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기가 어려운 이유는 무엇일까?

그럼에도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

by 햇살아래

책을 읽지 않는 시대라고 한다.


2023년 국민독서실태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성인 독서율은 43.0%로 2021년보다 4.5p 감소했다고 한다. 성인 10명 중 6명은 연간 책을 한권도 읽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추세는 갈수록 늘어날것이 자명한데, 책의 자리를 영상이 대체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독서란 무엇일까. 독서의 사전적 정의는 ‘책을 읽음’이다. 그런데 책을 읽는다는 행위는 단순히 읽는다는 것과 거리가 멀다.

책을 읽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우선적으로 문자를 인식해야 한다. 문자를 인식했다면 단어의 의미와 맥락을 파악 할 줄 알아야 하고, 흐름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즉, 책을 읽는다는 것은 단순히 읽는다는 것이 아니라 문자를 해독하고 해석하는 과정이다.


문자가 등장 하기 이전 시대에 지식은 구술로 전파되었고, 구술로 전파되는 지식은 온전히 전파될 수 없었기에 그 명맥이 끊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또 잘못 전해지거나 그 의미를 정확히 이해할 수 없는 경우도 많았다. 게다가 한번 흐름을 놓치고 나면 다시 듣기도 불가능 하다. 그러나 문자가 발명되면서 지식의 전파는 더 이상 구술을 통하지 않게 되었다. 그렇다고해서 지식의 전파가 오늘날과 같이 보편적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다. 지식은 ‘인쇄술’이 발명되어서야 비로소 널리 보급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과거 인쇄술이 등장하지 않았던 시기에는 ‘필경사’가 존재했다. 오늘날에 비유한다면 책을 만드는 사람이다. 필경사는 구술을 문자로 옮기거나 베껴써서 필사본을 제작했다. 하지만 손으로 직접 글씨를 썼기에 제작 할 수 있는 책의 숫자는 제한적이었고 한계가 있었다. 이러한 지식은 주로 수도원에 집중되었고, 소수의 전유물이 될 뿐이었다. 그러나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이 발명된 이후 지식은 더 이상 소수의 전유물이 아니게 되었다.


주로 판타지 소설에서 인간은 ‘필멸자’로 불리며 오랜 세월을 살아가는 다른 종족과 비견되곤 한다. 인간의 가장 커다란 특징은 짧은 생을 살지만, 후대로 역사와 의지가 이어진다는 점이다. 후대는 선대의 유산을 발판으로 새로운 지식을 탐독하고, 더 커다란 지식을 발전해 나갈 수 있다. 이것이 인간이 문명을 이룩해온 과정이다.


오늘날에도 책은 가장 보편적인 지식 전파의 수단이다. 세계적인 석학들은 자신의 이론을 책이나 논문 등을 통해 발표하곤 한다. 만일 책이라는 수단이 없었다면, 석학들은 일일이 자신의 이론을 설명해야 할 것이며 이는 무척이나 번거롭고 피곤한 일이다. 하지만 책을 통해 간단히 자신의 이론을 널리 퍼뜨릴 수 있으니 이보다 더 한 혁명이 또 있으랴.


오늘날과 같은 디지털 혁명 이전까지는 문자 전성 시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디지털 혁명 이후 문자 전성 시대는 힘을 잃었고, 그 자리를 영상이 대신 하고 있다. 영상의 장점은 무엇보다 빠르다는 점이다. 책 한권을 읽기 위해선 오랜 시간이 걸릴 수 밖에 없지만, 영상은 필요한 지식을 빠르게 얻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읽어야 하는 수고로움을 덜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단편적인 지식 습득에 그치기에 백과사전식 지식에 머물곤 한다. 백과사전은 방대한 지식을 담고 있지만, 깊이 있는 지식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국민독서실태 조사에 따르면 독서 장애 요인으로 일(공부) 때문에 시간이 없음(24.4%)이 가장 높게 나타났고, 책 이외의 매체 이용(23.4%), 책 읽는 습관이 들지 않음(11.3%), 다른 여가/취미 활동(8.9%) 순이었다.


독서율 하락에 따라 청소년들의 문해력 하락 등 여러 문제가 제기 되고 있지만, 책을 읽지 않는 이유를 대게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는 경향이 짙다. 하지만 이는 바쁨을 강요하는 사회의 단면과도 맞닿아 있다.


앞서 이야기 했듯 책을 읽는 행위는 단순히 읽는다는 행위와는 거리가 멀다. 독서란 문자를 해독하고 해석하는 과정이다. 그러나 상당한 시간과 노력, 수고로움을 들여야만 한다.


현대인은 ‘바쁨’의 노예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대인이 바쁘지 않다는 것은 일종의 ‘낙인’과도 같다. 게다가 ‘저녁이 있는 삶’이 정치인의 캐치프레이즈로 등장 할 만큼 노동시간이 긴 나라에서 책을 읽지 않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다. 노동에 지쳐 집에 돌아온다면, ‘보상’을 받고 싶은 것이 인간의 자연스러운 심리이기 때문이다. 이때 다시금 수고로움을 들여야 하는 책보다는 가볍게 즐길수 있는 매체에 눈이 가는 것은 당연한 이치인 것이다.


과거에는 책이나 텔레비전이 거의 유일한 즐길거리 였지만, 현대는 너무 많은 즐길거리가 넘쳐나므로 독서율이 줄어드는 것은 디지털화로 인한 자연스러운 변화다. 이를 심각한 사회 문제로 인식하는 것은 지나친 감이 있다.


그렇지만 뇌는 가소성을 지녔다. 보통 인간의 뇌는 성인이 되면 변하지 않을 것이라 여기지만, 니콜라스 카의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에 따르면 뇌의 특정 회로가 육체적 또는 정신적 행동의 반복을 통해 강해질수록 회로는 해당 행동을 습관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소위 말하는 ‘쇼츠 중독’이 반복된다면 뇌는 그에 걸맞게 변한다는 것이다. 흔히 이야기하는 ‘도파민 중독’ 상태다.


또한 뇌가 받아들일 수 있는 정보에는 한계가 있기에 컴퓨터 화면이나 스마트폰 화면에 장시간 노출될수록 너무 많은 정보 노출로 인해 뇌의 인지 부조화가 일어나고 이것은 결국 집중력을 떨어뜨리고, 사고력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초래한다. 우리의 예상과 달리 화면 안에는 수많은 정보가 존재하고 이에 장시간 노출될수록 뇌에는 일종의 버퍼링이 일어나는 것이다.


그렇다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흔히 책을 읽어야 한다고 이야기하지만, 왜 읽어야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하는 경우는 적다. 무비판적으로 읽어야 한다는 점만 강조한다면 그에 대한 반발심이 일어나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유튜브에서는 책을 읽었더니 부자가 되었다거나 성공했다는 성공담이 넘쳐나지만, 단순히 책을 읽는다고해서 드라마틱하게 부자가 된다거나 성공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들은 책을 마케팅 수단으로 이용하며 이를 통해 강연이나 광고의 기회를 얻을 뿐이다.


또한 책을 읽는 다는 행위가 무조건 좋은 것도 아니다. 세상에는 수많은 책이 넘쳐나고 책 중에는 ‘쓰레기’도 넘쳐나기 때문이다. 그러니 ‘쓰레기’를 읽는 바에야 차라리 다른 매체에 집중하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


다만 책을 읽는 다는 것은 문자를 해독하고 해석하는 과정이지만, 저자의 생각과 나의 생각을 비교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저자가 책을 내는 이유는 나는 이것을 알고 있고, 이렇게 생각하고 느끼고 깨달았다고 말하기 위함이다. 저자는 어떻게든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한다. 그렇지만 사람은 저마다 생각하는 것이 다르다. 그러니 책은 항상 옳다는 고정관념에 빠진다면 이 또한 별반 도움이 되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흔히 책은 사고력 확장에 가장 좋은 도구라 불린다. 책이 사고력 확장에 도움을 준다는 것은 바로 여기에 기반한다. 저자와의 대화를 통해 지식을 탐독하며, 비판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1984>, <멋진 신세계>, <우리들>, <화씨451> 등 디스토피아 소설에는 공통적인 특징이 나타난다. 모두 사고할 거리를 앗아간다는 것이다. 인간이 사고력을 잃었을때는 단지 국가나 당을 유지시키기 위한 부품으로 전락할 뿐이다. 과거 3S라는 정책이 시행된 것도 국민의 눈을 다른 곳으로 돌려 사고할 거리를 앗아가기 위해서 였다. 비판적 사고를 잃는다면 인간으로서의 주체성을 갖기보다 군중심리에 휩쓸리기 마련이다. 오늘날과 같이 변화가 시시각각 일어나는 세상속에서 자신만의 주체성을 갖는 다는 것만큼 중요한 일은 없다.


문자와 인쇄술의 발명 이후 책은 오랫동안 그 지위를 유지해왔지만,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인해 그 지위에 심각한 위기를 맞았다. 닐 포스터먼의 <죽도록 즐기기>에 따르면 모든 것들이 쇼.오락으로 변질 되고 있으며 이는 미디어 역시 마찬가지다. 세상 모든 것들이 유희를 위한 도구로 변질되어간다.


과거와 달리 앉은 자리에서 쉽게 지식을 획득 할수 있는 시대가 되었지만, 여러 사회적 요인과 함께 책이 지녔던 위상과 지위는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그러나 책읽기가 무엇인지 독서가 어떤 의미를 지녔는지를 이해한다면, 읽는다는 것은 단순히 읽는다는 것을 떠나 세상을 이해하고 주체성을 확보해나가는 도구란 사실을 알 수 있다.


다시 책을 읽을 시간이다.


매거진의 이전글나이의 무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