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전 여름휴가 때다. 객지에 있다 보니 고향 내려가는 일이 손에 꼽을 정도다. 여름휴가를 맞아 오랜만에 고향에 내려가는 김에 특별한 계획을 세웠다. 부모님을 모시고 여행을 떠나기로 결심한 것이다. 그러나 부모님은 어딜 가자고 해도 늘 시큰둥한 반응이었다. 그래서 미리 호텔을 예약하고 여행 계획까지 꼼꼼히 세운 후, 이미 해 둔 예약을 취소할 수 없다며 부모님을 이끌었다. 결국 부모님은 마지못해 따라나섰고, 그것이 어른이 된 뒤 처음으로 떠나는 가족 여행이었다.
어린 시절 아버지는 늘 바빴다. 아버지 다니던 회사는 3교대로 돌아갔고, 덕분에 특별한 날 아버지와 함께할 수 없는 경우가 많았다. 게다가 농사도 지으셔서 아버지는 늘 바빴다. 내 어린 시절 가장 강렬한 기억 중 하나는 어느 어린이날이다. 그날 나는 아버지가 아닌 이웃집 아저씨의 손에 이끌려 놀이공원에 갔다. 하지만 나는 하루 종일 화가 나 있었다. 남의 아버지 손에 이끌려야 한다는 사실이 싫었기 때문이다. 어른이 되어서야 그런 아버지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지만, 그날의 기억은 여전히 마음 한구석에 남아있다. 그만큼 아버지와 함께한 시간이 적었다.
어디서 본 글인지 잘 기억나진 않지만, 부모님이 살아계실 때 반드시 영상이나 사진을 남겨두라는 조언을 본 적이 있다. 그때는 사소해 보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게 된다는 글이었다. 아마 그 글을 본 뒤로 여름 여행을 계획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하필 장마철과 겹쳐 계획의 절반밖에 실행하지 못했지만, 여행은 무척 뜻깊었다. 무엇보다 처음에는 시큰둥하던 부모님의 반응이 예상과는 달라서 놀랐다. 어머니는 이제 예약 같은 걸 미리 해두지 말라고 했지만, 이후로도 매년 여름휴가가 다가오면 부모님을 모시고 여행을 다녔다. 경주, 여수, 울진, 포항 등 여러 곳을 돌아다녔다. 그러나 마치 징크스인 것처럼 어김없이 장마가 찾아와 여행은 늘 차질을 빚곤 했다. 하지만 그런 추억들이 하나둘 쌓이며 어느덧 연례행사가 되었다.
비단 여름휴가가 아니더라도 집에 내려갈 일이 생기면 부모님을 모시고 나들이를 다녔다. 이제 내가 내려가면 부모님이 먼저 ‘어디 놀러 갈데 없냐?’며 먼저 물으신다. 나름대로 여러곳을 돌아다녔더니 이제는 갈만한 곳을 찾는 일이 더 고역이 되었다.
어머니는 요즘 부쩍 이런 말씀을 자주 하신다. “걸을 수 있을 때 많이 봐둬야지, 나중에 걷지도 못하면 후회만 남는다.” TV에서 들었다며 자식이 어디 가자고 하면 따라나서고, 맛있는 것 먹자고 하면 먹는 게 행복이라 하신다. 나중에 아파서 눕게 되면 모든 게 다 끝이라며 말이다.
사실 그것은 나 또한 마찬가지다. 먼 훗날 후회하기 전에 부모님과 많은 추억을 쌓아야지 싶다. 비록 어린 시절 가족 여행의 추억은 거의 없지만, 이제는 내가 부모님을 이끌며 여행을 다닐 수 있으니 이곳저곳 많이 보여드리고 싶다. 갈 수 있을 때 많이 가둬야지. 하고 말이다.
명절이나 부모님 생신이 아니면 집에 내려갈 일이 거의 없다 보니, 집에 내려가면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부모님의 나이 듦이다. 그새 흰머리는 왜 이리 많이 늘었는지, 주름은 왜 이리 선명해졌나 싶다. 이제는 영락없는 할머니, 할아버지다. 아버지는 어딜가든 ‘어르신’이란 말을 먼저 듣게 되었다. 세월의 흐름은 누구도 막을 수 없다지만, 부모님의 나이 듦을 발견할 때면 무척 속상해진다. 그래도 아직 두 분 다 건강하단 사실에 감사함을 느낀다.
얼마전 큰 고모가 돌아가셨다. 큰고모의 장례를 치르고 장지에 다녀온 다음 날, 공교롭게도 동네 아저씨의 부고 소식이 들려왔다. 그는 아버지의 친구분으로 나도 어린시절부터 알고 있던 분이었다. 그 소식을 듣고나자 죽음에는 위아래가 없단 말이 새삼 실감이 났다. 어느덧 나도 결혼식보다 장례식이 더 익숙한 나이가 되어가고 있다.
몇 년 전에는 큰아버지가, 올해는 작은고모와 큰고모가 차례로 돌아가셨다. 장례식 과정을 살피는 나를 느끼며, 어느덧 나도 부모님과의 이별을 준비할 나이가 되었단 사실을 느꼈다. 오래간만에 고향에 내려가 부모님 얼굴을 바라볼때면 그 생각이 더 강해진다. 어쩌면 이런게 나이 듦이 아닐까 싶다. 어린시절엔 그저 빨리 한 살을 더 먹길 바랐지만, 이제는 한 살의 무게가 무척 크게만 느껴지니 말이다. 어른들은 그 무게를 어떻게 견뎌냈을까 싶다.
우연히 휴대폰에 저장되어 있는 사진을 살펴보다가 젊어 보이는 아버지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어랏, 아버지가 이렇게 젊었나? 사진을 보니 9년 전 사진이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더니 이때는 아버지가 참 젊었구나 싶은 생각이 절로 들었다. 물론, 나도 그만큼 나이를 먹었다. 내가 중년이 될 줄은 상상도 못했으니 말이다. 이제는 한해의 끝이 다가오면 새롭게 나이를 먹는단 사실이 썩 달갑지 않다. 그저 한해가 끝나지 않고 더 길게 이어졌으면 싶다.
만일 인간이 영생을 누린다면 죽지 않는다는 것만으로 만족할 수 있을까? 아마 그 다음은 늙지 않는 것을 바라게 되는 것이 인지상정 일 것이다. 사랑하는 이들과 늙지 않고 영원히 사는 것. 물론, 이런 동화 같은 일은 현실에서 일어날 수 없다. 제아무리 과학기술이 발전한다고 할지라도 인간은 누구나 죽음을 맞이한다. 그것은 변하지 않는 진리다.
나이 듦이 싫어지는 것은 사랑하는 이와의 이별이 기다리는 탓일 것이다. 세월의 흐름은 누구도 막을 수 없고, 슬픔의 순간은 다가온다. 그것을 이겨낸다고 해서 성숙해진다고는 믿지 않는다. 그저 견뎌낼 뿐이다. 부재의 빈자리는 그 무엇으로도 매울 수 없다.
올해는 참 바빴다. 새로운 회사에 적응하기에 바빴고, 여름휴가조차 가지 못했다. 연달아 장례를 치렀고, 즐거움보다는 슬픔이 더 짙은 한해였다. 어느덧 한해의 끝이 다가온다. 새롭게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이별의 시계가 가파르게 흐른다는 것과도 같다.
앞으로 얼마만큼의 시간이 남아있을지는 알 수 없다. 흘러간 시간은 모두 아쉬운 기억으로 남기에 다가오는 시간들은 즐거움이 가득한 시간으로 만들고 싶다. 여행은 즐겁다. 낯선 환경에서 다가오는 것들은 늘 새로움으로 남는다. 사랑하는 이와 새로운 것들을 잔뜩 바라보는 것은 사소하지만 가장 즐거운 행복이 아닐까. 더 많은 곳에서 즐거운 추억을 쌓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