가 못 본 시리즈에 나온 이야기 같아서 치사한 기분마저 들었다.
"몰라."
나는 되도록 무심하게 대답했다.
"비사이로마까!
비가 내릴 때 하나도 안 젖고 비 사이로 막 갈 수 있대.
비 사이로 막 가, 비사이로마까."
생각도 못한 답에 난 박수를 치며 웃어버렸다. 내 반응에 신이 난 친구는 ‘오는비다마자’, ‘도끼로이마까’, ‘깐이마또까’도 알려주면서 이런 게 바로 난센스 퀴즈라고 했다. 언니나 오빠가 있는 애들은 유행하는 걸 언제나 나보다 먼저 알아서 그게 참 부러웠다. 진짜 일본 이름 같고 말이 되는 ‘비사이로마까’가 너무 재미있어서 얼른 내 동생에게도 알려주었다.
내 동생은 걔 친구들보다 먼저 알면 좋을 텐데.
소나기가 내리던 어느 여름날에 나와 내 동생과 친구들은 처마밑에 서서 주룩주룩 떨어지는 빗줄기를 만지며 비사이로마까 얘기를 했다.
"비사이로마까는 얼마나 날씬할까?"
"비를 다 피하려면 진짜 홀쭉해야지."
"젓가락 정도?"
"근데 그보다 사실 엄청나게 빠른 사람 아닐까?"
내리는 비를 다 피하려면 아주 가늘고 빨라야 할 것 같았다.
"우리도 비를 피해서 가보자. 옷이 덜 젖은 사람이 비를 더 많이 피한 거야. 하나도 안 젖으면 비사이로마까!“
우리는 대각선에 있는 친구집 처마 아래로 내달렸다. 모두들 지그재그로, 비를 피하는 시늉을 하면서.
피할 수도 없는 비를, 굳이 지그재그로 달리며, 비슷비슷하게 젖었는데도, 누구는 좀 많이 피했다, 누구는 오는 비 다 맞았다 하며 신나고 신나게 소나기처럼 웃어댔다.
친구네 집에서, 장롱옆에 돌돌 말아둔 벽걸이 달력을 꺼내서, 하얀 뒷면에다 '비사이로마까'와 '오는비다마자'를 상상해서 그렸다.
(도끼로이마까는 그리고 싶지 않았다.)
서로의 그림이 너무 웃겨서 배를 잡고 뒹굴었다. 내
그림을 보고 애들이 깔깔 웃으면 왜 그런지 마음이 뿌듯했져서 다음 그림은 더 웃기게 그리려 애를 썼다.
엎드려서 웃음을 꾹 참으며 그림을 그리는데, 달력의 종이 냄새, 눅눅한 포대기 이불의 냄새, 친구네 까만 고양이 냄새가 그날따라 코에 많이 닿았다. 그 냄새가 잔잔하고 편안해서 자꾸 숨을 깊게 들이쉬던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