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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 씨앗이 하늘을 날면

저작권 글 공모전 응모

by 고요한동산

민들레가 노랗게 피어나고 꽃씨가 눈처럼 세상에 휘날리는 봄이 오면, 권정생 선생님의 『강아지똥』이 떠오른다. 내리는 비에 온몸을 녹여 마침내 민들레를 온몸으로 감싸 안고 하나가 된 동글동글 귀여운 강아지똥 말이다.


그림책을 펼치면 시골 돌담길이 보이고, 한적하게 흙을 실은 소달구지가 지나가며, 병아리 가족이 산책을 하고, 작은 새들이 날아 내려와 강아지똥을 쪼아보고는 “퉤, 퉤, 퉤! 더럽다” 찡그리며 지나가는 모습이 선명하게 그려진다. 세상에서 더럽고 쓸모없다 여겨지는 존재도 각자의 역할이 있다는 것을 귀여운 그림과 간결한 문장에서 읽을 수 있다.


선생님의 작품을 읽을 때면 권정생 선생님의 순수한 마음속으로 들어가는 것만 같다.

자신이 기르던 아기 고추를 가뭄에서 지켜내지 못해 벌을 받는 거라며 슬퍼하던 흙덩이와 ‘우리 밭 흙덩이’ 임을 알아차리고 다시 소중히 데려가는 소달구지 아저씨의 모습에서 작은 것도 귀하게 여기고, 힘없는 이들을 보듬고자 했던 선생님의 따뜻한 마음을 느낄 수 있다.


『몽실언니』, 『엄마 까투리』 등 유명한 작품이 많았기에, 권정생 선생님은 분명 부자일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선생님은 세속의 물질과는 전혀 닿지 않을 것 같은 시골의 작은 흙집에 살고 계셨다.

선생님 댁을 찾아가게 되었던 사연은 사실 그리 좋은 일은 아니었다.


대학교를 휴학하고 연극을 배우며 아동극을 했던 시절이었다.

어린이극 <신데렐라>, <보물섬>을 마치고 다음 공연을 준비하던 중 연출이 『강아지똥』 대본을 나눠주었다. 동화책 내용이 너무 좋아 각색했다며 뿌듯해하면서 말이다. 몇 달 동안의 연습을 마치고 무대와 의상까지 완성한 후 우리는 공연날만 기다리고 있었다.


어느 날 연출에게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이미 서울에서 『강아지똥』 어린이 뮤지컬이 진행 중이며, 저작권 문제로 신고하겠다는 내용이었다. 그때가 저작권에 대한 인식이 막 자리 잡기 시작할 때였고, 저작권 위반 공연들을 찾아 신고하는 사람들도 많았었다고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다.


무지로 인해 시간과 노력만 들이고 공연을 시작도 못 한 것이 아까워, 연출과 함께 권정생 선생님을 직접 찾아가 허락을 받아보자며 무작정 길을 나섰다. 차를 세우고 한참을 걸어 들어간 시골 돌담길은 마치 『강아지똥』 책 속으로 들어온 듯했다.


“여기쯤에 강아지똥이 있었을 거예요. 그리고 민들레꽃은 여기에! 소 달구지에서 떨어진 흙덩이는 여기쯤!”


나는 마치 소풍 온 듯 들떠 있었고, 그런 나를 보고 연출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돌담길을 따라 걷다 보니, 작은 마당을 가진 허물어져 가는 옛 흙집이 나타났고 다행히 선생님을 만날 수 있었다.

무턱대고 찾아온 낯선 이들에게도 선생님은 기꺼이 시간을 내주셨다.


“들어와요. 앉을 곳이 없네요.”

작은 문을 열고 불편한 몸으로 내다보시며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선생님은 발을 겨우 뻗을 만큼의 공간만 남겨두고 책으로 둘러싸여 계셨다. 우리는 빼곡히 집안을 메우고 있던 책들 사이에 조심스럽게 자리를 비집고 앉았다. 그리고 책들과 선생님만이 존재하는 작은 공간에서, 밖에서 들려오는 새소리와 강아지 짖는 소리를 들으며 잠시 말없이 앉아있었다.


정적을 깨고 연출은 무릎을 꿇고 앉아 고개를 숙이고 말했다.

“선생님, 죄송합니다. 허락도 없이 공연을 준비했고 연극을 올리려 했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그때 선생님께서 천천히 차분하고 다정한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내 작품을 좋아해 줘서, 공연으로 만들어줘서 고마워요.

나야 언제든지 공연하라고 하고 싶지만, 이미 약속한 데가 있어서 그렇게 할 수가 없네요. 그래도 열심히 준비했으니, 이번 공연은 하세요.”


선생님의 작품을 함부로 쓰려고 했던 이들에게 선생님은 공연을 허락해 주셨다.

우리는 그렇게 단 한 번뿐인 공연을 무대에 올릴 수 있었다.


강아지똥은 어떤 욕심도 없이, 보잘것없는 것들 속에서 소중함을 찾아 알려준 그분의 삶 그 자체였다.

그런 삶이 담긴 창작물을 허락 없이 이용하려 했던 우리는, 마땅히 그에 대한 보상을 해야 했다. 그러나 선생님은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으셨고, 오히려 준비한 것이 아까우니 한 번은 공연하라고 배려해 주셨다. 그 말씀은 단순한 허락이 아니었다. 그것은 선생님의 사람에 대한 사랑과 이해였다. 말과 삶이 이토록 일치하는 분을 나는 처음 만났다.


딱 한 번뿐인 공연이었지만, 그 무대 위에서 동화 속 순수한 세계로 들어갈 수 있었던 경험은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것만 지니고, 책을 벗 삼아, 세상이 아름답기만을 바라며 글을 쓰셨던 선생님의 작품이었다.


돌아오는 길은 올 때처럼 들뜨지 않았다. 아름다운 선생님께 잘못을 저질러놓고 아무렇지 않게 다른 것을 요구하는 어린아이들 같이 느껴져 우리는 부끄러웠다. 욕심으로 물든 우리의 모습이 창피했다.

처음엔 좋은 글이니 공연을 하면 오히려 원작자가 더 유명해지는 것 아니냐는 어리석은 생각도 했었다.

하지만 선생님을 만나고 돌아온 후, 나는 저작권이 무엇인지부터 다시 찾아보게 되었다.


저작권은 창작자의 작품을 지키고, 창작활동을 보호하는 울타리였다. 선생님의 글에는 그분의 가치, 감정, 삶이 담겨 있었기에, 그것을 허락 없이 사용하는 것은 곧 선생님의 삶을 훼손하는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무지 역시 죄가 될 수 있다. 누군가의 작품을 활용하거나 재창작하려 했다면,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최소한의 저작권 지식과 책임감을 갖췄어야 했다. 창작활동을 지지하는 첫걸음은, 그 창작물이 훼손되지 않도록 지켜주는 것이다. 누군가의 지적이 없었다면, 나는 '모른다'는 이유로 얼마나 많은 작가의 권리를 침해하고, 그들의 노력을 무의미하게 만들었을까!


실제로 만난 권정생 선생님은 단 한 번의 만남이었지만 가슴속에 깊이 남았다. 이렇게 순수한 삶이 정말 존재할 수 있다는 걸, 그날 처음 알았다.

선생님처럼 순수한 창작자들을 위해 저작권은 꼭 지켜져야 한다. 그래야 마음 놓고 자신의 삶을 맘껏 꺼내어놓으며 창작을 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작은 생명 하나도 귀히 여겼던 선생님 마음처럼 창작자 한 사람 한 사람의 목소리와 권리가 존중받을 수 있도록, 우리는 더욱 세심하고 따뜻한 마음으로 지켜야 한다.


5월 17일. 선생님의 기일이다.

나는 오늘도 민들레 씨앗이 날리는 하늘을 보며 생각한다.

‘강아지똥이 민들레를 힘껏 끌어안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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