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에 대한 과학적 고찰

결정론과 우주

by 햇살아래

운명이란 무엇일까?


영화 <테넷>에서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라는 대사는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다. 영화 속에서 주인공은 시간을 돌려 검은 세력의 음모를 막아내지만, 동료 닐의 죽음은 막지 못한다. 닐은 자신의 죽음은 원래부터 정해져 있는 것이라며 변하지 않는 운명을 겸허히 받아들인다. 영화 <테넷>은 운명은 거스를 수 없고 정해진 결과를 바꿀 수 없다는 결정론을 따른다.


결정론은 인간의 ‘자유의지’와 함께 많은 논란을 낳았다. 그런데 이 결정론이 물리학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이 무척 흥미롭다. 결정론은 운명과도 일맥상통하기 때문이다.


물리학에서는 오랫동안 결정론이 지지받았다. 고전역학(뉴턴역학)에 따르면, 물체의 위치와 속도, 작용하는 힘을 알면 미래의 상태를 정확하게 계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현재의 정보를 알면 미래에 일어날 일도 예측 가능하다는 것이다.


우리가 일기예보를 통해 날씨를 예측하는 것은 현재의 정보을 바탕으로 미래의 변화를 예측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만약 우주 탄생 초기의 물리량(정보)을 정확히 알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


만일 인류가 우주 탄생 초기의 물리량을 정확히 알 수 있다면, 이후의 모든 일도 예측할 수 있게 된다. 즉, 미래는 정해져 있는 셈이다. 이를 달리 말하면 인간 또한 절대적인 자연법칙의 지배를 받으며 살아가므로, 운명은 정해진 것이다.


과학의 결정론이 운명과 맞닿아 있는 지점은 매우 흥미롭다. 물론, 둘의 성격은 전혀 다르지만, 모두 미래가 이미 결정되어 있다는 점에서 유사하다. 그렇다면 세상의 모든 현상 또한 정해진 결과를 갖고 있는 것일까? 이러한 관점에 따른다면 인간의 ‘자유의지’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 된다. 내가 살아가는 삶 또한 이미 정해진 결과를 따른다면 인간의 ‘자유의지’도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내 선택마저 이미 정해진 결과라면, 삶이 참으로 덧없이 느껴진다. 내가 아무리 발버둥쳐도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이 있다면, 내가 하는 모든 행위도 이미 정해진 것이 된다. 그렇다면 나는 운명의 꼭두각시가 되고 말 것이다.


하지만 ‘양자역학’의 등장과 함께 결정론은 커다란 도전을 맞이했다. 고전역학은 거시세계 즉,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서는 아무런 문제가 없이 작용하는 법칙이다. 그러나 미시세계는 다르다. 원자나 분자 같은 어마어마하게 작은 세계에서는 거시세계의 법칙이 통용되지 않는다. 이에 따라 미시세계를 다루는 ‘양자역학’이 등장했다.


과학에 조금이나마 관심을 가진다면 양자역학이 지닌 ‘불확정성의 원리’에 대해 한번쯤 들어보았을 것이다. 불확정성의 원리란 양자역학의 가장 대표적인 개념으로 물체의 운동량과 위치를 동시에 정확히 알 수 없다는 것을 뜻한다. 앞선 고전역학에서의 물리량은 예측 가능했지만, 양자역학에서는 그렇지 않다. 어려운 용어 같지만, 이를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모른다’로 요약된다.


미시세계에서는 입자의 위치와 운동량이 동시에 정확하게 정해지지 않고, 확률적으로 존재한다. 마치 동전을 던질 때 앞면과 뒷면이 한꺼번에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어느 쪽이 나올지 확률적으로 결정되는 것과 같다. 또한 작은 벌레에 손전등을 비추면 벌레가 놀라서 움직이듯, 입자도 빛을 받으면 그 위치가 달라진다.


우리는 흔히 어떤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운명을 떠올린다. ‘이 무슨 신의 농간인가.’ 하고 하늘을 탓해보지만, 이미 일어난 일을 되돌릴 수는 없다. 나쁜 일이 연속적으로 벌어질때면 운명의 신이 존재하고 나에게 온갖 시련을 내려주는 것만 같다. 그렇지만 운명에 굴복하고야 만다면 거기서 더 나아갈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과학에서는 이 세상을 설명하기 위한 다양한 법칙과 이론이 존재한다. 이 가운데 ‘다중우주’는 가장 흥미롭다. ‘다중우주’는 같은 시간선 안에서 내 선택에 따라 여러 가지 가능성을 지닌 우주가 존재한다는 이론이다. 즉, 내 선택과 행동에 따라 다양한 결과가 나뉘고, 이는 수많은 우주의 모습으로 전개된다는 것이다. 영화 <어벤저스>에서 닥터 스트레인지가 수많은 선택과 결과를 맞이하는 모습을 떠올리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같은 시간 안에 서로 다른 결과를 가진 우주가 무수히 존재한다니 무척이나 흥미롭기 그지없다. 비록 정설로 받아들여지지는 않지만, 다양한 상상력을 자극하는 흥미로운 이론임은 틀림 없다.


운명이란 무엇일까. 인간은 거시세계의 법칙 아래 살아가지만, 생명은 미시세계를 기반으로 한다. 결정론은 여전히 뜨거운 논쟁거리이며 양자역학의 등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이들의 결정론을 지지한다. 그렇지만, 인간의 운명이 태어날 때부터 이미 정해져 버린다면 삶은 너무나 시시하지 않을까?


나는 인간의 운명은 정해져 있다는 결론보다는 다양한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쪽에 좀 더 믿음이 간다. 그 이유는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가 정해진 값에 고정되어 있다고는 여기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과학적으로도 운명은 증명되지 않았다. 결정론이 양자역학의 등장과 함께 새로운 국면을 맞이 한 것처럼 인간은 다양한 가능성을 지녔고, 언제나 운명을 헤쳐 나갈 힘을 지니고 있다. 우리 스스로가 만들어가는 무수한 선택과 가능성이 모여 비로소 ‘나’라는 우주를 완성해가는 것은 아닐까.


삶은 여행이자 도전이다. 태양은 언제나 다시 뜬다. 봄은 다시 온다. 운명에 억눌리기 보다는 내 안의 가능성을 믿고 나아간다면 우리 앞에 펼쳐지는 운명은 반드시 변하리라 믿는다. 시련이 닥쳐올 때면 운명을 떠올리지만, 시련을 이겨내는 힘 역시 우리에게 있다. 그저 좌절하고 만다면 운명에 짓눌리겠지만, 이를 이겨낸다면 운명도 극복할 수 있다. 나는 우리가 지닌 가능성을 믿는다. 그것은 운명에 굴복하지 않는 용기다.


결국, 우리는 스스로의 선택으로 운명을 만들어가는 존재이다. 마치 다중우주론처럼, 매 순간 우리의 선택은 새로운 가능성의 우주를 열어젖힌다. 우리는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별의 후예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