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왈 맹자왈

마흔 넘어 시작하는 한문 공부

by 고요

10대에는 미국 문화를 동경했다. AFKN, MTV 같은 미국 채널 속 헐리웃 힙합 스타들의 뮤직비디오를 보며 자랐다. 이대 멀티샵, 이태원을 다니면서 몸에 맞지 않는 커다란 옷을 사곤 했다. 20~30대에는 유럽 문화를 동경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서유럽. 그중에서도 프랑스가 멋져 보였다. 대학 시절 처음 떠났던 배낭여행지로 프랑스를 고른 것도 그래서였다. 읽어도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지는 않았지만 서구 철학자들의 책을 사 모으곤 했다.


어릴 때 서른 즈음은 막연하게 떠올려봤어도 마흔이라는 나이에 대해 생각해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생각해본 적 없던 나이, 마흔을 넘겼다. 불혹不惑, 여전히 미혹되는 것 투성이고 그나마 내 한계에 대해 냉정하게 보게 된 것인지 자신감은 좀더 떨어졌다.


언젠가부터 동양 고전을 읽으면 마음이 편해졌다. 한자에는 여전히 까막눈이지만 오래된 글이 주는 남다른 위안이 있었다. 쫓기에는 벅찬 세상의 속도에 너무 조급해말라고, 너무 친절하지도 그렇다고 불친절하지도 않게, 삶의 도리에 대해 차분하고 담담하게 이야기해주는 것 같은 어른의 목소리 같았달까.


한 친구는 나에게 흐름을 역행한다고 했다. 요즘처럼 혐중 정서가 짙게 배어있는 시기에 한문을 공부하고 고루하게 공자왈 맹자왈이나 하고 있다면서. 그래도 어쩌랴. 누군가의 눈에는 아무 곳에도 쓸모없어 보이는, 심지어 제대로 읽을 줄도 모르는 한문 책을 들여다볼때 가장 마음이 편하고 좋은 걸.


돌아보면 내가 가진 것에 비해 과분한 삶을 살아왔다. 회사를 나와 10년간 자영업자로 살면서 참 여러모로 운이 좋았다. 요행히 살아왔던 그간 내가 받은 복과 운을 나눠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게 마흔이 되고 난 이후였다.


가진 재주가 많지 않아서 그저 내가 공부하는 것을 어딘가에 남겨둔다면, 나와 비슷한 누군가에게 작은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은 마음으로 이곳에 글을 남긴다.